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29.(금) 부산교구 주교좌 남천성당에서 거행된 ‘천주교 부산교구 2017년 사제·부제서품식’에서 교구장님의 서품식 강론말씀을 게재합니다. 교구장이신 황철수 바오로 주교님께서 새로이 서품 받는 신부님들에게 사제의 본질에 대한 말씀과 아울러 사제의 정치강론에 대하여 강력한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제여 그대는 누구인가?”

저는 오늘 거행되는 사제 부제 서품식에 대한 강론준비를 하면서 임석수 바오로 신부님이 작사 작곡하신 노래 ‘사제여 그대는 누구인가’의 가사가 불현 듯 생각났습니다. 이 노래의 끝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사제, 그대는 아무 것도 아니며 모든 것입니다.’ ‘사제, 그대는 모든 이의 모든 것입니다.’ 노래 말은 낭만적이며 신비감을 주는 위와 같은 말로 끝납니다.

사제생활을 낭만적인 이상향이 아니라 치열한 현실에서 수십년간 해 온 제가 ‘사제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한다면 ‘교회는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하고서는 결코 그 본질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사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오늘 서품식을 거행하는 남천성당은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에 신자수가 수천명이 됩니다. 그러나 만약 남천성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해버린다면 사회의 일반집단의 모임과 다를 게 없습니다. 돈을 들여 건물을 관리하고 신자들은 마치 동호회처럼 친교집단이 되어 지나는 것으로 끝날 것입니다. 사제의 본질에 대하여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압축적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자신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갈라티아서 2,20)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 사제의 본질입니다.

제가 광주에서 신학교를 다니다가 독일 신학대학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당시 원장신부님께서 철학박사, 문학박사 학위를 갖고 계셨습니다. 제가 행사를 준비하며 그분의 프로필을 쓰면서 신부 누구누구 뒤에 철학박사, 문학박사를 덧 붙였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날카롭게 지적하셨습니다. “이런 것은 모두 빼라. 사제 누구누구 뒤에 주렁주렁 달린 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셔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데 하등 소용이 없는 것이다. 신부의 본질은 오로지 ’그리스도를 얼마나 잘 드러내는가‘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지금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습니다.

신부님이 사회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운동가가 목표는 아닙니다. 신부가 정치이야기를 하면서 그 목적이 그리스도를 잘 드러내는데 있다면 제대로 하는 것이지만 그게 아니라 신문에 신부로서, 사회운동가로서 내 이름을 날리겠다는 목적이 있다면 이는 본질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입니다. 제가 강론에서 이렇게 말씀드리지 않아도 교우님들이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론대에서 신부가 정치 이야기 하는 것을 교우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것입니다. 정치가 나빠서가 아니라 당신이 생각하는 정치를 통해서 본질을, 그리스도를 말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도 그렇고 신부님들도 이 점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사제,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주님께서도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사제들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는 사람이다’라고 한마디로 요약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십자가를 져야 합니까?

제가 성목요일 성유축성미사에서 신부님들에게 무엇을 버리고 어떤 십자가를 지고 갈 것인가에 대하여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는 사제는 누구인가, 그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욕망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물질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맡은바 거룩한 직무의 십자가를 충실히 져야 합니다. 이 세 가지에 사제는 누구이며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이는 오늘 서품되시는 분들 뿐 아니라 이미 사제로 서품 받은 저나 신부님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사제나 부제로 서품 받으실 분들이 혹시 ‘그것 별 것 아닙니다. 저는 이미 돈도 없고, 물질에 대한 탐욕과는 상관없습니다. 욕망이라고 하면 신부되고 싶은 욕망밖에 없습니다.’ 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부가 되고 나면 수많은 욕망이 찾아오며 물질에 대한 탐욕이 생깁니다. 여러분이 교회가 맡긴 직무만 충실히 행하여도 사제의 본질에 다가가게 됩니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입니다. 사제의 직무가 때로는 힘들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릴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나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끔 주님께서 인도해주시기를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김원율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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