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칼럼] 한반도 지정학을 탓하지 마라
[남정욱 칼럼] 한반도 지정학을 탓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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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어느 민족이나 나라의 운명에 지리적인 요인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풍요로운 땅은 누구나 침을 흘린다. 해서 해당 지역 거주민들은 침략과 환란을 끼고 살아야 한다. 싸워서 만날 이기고 때마다 방어하면 되지 않겠느냐 하겠지만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땅을 차지하려는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전력戰力이 아니라 절박이기 때문이다. 작정하고 쳐들어오는 군대만 무서운 게 아니다. 더 끔찍한 건 노인, 여자, 아이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유랑하는 난민들이다. 저 살던 고단한 땅을 떠나 그보다 나은 곳을 찾아다니는 이들은 잃을 게 없으므로 (어차피 굶어죽을 거) 죽기 살기로 싸운다. 그래서 난민이 무서운 거다. 카이사르가 원정 중 마주친 수십 만 난민들을 학살한 것은 유명한 일인데 꼭 비난할 일만은 아니다. 그는 그 난민들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로 돌변할 수 있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풍요로운 땅만큼 위험한 게 교통의 요충지다. ‘킹덤 오브 헤븐’이라는 영화가 있다. 유럽인들이 1차 십자군 원정을 끝내고 그 점령한 땅에 세운 기독교 왕국 중 핵심인 예루살렘 성의 공방전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 성城 이야기다. 예루살렘 성은 유럽인들이 쌓은 성이 아니다. 이미 청동기 때부터 있었던 성으로 사람들의 이동이 잦았던 그 지역에서는 성이 필요할 만큼 공격과 방어가 일상이었다는 이야기다. 최근의 시리아 사태를 보면 알레포니 모술이니 하는 지명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이름들 역시 십자군 전쟁 때부터 나오는 동네 이름이다. 인간의 역사는 지리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걸 다운사이징하면 개개인의 삶은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의 운명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라는 말로 바꿀 수도 있겠다.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은 단지 그 동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머리맡에 두고 살아야 했다.

전쟁과 환란이 싫으면? 떠나면 된다. 대신 배고픔과 친해져야 한다. 고대 그리스 반도에서 아테네가 중심 역할을 하게 된 데에도 나름 이유가 있다. 말한 대로 좋은 땅은 항상 침략 대상에서 1순위다. 그래서 주인이 자주 바뀐다. 아테네가 있던 아티카 고원은 척박한 땅이었다. 나무도 없고 풀도 없다. 죄다 돌 뿐이다. 이런 땅을 노리고 쳐들어오는 사람은 없다. 그러다보니 오랫동안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살 수 있었고 인구도 많아졌다. 그들은 300년 가까이 후손을 뿌리내리며 공동체 의식을 다졌다. 아테네는 그렇게 성장해나갔다. 고대古代 이야기만 하니까 지루하실 수 있겠다. 현대로 넘어와 보자. 섬나라는 천혜의 요새다. 고립으로 인하여 문명의 발전이 더디기는 하지만 외부의 침략으로부터는 일단 안심이다. 그러나 그것도 항해술이 발달하기 전 이야기다. 큰 배들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부터 사방이 전선戰線이 된다. 일본이 그랬다. 서구 열강에 대한 소문은 공포 그 자체였다. 히로시마 원폭이 터졌을 때 일본인들은 그 공포를 ‘무쿠리고쿠리’같다고 했다. 무쿠리고쿠리는 몽골과 고려를 일본식으로 읽은 것이다.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친 여몽 연합군의 하카타만 상륙은 일본인들의 DNA에 각별하게 박혀있는 공포다. 일본인들이 아편 전쟁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그 때문이다. 영국군이 점령한 광저우는 지리적으로 베이징보다 일본에 더 가깝다. 아편 전쟁에 대한 정보는 네덜란드를 경유한 영국발 뉴스였다. 일본인들은 사태의 진상을 알았다. 메이지유신이라는 격렬한 내부 갈등이 터져 나온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절박했기 때문이다. 반면 조선은 아편 전쟁의 정보를 중국으로부터 들었다. 얻어터지고 그걸 사실대로 털어놓는 나라는 없다. 아마 이렇게 조선에 들려주었을 것이다. “영국이라는 오랑캐 섬나라가 무역을 하게 해 달라고 깽판을 쳐서 문을 조금 열어주었지.” 조선은 그 말이 진짜인 줄 믿었다.

지리적 요인이 재미있는 것은 이게 가끔 뒤집어지기 때문이다. 중국을 난타한 영국이 난데없이 일본의 손을 잡아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대영제국와 제정 러시아라는 빅 파워의 대결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운명을 바꿨다. 바다로부터 오는 침략에 전전긍긍하던 섬나라가 세계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지리적 행운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1946년 전범으로 옥중에서 처형을 기다리고 있던 기시 노부스케는 “이제 살았다!” 환성을 지른다. 미소 대립으로 미국이 일본을 구해줄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소련의 팽창은 일본과 독일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하겠다던 미국의 노선을 바꿨다. 그 때 필요한 것은 유능한 군사, 행정 엘리트들이었다. 그렇게 일본은 위기를 넘기고 동아시아의 무시할 수 없는 파워로 성장했다.

흔히 대한민국을 지정학적으로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있는 나라라고 말한다. 절반만 맞는 말이다. 지리적 위치는 변하지 않지만 환경은 항상 변한다. 지리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이 비논리를 논리로 바꿔놓은 게 바로 지리적 요인이다. 대한민국의 최빈국에서 이렇게 올라 선 것은 냉전이라는 아름다운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약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어디쯤에 처박힌 나라였다면 이런 행운이 찾아왔을까. 줄탁동기啐啄同機라는 말이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면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지리적 환경과 냉전은 어미닭이었고 유능한 두 명의 지도자는 안에서 쪼아대는 절박함이었다. 둘 중 어느 것이 중요할까. 당연히 어미 닭이다. 죄송하지만 유능한 지도자는 그 다음의 문제다.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지리적 환경은 어떨까. 매우 좋다. 좋은 정도가 아니라 저성장의 늪에 갇히지 않고 제 2의 도약이 가능한 그런 시기다. 미국의 인도ㆍ태평양 전략이라는 환상적인 그림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줄탁동기라고 했다. 안에서 화답할 때 바깥 환경도 의미 있어 진다. 그래서 2018년의 대한민국은 어둡다. 알 속의 새끼가 알을 쪼는 대신 자신의 몸을 쪼고 있다. 청산이니 뭐니 해가며 자해를 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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