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 氣살리기 적극 나서달라"지만 '소득주도성장' 철회 가능성 낮아
대통령이 기업과 거리 좁히려 해도…지지층 노골적 '親노동 反기업'도 현재진행형
야당시절 한국당發 규제완화법 막은 민주당, 靑 주문한 일부법안 내부설득도 곤혹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진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하반기에는 기업 현장을 자주 방문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3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이 공식석상에 8일 만에 복귀한 지난 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같이 언급했다고 전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표방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일환인 최저임금 대폭 인상, 증세, 부동산 규제 강화, 근로시간 주52시간 일괄 단축, 친(親)노동계 정책 등을 관철한 뒤 불거진 경제 적신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제스처로 보인다. 문 대통령도 향후 적극 기업방문에 나설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와 정부가 기업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주 기업과 소통해 애로를 청취하고 그 애로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장방문을 적극적으로 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오후, 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이 2일 수석·보좌관 회의가 아닌 지난달 중순쯤 내부회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정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17일 오후 서울 강서구 마곡 R&D 단지에서 열린 혁신성장 보고대회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17일 오후 서울 강서구 마곡 R&D 단지에서 열린 혁신성장 보고대회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무렵부터 '규제개혁'과 '혁신성장' 구호를 내세우고 정부 정책 추진이 미흡하다며 공직사회를 공개적으로 다그쳤었다. 

지난해 취임 이후 장하성 정책실장이 키를 쥔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를 앞세워 대기업들과는 적잖은 거리를 유지해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LG 등 주요 대기업을 줄곧 '적폐' 상징으로 몰아세웠고, 이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다만 1년여간 '성장'과 '일자리 정부'라는 구호가 무색해진 탓인지 이번에 청와대 경제수석과 일자리수석도 교체됐다. 문 대통령의 기업 현장 방문을 계기로 정부의 대기업 정책이 전환점을 맞을 가능성도 일각에서 거론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재벌 총수를 포함한 대기업 회장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호프 미팅'을 갖고 기업들의 애로를 청취했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정부 정책을 이해시키고 관철하려는 '교육' 차원에서 그쳤다는 후문이다. 문 대통령은 올 초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리는 기업 신년 인사회에도 불참했었다.

하지만 이후 문 대통령의 대기업 현장 방문이 이어졌다. 지난 2월 '일자리 모범 기업' 격려 차원에서 충북의 한화큐셀 공장을 '취임 이후 첫 국내 대기업 방문' 장소로 택했다. 지난 4월에는 서울 마곡산업단지의 'LG사이언스 파크' 개장식에 참석했다. 지난해 12월 중국 방문 때에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안내로 충칭시의 베이징 현대차 제5공장을 방문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하반기 기업 현장 방문을 강조한 것은 기업과의 '거리 좁히기'에 속도를 내려는 시도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최근 정부와 대기업의 소통 강화도 강조했다. 지난달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정례 보고를 받으며 "정부가 기업과의 소통 및 애로 해소 등 기업 기(氣) 살리기에 적극 나서 달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일에는 이낙연 국무총리로부터 '준비 부족'에 따른 연기 건의를 받고, "규제혁신 내용이 미흡하다. 답답하다"며 자신이 주재하기로 했던 다섯달 만의 두번째 규제혁신 점검회의를 취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제수석이 좌파 경제학자였던 홍장표 전 수석에서 정통 경제관료 출신 윤종원 수석으로 바뀐 점도 경제정책 기조 전환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요소로 거론된다.

하지만 경제계 등에서는 국정의 중심이 여전히 '친노동 반기업' 아니냐는 의심어린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청와대가 스스로 '소득주도성장'의 노선 변경은 없다고 밝히기도 한 만큼, 부작용을 고려한 '미봉책'일 수 있다는 지적 역시 나온다.

무엇보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뚜렷한 입법 노선 전환을 보이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의 '규제혁신 성과' 요구에 부응하자며 내세운 이른바 규제혁신 5법(규제샌드박스 4법, 관련 절차법 1법)은 야권으로부터 "특정 4개 분야에 한정돼 있고 샌드박스를 인가하는 권한을 규제권자의 우두머리인 주무 장관이 하게 돼있다"거나 "샌드박스 4법 공히 신사업을 추진하는 사람이 어떤 사고를 냈을 때 무과실책임을 지도록 하는, 오히려 투자를 장려하는 게 아니라 억제하는 독소조항이 들어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자유한국당에서는 이에 따라 원내지도부가 '신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법안'을 발의해 대안으로 제시했고, 20대 국회 출범 직후 이미 발의한 서비스산업발전법이나 규제프리존특별법 등 전반적인 규제 완화법 처리 필요성에 이목이 쏠린다.

하지만 민주당은 야당 시절 막았던 한국당발 규제완화법 재논의에 나서기는커녕, 최근 청와대·정부에서 주문한 부분적 규제완화법을 들고 지도부가 내부 강경좌파 의원들을 설득하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이라는 후문이다. ▲개인정보의 빅데이터 활용을 위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원격 의료 등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안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제정안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 등이 당내 우선 논의 대상으로 올랐다고 한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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