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합의를 가장한 채, 특정가치관과 현 정부의 거수기 역할
非전문가 구성‧밀실 논의...덜컥 공식 발표하고 법적 책임은 없어
위원회-부처 간 엇박자 빈번하게 노출되면 정부 신뢰도 악영향
국민들, 위원회 발표하면 '공식 사실이자 정부 입장으로 받아들이는데...'
정작 논란 때는 뒤로 물러서...靑·政은 ‘위원회는 자문기관일 뿐’만 되풀이

문재인 정부 들어 다양한 ‘위원회’가 국가 전방위 운영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이들은 법적 권한이나 책임은 없지만, 현 정부의 실질적인 정책 방향을 결정짓는 데 핵심역할을 담당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원회’들이 밀실에서 정부 부처를 건너띄고 현실과 괴리된 정책안을 내놓거나, 특정 가치관에 치우친 편향적인 결론을 정부 공식입장처럼 발표하며 사회적 혼선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한 위원회-부처 간 엇박자가 자주 노출되면 그만큼 정부에 대한 신뢰도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청와대와 정부 부처 산하 위원회는 555개(6월 기준)에 이른다. 사실상 위원회 역할을 하는 각 분야 TF도 적지 않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3일 ‘(2018년) 상반기 재정개혁 권고안’을 통해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 금액을 현행 20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인하하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권고안에 주무부처는 탐탁지 않아하는 분위기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더 검토해야한다”고 밝혔으며, 기재부 내에서는 ‘특위안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어렵다’며 “파장이 큰 사안인데도 특위 논의 과정에서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재정개혁특위는 보유세 개편 등 중장기 조세개편 방향을 정하기 위해 지난 4월 출범한 이후 3개월간 회의를 열면서도 주무부처와 별다른 협의 없이 회의 결과를 비공개로 진행했다. 이에 따라 ‘밀실 논의’를 통한 설익은 정책 제언이 대외적으로 발표되며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또한 특위에서 보유세 개편을 논의한 조세소위원회 위원 14명 중 10명은 실무 경험이 없는 대학교수로 구성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문재인 정권은 출범 이후 박근혜 정권을 겨냥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국정교과서 과정에 연루된 사람들을 적폐로 몰아가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015년 박근혜 정권이 일본과 타결한 '한일위안부합의'를 재검토하는 테스크포스(TF)를 자신의 직속 조직으로 작년 7월 설치해 검증작업을 진행했다. 사실상 위원회와 같은 역할을 한 TF의 경우 통상 30년 동안 비공개하는 외교 문서를 2년 만에 공개하며 국제관계 외교 신뢰도에 타격을 입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결국 올해 1월에는 '일본 정부에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지난 3월 국민헌법자문특위가 청와대발 개헌안을 공개했을 당시에도 다소 특정이념에만 치우친 급진적인 내용을 담으면서도 국무회의 심의를 충분히 거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작년 9월 출범한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 2월 7일 기자회견에서 육군이 광주에 출동한 헬기를 이용해 광주시민을 상대로 수 차례 사격을 가했다는, 명확하지 않은 사실을 발표해 혼선을 부추기기도 했다. 당시 군은 “특조위측이 어떤 조사 결과를 내는지는 알지 못한다. 조사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발표하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5.18특조위의 발표는 시민들에게 공식적인 군의 발표이자 조사 이후 명확히 밝혀진 공식 사실인 것처럼 기정사실화됐고, 이에 따라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적인 분노만 양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매번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청와대나 정부 측은 ‘위원회는 자문기관’일 뿐이라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재정특위 권고안을 기재부가 거부해 ‘엇박자’ 논란이 일었을 때에도,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5일 “특위는 어디까지나 자문기구”라며 “과세권은 어디까지나 정부가 책임지고 입법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위원회의 발표가 정부의 공식입장처럼 이해되고, 사회적 파장이 큰 사안들인만큼 신중해야한다는 지적이다. 건전한 갈등은 권장되어야 할 때도 있지만 최근 위원회들의 특정 가치관·정권 영합적인 발표들은 문제 해결보다는 갈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사회적 합의를 가장했지만, 사실상 위원회가 기울어져 본래의 역할이 무색해진 채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위원회 조성 취지는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서 올바른 정책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인만큼, 보다 균형잡힌 위원회 구성과 전문성·투명성이 제고돼야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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