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범 칼럼] 자해(自害) 단계로 들어서는 보수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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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8.07.04 09:22:02
  • 최종수정 2018.07.0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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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式 개혁: 좌파정당 승리했으니 좌파 이념 따라가자는 것
보수의 가치와 가장 극명하게 반대되는 사람들이 자한당 비대위 인물로 거론돼
자한당 자해적 처방으로 보수 가치 파괴되고 영혼까지 완전히 소멸될 것
인적 쇄신과 선명한 보수 가치 확립 통해 보수정당에 대한 신뢰 회복해야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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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 중 가장 잘못 쓰이는 단어 중 하나는 ‘스텐’이란 금속 이름이다. 실은 녹이 슬지 않는다는 뜻인 스텐리스(stainless)를 한국어에 가장 많은 두 글자 말로 줄이다보니 본래 뜻과는 정반대 의미인 스텐(stain) 즉 '녹슨 금속'이 되어 버린 것이다. 부적합한 정도를 넘어 아예 정반대의 개념이 차용되는 것. 보수 정당 한국자유당의 비대위 인물로 거론된다는 후보자들 이름을 들으며 느끼는 당혹감이 바로 이런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핵심으로 부총리 및 정책실장 출신의 소위 ‘세금폭탄론’자 김병준, 박근혜 탄핵 주역인 헌법재판소재판관 이정미(진보당의 이정미라 해도 놀랄 것 없다), 반(反)시장주의의 근원적 원죄인 오도된 경제민주화론자 김종인이 비대위 후보자로 거론된다는 소문은 참담하다. 보수의 먼 인척은커녕 보수 가치 자체와 가장 극명하게 반대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들어온다면 가장 먼저 파괴할 것은 보수 가치이며 그것으로 보수 정당은 탄핵-대선-지방선거에 이어 그 영혼까지 완벽히 소멸되는 것이다. 보수 정당을 표방한 자유한국당이 어찌 이런 자해의 길로 가고 있는가.

좌파 따라가기식 개혁의 함정

헌법재판소가 비례성원칙이란 미명으로 보수 대통령을 그 과오와 불비례하게 제 대통령을 축출할 때에 보수 정당은 속수무책, 방관 심지어 그에 동조하기까지 했다. 그 이래로 구심점을 잃고 대선 및 지방선거까지 완패했다. 이에 허겁지겁 대처하는 방식이란 것도 과거에 여러 번 써먹은 루틴이다. 곧, 자동응답기 문구같이 상투화된 '뼈를 깎는 반성'으로 비대위를 설치해 외부 인사 영입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아마 지금쯤은 그들이 몰아 낸 박근혜가 천막 당사를 치고 당을 지켜주던 시절을 매우 그리워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자유한국당이 도모하려는 개혁은 오히려 보수유권자의 큰 반발을 낳고 더 나아가 제 정당을 영혼 없는 무뇌아로 만드는 일이다.

김성태식 개혁의 뼈대는 좌파 정당이 승리했으니 이쪽에서도 기존 가치를 수정하고 좌파정당 이념을 따라가면 지지가 오를 것으로 기대하면서 그 와중에 자신이 당을 주도하는 것이다. ‘남의 정당 이념 따라 하기’는 소위 중위투표자 정리로 확인된 것이다. 양대 정당이 이념을 비슷하게 수렴해 감으로써 집권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저쪽 정당이 표 장사가 잘 되니 나도 같은 이념으로 표 장사해 보겠다는 것. 그러나 한국 보수 정당이 이런 전략으로 나가면 전멸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위투표자 정리는 합리적 유권자가 정당의 정책을 보고 투표한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해 우리 투표자 성향은 그보다는 훨씬 조악하다. 실제의 유권자는 ‘다른 요인’을 통해 이미 정당을 선택하며 그 후엔 정당이 제시하는 개별 정책들엔 상상 외로 관대하며 오직 당 자체를 보고 투표하는 성향이 강하다. 한국의 호남이 일률적으로 보편적 복지를, 영남이 선별적 복지를 택한다는 것을 그 지역민의 정책 선호 때문이라고 보는 건 거짓된 해석이다. 안보정책의 선호가 휴전선과의 거리에 비례하여 남-북으로 나뉘지 않고 동-서로 갈라짐 또한 마찬가지. 환경 및 경제정책도 대개 그러하다. 불합리한 투표자들에겐 정당의 정책은 의미가 적다.

둘째, 중위 투표자의 정리의 더 치명적 약점은 정당의 신뢰성 문제이다. 정당이 남의 정당 이념을 흉내 내어 좌우 이념을 오간다면 투표자는 그 정당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다. 정당에 대한 신뢰는 유권자가 개별 ‘정책의 선택’ 이전에 내리는 ‘정당의 선택’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요소이다.

셋째, 리카도식 비교우위론은 정치에서도 유효하다. 정당은 자신이 잘하는 정책을 내걸어야 하며 보수 정당은 보수 가치 구현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저 가게에서 잘 팔리는 좌파 정책을 나도 팔겠다는 건 자멸의 길이다. 배신감을 느낀 우파 투표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뿐이다. 좌파 투표자들로부터는 표는커녕 비웃음만 받을 것이고 ‘좌파 경쟁력’에서는 수 십 년 갈고 닦은 진성 좌파 정당을 이길 수도 없다. 또 천박함을 충분히 학습하지 않으면 좌파 노릇도 쉽지 않다. 무늬만 보수인 채 자유한국당에 은거하는 프락치형 좌파라면 몰라도.

보수 정당의 실패인가, 보수 가치의 실패인가?

자유한국당의 자해적 처방은 보수 정당의 실패를 보수 가치의 실패로 잘못 진단한데서 나온 것이다. 선거에서 드러난 것은 보수 이념의 패배가 아니다. 보수는 그 이념 구현을 위탁할 신뢰할만한 정당을 얻지 못한 것이다. 정책을 따지기 전, 이미 당이 신뢰 자체를 잃었기 때문에 그 후엔 당이 뭘 공약으로 내걸었냐는 의미가 없었다. 이번 선거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란 확고한 보수이념이 부각되어졌던가? 에피소드식 사안들과 개인적 레토릭들 외에 선거를 이념 가치와 이념 가치의 선명한 대결로 세팅해 내는 역량이 있었던가? 그러고도 묻지마식 지지를 구걸했던 것이다.

따라서 보수 정당에겐 이 신뢰 회복이 가장 시급한 개혁 방향인 것이다. 그런데 정당의 신뢰는 개명 신고나 정체성이 애매한 도사(道士)의 청빙으로 얻는 게 아니다. 그 근본은 인적 쇄신 및 지향 가치의 분명한 확립이란 두 가지에 있다. 첫째, 인적 쇄신을 보자. 패배의 양대 책임자 중 대표인 홍준표는 물러났으나 원내대표 김성태는 오히려 야전에서 상급자의 유고를 승진 기회로 삼은 병(兵) 출신 장교처럼 실질적 대표가 되어 있다. 함께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기는커녕 당의 해체 및 보수 이념 포기를 돌연 선언하며, 스스로 보수 정당은 적폐 수구세력이었다고 자해하는 병에 빠져 있다. 자기 책임만 제외한 채 이 와중에 다른 누군가들에게 패배 책임을 떠넘기는데, 전쟁의 패장이 그걸 심판하는 군법회의에서 오히려 재판관 노릇하는 꼴이다. 그 사이 보수 유권자는 또다시 멀어진다.

둘째, 더 중요한 국면은 보수 이념의 분명한 정립이다. 보수 정당은 거의 폐기되었으되 보수 이념은 결코 폐기되지 않았다. 보수 이념은 자신의 가치를 바로 실어 줄 정당을 기다리고 있다. 탄핵 이래로 한국 보수는 도킨스(Richard Dawkins)가 말한 일종의 ‘밈’(meme)으로서의 보수 가치를 담아 줄 건강한 숙주를 찾지 못하여 떠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보수 이념을 바로 당당히 구현해 줄 새 정당이 나와야 한다. 자유한국당의 개혁은 바로 이 요구에 맞추어져야 하는 것이건만 김성태식 방향은 당은 미봉적으로 바꾸면서 그 당이 담아야 할 보수 가치를 다른 것으로 바꾸는데 주안을 두는 것이다.

보수는 인간에 고유한 가장 강한 본능의 하나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던 이념 가치이다. 보수와의 경쟁 끝에 오히려 사회주의, 전체주의, 공산주의가 인간의 선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수정하며 계면쩍은 낯으로 보수 가치 앞으로 굴복해 왔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고르바초프의 소련),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바꾸기’(개혁 개방의 중국), 국유화 및 사회주의의 포기(토니 블레어의 영국) 등 이념 경쟁의 역사 흐름은 격정•평등•계획으로 출발한 좌파 이념들이 이성•자유•시장으로 수렴해 오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보수의 가치는 그것을 담은 그릇이 비록 천박한 경우에도 귀중한 것이다. 유독 한국만이 오히려 사회주의로 가겠다고 안달이며 이제 자유한국당이 여기에 가담하려는 것이다.

책임져야 할 인물의 쇄신과 선명한 보수 가치의 확립

현재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개혁이 자신의 공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몰두하며 실제로는 이 기득권을 지키는 미봉적 개혁을 암중모색하는 모습이다. 그들은 이념 가치보다 의원직 유지에 더 관심이 있고, 공천 및 의원직만 얻는다면 사회주의 이념도 마다 않을 태세이다. 이에 비해, 진정한 보수 유권자들은 자유한국당이란 특정 정당보다는 그 당이 구현할 보수 가치에 일차적 관심이 있고,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개인의 가치 및 책임•법치주의•작은 정부라는 가치를 실현한다면 설령 정당의 겉 이름이야 사회당이라도 좋다는 태세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후자로 감이 마땅하지만 지금의 김성태식 개혁은 전자로 가기 쉽다는 게 문제이다. 정치공학면에서도 그것은 보수의 통합이 아니라 반(反)탄핵파라는 보수 유권자의 엄연한 한 핵심 축을 잃는 것이다. 그 끝은 자잘한 군소 정당으로 몰락한 뒤 그의 향도 하에 ‘바르지 않은’ 어느 좌파 정당에 집단 입당하는 것은 아닐까.

‘이념’이야말로 힘의 원천이다. 바꾸어야 할 것은 자유한국당 구조이지 이념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보수 정당에 걸맞도록, 지금까진 확신 없이 내걸어 왔던 보수 가치를 선명히 확립하는 것이 유권자의 신뢰 회복의 가장 시급한 길이다. 지나가는 과객, 그것도 실은 좌파정권 이론가를 불러 우파 집안 재건을 맡기느니 차라리 ‘김보수’란 이름의 전국 아동들 중 일인을 무작위로 부름이 더 낫다.

유권자는 어떤 살인자보다 잔혹하다. 자살하려는 정당에게 동정을 베푸는 법이 없다. 자립하는 정당에게 눈길을 돌리고, 확실한 자강(自强)의 정당에게만 힘을 가세할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유권자가 표를 주어서 정당이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정당이 힘이 있다고 여기면 유권자는 그 힘에 득을 보고자 표를 던져 정당에 합류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중민주주의와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그것이 실제로 작동되는 모습이다.

통진당이라면 그 의석이 자유한국당의 1/3만 되었어도 벌써 세상을 벌겋게 물들였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110석 가지고도 자살 모드이다. 역겨운 자학과 자해 놀음 멈추고 성난 얼굴로 뒤돌아보는 모습을 보여 봐라. 책임져야 할 인물들을 쇄신한 후 보수 가치를 견고히 잡은 모습.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부산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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