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53·불구속)에 대한 첫 정식 재판이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렸다. 안 전 지사는 지난 4월 5일 두번째 구속영장이 기각된지 88일 만에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 전 지사는 이날 오전 10시 55분쯤 서부지법 청사에 도착했다. 그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혐의를 부인하느냐' '심경이 어떤가' 등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법정으로 들어갔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안 전 지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라고 구호를 외치며 안 전 지사의 처벌을 촉구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1시 피감독자 간음·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의 1차 공판을 열었다. 

안 전 지사는 지난해 7월부터 7개월에 걸쳐 정무비서이자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33)를 4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김씨를 5차례 기습추행하고 1차례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추행한 혐의도 있다. 검찰은 이를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안 전 지사 측은 '강제추행은 없었으며 성관계도 합의 아래 이뤄졌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성관계 사실 자체는 있었지만 서로 애정의 감정 아래 이뤄진 행위라는 주장이다.

피고인 출석 여부를 묻는 판사의 인정신문에 안 전 지사는 "예. 여기 나와 있습니다"라고 했다. 직업을 묻자 "현재 직업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판사는 "지위와 관련된 사건이므로 '전 충남도지사'로 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안 전 지사에 대해 "덫을 놓고 먹이를 기다리는 사낭꾼 같다"며 유죄를 주장했다. 검찰은 또 "안 전 지사는 차기 대통령으로 거론될 정도의 막강한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를 수차례 간음하고 추행했다"며 "김지은 씨가 을(乙)의 위치에 있는 것을 악용해 범행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김씨가 수행비서가 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러시아에서 일어난 첫번째 간음 사건에서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라는 점이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다"며 "이전까지 이성관계로 발전할만한 계기가 전혀 없었음에도 늦은 밤 출장지에서 덫을 놓고 먹이를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맥주 심부름을 시켜 간음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권력형 성범죄 피의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오히려 자신과의 관계를 원했다'는 식의 나르시즘적 태도를 보인다"고 말했다.

안 전 지사 변호인은 "형법에서 정의하는 위력이란 물리적, 정신적 측면에서 힘이 행사돼야 하고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압해야 한다"며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될 만큼 사회적 지위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위력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그렇다면 정치인 밑에서 일하는 모든 여성직원들은 성적 자기결정권이 제한된 상태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변호인은 또 "김씨는 장애인도 아동도 아니다. 혼인 경험이 있는 여성으로서 성관계의 의미를 무엇인지 알 것"이라며 "안정적인 공무원 자리를 버리고 무보수로 캠프에 올 만큼 결단력도 있는 여성이었다"고 했다. 또 "공소사실에서 언급된 사건들 중 오히려 피해자로 볼 수 없는 모습도 여럿 보인다"고 했다.

한편 이날 재판에는 김지은 씨도 방청했다. 법원은 2차 피해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김씨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통로로 출석하도록 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좌측 방청석 맨 앞줄에 앉아 첫 재판 내내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검찰의 공소요지 낭독에 이어 안 전 지사 변호인측이 입장을 발표하자 옆에 앉은 지인과 필담을 나눴다. 안 전 지사와 김씨는 한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첫 공판기일에는 모두절차를 통해 재판부가 공소장을 낭독하고 기소요지와 쟁점을 확인하면서 본격적으로 재판을 시작했다. 재판에서는 기습추행으로 구성된 5회 강제추행에 대해 △강제추행 발생 여부 △추행에 해당 여부,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에 대해 △위력의 존재 여부 △위력의 행사 여부 △위력과 간음·추행의 인과관계 △피고인의 범의 유무 등을 주요 쟁점으로 다투게 된다.

재판부는 이날을 시작으로 16일까지 총 7회의 집중심리를 거쳐 8월 전에 1심 선고를 할 방침이다. 다음 재판은 오는 6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김씨에 대한 피해자 신문은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안 전 지사는 성폭행 혐의가 불거지자 지난 3월6일 SNS를 통해 도지사직을 사퇴한 바 있다. 그는 해당 글에서 "무엇보다 저로 인해 고통을 받았을 김지은 씨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저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입니다. 모두 다 제 잘못입니다"며 "일체의 정치 활동도 중단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모든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적었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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