사람들에게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환상' 심어주는 좌파 사상의 어두운 매력
인권과 민주주의 위하는 사람들이라고 믿었던 좌파들 북한인권에는 오히려 침묵
다시 정규재·김정호·이영훈 등 우파 지성인 책 보니 좌파는 가짜 선동-날조된 엉터리였다
좌파에서 빠져나온 지금...조금 힘들지 몰라도 매일매일이 즐겁다

펜앤드마이크(PenN)는 오늘부터 '나의 좌파 탈출기' 공모전에 응모한 작품들을 홈페이지에 순차적으로 연재합니다. 지난 6일 열린 PenN 주최 제2회 청춘콘서트에서는 57편의 응모작 중 예비심사를 통과한 작품들을 대상으로 현장투표를 실시해 대상(大賞)부터 장려상까지의 당선작이 선정됐습니다. 대상은 대학생인 현수환 씨(23)가 받았고 최우수상에는 전명수 씨(27·대학생), 우수상에는 남택동 씨(40·개인사업), 장려상에는 김시민 씨(27·대학생), 이병세 씨(29·개인사업), 배재희 씨(39·교사)가 각각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첫번째로 대상 수상자인 현수환 씨의 '좌파 탈출기'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대상 수상자, 현수환 씨.

10대의 내 일생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바로 ‘좌파에 찌든 삶’ 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좌파였다. 그것도 그냥 일반적인 좌파가 아니라 마르크스의 책을 옆에 끼고, <공산당 선언>을 입에 읊고 다녔던 ‘극좌’. 공부 대신 나는 내 10대 시절을 거의 과거 운동권과 비슷한 지하써클 모임만을 쫓아다니며 지냈다. 그때의 내게 자본주의와 대한민국은 만악(萬惡)의 근원이었다. 바로 내가 참석했던 그 모임의 선배들이, 그리고 전교조 교사들이 내게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친일파들이 미국에 빌붙어 세운 정당성 없는 국가라고. 자본주의는 1%가 나머지 99%를 착취해먹는 악질적인 체제라고. 그래서 나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이 체제를 뒤집어 엎고 사회주의 국가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이해해서 좌파 사상을 추종했던 것이 아니었다. 나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마르크스의 이름을 소리높여 외쳤던 내 주변 친구들 중 정작 마르크스를 읽어본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사상을 정확히 이해조차 못한 우리들이, 도대체 왜 그의 사상을 그토록 열렬히 추종했던 것일까? 정답은 ‘그것이 멋있으니까’ 다. 일반 사람들도 종종 그렇지만, 아직 철이 덜든 10대, 20대들에게는 무언가 기존의 것들을 삐딱하게 보고 그것을 부정해야만 멋있다는 왜곡된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가 좋은 체제라고?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라고? 설령 그것이 올바르다 할지라도 그런 말을 하는 건 ‘별로 멋있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특히 그때는 한창 주변에 멋지게 보이고 싶은 나이가 아닌가. 따라서 나를 포함한 내 친구들은 아는 건 쥐뿔도 없으면서 마치 자신이 깨어있는 척, 멋진 척, 정의로운 척을 하며 사람들에게 이렇게 떠들어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자본주의는 1%만을 위한 체제야...” “북한이나 한국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다니까?” 물론 여기에 대해 ‘왜?’ 라며 구체적인 이유를 물으면 정확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지만 말이다.

또 하나 좌파 사상의 커다란 매력은 사람들에게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환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공부도 못하고, 제대로 하는 건 아무것도 없이 부모님에게 의존해 사는 일반 청년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럴 때 “내가 열심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혹은 무엇무엇을 잘못해서 이렇게 됬구나! 열심히 노력해서 여기에서 벗어나야지!” 라고 다짐하는 인간은 정말 거의 없다. 그것은 나 자신의 현실을 제대로 직면하고 인정해야만 가능한 다짐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남탓과 세상탓에 빠져 현실을 부정하며 살아간다. 하기야 자기가 못난 인간이고, 앞으로 더 고통스럽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달가워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것을 시인하는 것은 정말이지 극도의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다. (본인이 겪어봤기 때문에 너무나 잘 안다.) 이럴 때 좌파들은 달콤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니가 이렇게 된 것은 너때문이 아니라, 부자들, 기득권들, 금수저들 때문이라고. 분노하라고. 대한민국은 원래부터 썩은 나라라고.

이러한 주장들이 무서운 것은 단지 그것들이 거짓이라는 데에 있지 않다. 진짜 문제는 그것들이 청춘으로 하여금 노력에 대한 의지를 완전히 상실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어짜피 서울대는 금수저만 가는 곳이고, 대학입시제도는 썩었으며, 나는 흙수저로 태어나 공부를 못한다는 사실을 같이 다니는 좌파들에게 주입받자 내 마음 속에 남아있던 최소한의 공부 의지마저도 사라져버렸다. 날마다 생기는 감정은 오직 분노일 뿐이었다. 부모님에 대한 분노. 금수저에 대한 분노. 자본주의에 대한 분노. 대한민국에 대한 분노. 날마다 ‘나는 왜 이따위 나라에서, 이렇게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만이 머리를 채웠고, 그럴수록 성적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성적이 떨어지자 나는 나의 훼손된 자존심과 자의식을 또다시 좌파 사상으로 채워넣기 시작했다. ‘내가 공부를 못하는 것은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다. 너희들과 다르게 나는 깨어있기 때문이다’ 라는 말도 안되는 주문을 스스로에게 외우면서 말이다. 솔직히 말해 이때 제대로 공부를 했던 날들보다도 ‘노동자 청소년단’ 같은 알수 없는 모임을 따라가 시위에 참가했던 날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조언을 해주는 친구나 어른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를 따로 불러 정신좀 차리라며 따끔하게 조언해줬던 선생님도 있었고, 내가 계속 사회에 대해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늘어놓자 정규재 선생님의 강의나 우파 관련 책들을 추천해주며 미몽에서 깨어나라고 말해줬던 친구도 있었다. (10대 나이에 그정도 수준에 이르다니! 나는 아직도 그 친구가 너무 고맙다) 그러나 자의식 과잉의 10대에게 이런 이야기들은 그저 소귀에 경읽기였다. 오히려 내 반발심만 더 크게 만들었을 뿐이다. 여느 좌파들이 팩트에 기반한 비판을 받으면 그러하듯, 나는 저런 말들은 사회에 순응한, 세뇌된 자들의 헛소리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역설적이게도 내가 좌파 사상에서 완전히 탈피할 수 있었던 것은 하위권 대학에 합격한 다음이었다. 수능을 보고 성적표를 받았던 날, 내가 그때 느꼈던 감정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놀랍게도 성적표에는 3등급을 넘어선 성적을 하나도 확인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공부를 중상위권은 유지했던 나였는데 고작 이정도 성적이라니. 나는 정신이 멍멍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세상탓, 남탓, 부모탓 그 어떤것도 할 수가 없었다. 20년치의 공부를 한눈에 보여주는, 수능이라는 성적표가 내게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순수한 너의 실력이고, 네가 노력하지 않은 데 대한 정직한 대가라고. 이 등급을 거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고 말이다. 나는 성적표를 받은 자리에서 쭈그려앉아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나는 밑바닥 끝으로의 추락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제대로 직시하게 되었다. 세상에 분노하기 이전에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았고, 이것을 바꾸어나가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답은 간단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재수하는 것. 그리고 집에 충분한 돈이 없으므로 스스로의 생활비는 스스로 버는 것. 그리고 그러는 과정에서, 나는 생각보다 대한민국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국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힘든 과정이긴 했지만 노력하자 성적은 지속적으로 올랐고, 알바도 꾸준히 하자(다양한 알바를 해봤지만, 많은 청년들이 불편하는 것처럼 그렇게 힘든 것은 거의 없었다.) 돈은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재수를 거쳐 최하위권 대학에서 그럭저럭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는 성적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우파 사상을 접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다.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자 내가 그동안 세상을 바라봤던 관점에도 의문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생 시절 쳐다보지도 않았던 정규재 주필님의 강의와 김정호, 이영훈 등 우파 교수님들의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전에 없던 충격을 받았다. 놀랍게도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은 모두 가짜 선동에 날조된 엉터리들에 불과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헬조선’ 이나 불평등한 국가가 아니었다. 또한 자본주의는 내 생각만큼 불의한 체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합리적이고 공정한 체제였다. 인류 최악의 학살과 재앙은 오히려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뛰어난 공헌 위에, 수많은 미군과 국군이 피로써 지켜내며 건국된 소중한 자유 민주주의의 국가였다. 사실 나는 무언가에 분노해야 마땅한 사람이 아니라 너무나 행복하고 또한 감사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부정하고 싶어도 여기에는 그 어떤 의문도 표시할 수가 없었다. 좌파들과 다르게 우파분들은 감정을 자극하는 것 대신, 명확한 자료와 객관적인 통계를 가지고 논리로써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번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한 사람들이 다시 좌파로 돌아서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는 그순간, 그야말로 내 지난 20년 세월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아까운 학창시절을 낭비했던 것인가. 내가 그때 품었던 분노와 증오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시간을 되돌릴수만 있다면 되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늦지 않은 20대 초반의 나이에 이런 분들을 접하게 된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내가 최종적으로 좌파들과 손을 끊고 우파로 완전히 돌아서게 된 것은 바로 ‘북한 인권’ 문제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접하고 이것에 관해 좌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이전에, 나는 그래도 좌파들이 따뜻한 감성을 지니고 진정으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하는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이 말도 안되는 선동에 휘둘리는 것은 그저 머리가 조금 나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생각은 북한 인권문제를 접하며 완전히 무너졌다. 더러운 악인일수록 겉으로는 도덕을 내세우는 경향이 강하듯, 실상 그들만큼 인권과 민주주의를 앞세워 반(反) 인권, 반(反) 민주주의를 자행하고 있었던 이들도 없었던 것이다.

반디의 <고발>, 비탈리 만스키 감독의 <태양 아래>. 북한에 살고 있는 실제 인물들의 목소리를 통해 북한인권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이 소설과 영화는, 인간이라면 정말이지 분노할 수밖에 없는 김씨왕조의 잔혹한 인권유린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평소에는 별 사소한 문제에 인권과 민주주의의 침해라며 거품을 물던 좌파 동기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는 이상하게 조용했다. 심지어 북한을 옹호하며 이러한 작품들이 보수세력들이 날조한 것 같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거칠게 반박하며 따지고들자 그들은 한국의 군사정권이나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도 크게 다를 바 없다며, 정말 중요한 것은 통일이고 평화라고 나에게 강조했다. 나는 너무나 황당했다. 한국의 인권 현실이 아무리 열악하다 한들 그것을 어떻게 북한에 비할 수 있으며, 나아가 북한 인권없는 통일 논의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인가. 아아, 나는 그 순간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들에게 인권과 민주주의는 실상 우리 정부를 비난하고 자신들의 왜곡된 신념을 지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는 10대 시절의 철없는 분노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진정한 ‘분노’를 그들에게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좌파 사상을 내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웠다.

좌파에서 빠져나온 지금은 어떻냐고? 비록 완벽한 상위권 대학에 다니지 못하고, 엄청나게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너무나 행복하다. 10대 시절의 어리석은 분노에서 빠져나와 생산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고, 내가 태어난 이 세상이 얼마나 행복한 세상인지 알게 되었으며, 자유 민주주의적 질서를 지켜나가고 발전시킨 분들에게 감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우파로 전향하면서 ‘내가 노력하면 변할 수 있다’ 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조금 힘들지 몰라도 나는 그래서 매일매일이 즐겁다.

현수환(23·대학생/대상 수상자) hard-boile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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