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활 칼럼] 한국 재계, 위기 속의 세대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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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8.07.01 16:20:11
  • 최종수정 2018.07.03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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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주자' 이재용 정의선 구광모 앞에 높인 복합적 어려움
권순활 전무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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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29임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LG그룹 총수에 오른 구광모 신임 대표이사 회장은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국내 기업인 중 드물게 폭넓은 사회적 존경을 받던 부친 구본무 회장의 갑작스런 타계의 충격에서 벗어나려면 아직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불과 40세의 나이에 구인회-구자경-구본무 회장에 이어 한국의 간판 기업 중 하나인 LG()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중압감도 적지 않을 것이다. 두산그룹의 박정원 회장이 2년 전 ‘4세 경영을 시작했지만 10대 그룹 가운데 ‘4세대 총수는 구광모 회장이 처음이다.

한국에서는 일부 재벌 3,4세의 빗나간 행태와 초고속 승진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다. 최근 다시 물의를 빚으면서 일파만파로 충격이 번진 한진그룹은 대표적 사례 중의 하나다. 2015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30대 그룹 오너가() 3,4세들은 입사 후 임원 승진까지 평균 3.5년 걸렸고 20대에 기업의 별로 불리는 임원이 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기업 중 대표적인 인덕(仁德) 경영이 뿌리내린 LG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구광모 신임 회장은 입사 후 8년이 넘은 2014년 말 36세의 나이에 초짜 임원인 상무로 승진했고 올해 520일 구본무 회장의 타계 때까지 이 직위에 머물러 있었다. 구본무 회장은 생전에 구광모 상무에게 몇몇 그룹 오너가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각별히 처신을 조심하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구본무 회장의 타계는 얼마 전만 해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구광모 회장은 전무로도 승진하지 못한 상태에서 구본무 회장의 타계를 맞았다.

10대 그룹 중 첫 '4세 경영' 시동 건 LG 구광모 회장

한국의 산업혁명을 이끈 기업인 주역으로는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박태준 등이 꼽힌다. 삼성의 경우 이병철 창업주가 1987년 별세하면서 이건희 시대가 열렸다. 정주영 창업주가 2001년 세상을 떠난 현대에서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한 해 전인 2000년 현대차 회장에 올랐다. 구인회 창업주가 1969년 타계한 LG2세대이면서 실질적으로는 1.5세대 역할을 한 구자경 명예회장이 1995년 회장직을 당시 50세였던 장남 구본무 회장에게 넘겨주면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SK는 최종현 회장이 1998년 별세하면서 최태원 체제로 바뀌었다.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구자경에 이어 한국 재계를 이끌던 이건희 정몽구 구본무 시대도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삼성에서는 창업보다 어렵다는 수성(守成)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성공시킨 이건희 회장이 20145월 쓰러진 뒤 회복 가능성이 희박한 장기 투병 상태에 들어가면서 이재용 부회장이 사실상의 총수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80세인 현대차 정몽구 회장은 아직은 건강에 별다른 이상설은 없지만 연령이 연령인 만큼 정의선 부회장의 보폭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구본무 회장의 타계로 LG가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구광모 체제로 바뀌면서 또 한번의 재계 세대교체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앞으로 한국 재계를 이끌어갈 주요 차세대 주자들의 연령을 보면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50,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48, 구광모 LG 회장이 40세다이들보다 먼저 명실상부한 그룹 총수에 오른 최태원 SK 회장은 58, 신동빈 롯데 회장은 63세로 상당한 연령차가 난다.

창업에서 수성으로 넘어간 이건희 정몽구 구본무 회장이 그룹 총수가 됐을 때도 각 그룹은 안팎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재용 정의선 구광모 시대는 조부나 부친 시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심각한 위기 속에서 해당 기업을 유지, 발전시켜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남들 위에 서는 사람은 아래에 있는 사람보다 자유가 제한된다

한국경제와 기업은 이미 급속한 성장의 시대가 끝나고 서서히 하강하는 추세에 돌입했다. 여기에 정치권력 행정권력 사법권력 언론권력 등 사회 전반적으로 심각한 좌경화가 가속화하면서 기업, 특히 대기업에 대한 규제와 옥죄기가 갈수록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이미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지금 같은 풍토에서 한국에서 기업 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없다는 체념과 냉소가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 누가 기업의 경영을 맡더라도 비약적 도약은커녕 기존의 몫을 지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새로 그룹 총수에 오른 구광모 회장을 비롯해 앞으로 한국 재계를 이끌어갈 주요 기업인에게 희망 섞인 덕담을 전하고 싶지만 아무리 봐도 현실은 그런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여건이 어려워도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것이 기업인의 숙명이다. 더구나 누가 뭐래도 삼성 현대차 LG SK 롯데 포스코 GS 한화 두산 효성 한국타이어 같은 대기업은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한국인의 삶을 끌어올린 소중한 국가적 자산이다. 재계의 세대교체 속에서 주요 대기업을 이끌어갈 새로운 주자들의 책무는 그만큼 무겁다.

기업과 권력과의 관계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라야 한다는 말이 있다. 기업이 권력과 너무 가까우면 타서 죽고, 너무 멀면 얼어죽는다는 말은 상당한 진실을 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른바 자본의 힘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지만 특히 한국의 경우 실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존 미클스웨이드 등이 공저한 기업의 역사를 보면 기업의 위력이 국가권력보다 강하다는 말은 선진국에서도 무의미한 통계 숫자에 근거한 허풍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물며 한국은 국세청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경찰 집권여당 좌파단체 중 하나만 나서도 기업이 손발 다 드는 나라다. 다만 좌파정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근본까지 위협할 수 있는 세력에 뒷돈을 대주는 식의 자해(自害) 행위는 절대로 금물이다.

한국 기업인들에게 닥쳐온 차가운 겨울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그들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지금 같은 정치사회경제적 분위기라면 갈수록 심각한 어려움이 예상되고 그 여파는 한국인 전체에게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집권세력이 하루라도 빨리 미망에서 벗어나길 바라지만 본질적 속성상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자유사회라는 체제가 생존해야 기업이 생존할 수 있다”

동양의 고전 대학(大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생산하는 사람이 많고, 하는 일 없이 먹는 사람이 적으면 재물은 항상 풍족해진다.(生之者衆 食之者寡 則財恒足矣 )” 그러나 요즘 한국의 세태는 정반대다. 힘써 일하는 집단의 어깨는 갈수록 처지는 반면 창조적 생산과 무관하게 하는 일 없이 먹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다. 이러고도 경제와 민생이 어려워지지 않는다면 그게 비정상일 것이다. 안팎으로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한국 기업에 대해 국민이라도 그 소중함을 인식하고 권력의 폭주와 억압에서 지켜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인들에게도 한마디 남기고 싶다한국사회의 풍토가 서운하고 때로는 정나미가 떨어질 때도 있겠지만 남들 위에 서는 사람은 아래에 있는 사람보다 자유가 제한된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경구를 기억했으면 한다. 이와 함께 미국의 레이건 혁명과 영국의 대처 혁명을 가능케 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한 미국 기업인 조지프 쿠어스나 영국 기업인 앤서니 피셔처럼 사회 속에서 자유와 시장의 가치를 확산하는 노력에도 관심을 기울이길 바란다.

자유사회라는 체제가 생존해야 기업이 생존할 수 있다. 기업세계에 몸담은 사람들은 자유사회를 지탱하는 원칙들을 잘 잘고 지키는 다수 사람들을 교육하고 계몽하면서 유지할 책임을 강하게 느껴야 한다.”  '소명으로서의 기업'이란 명저를 남긴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이자 신학자인 마이클 노박이 기업인들에게 남긴 충고는 특히 오늘날 한국에서 울림이 크다.

권순활 전무 겸 편집국장 ks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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