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실물자산인 석유 (石油), 이러한 안전자산인 석유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유전 (油田), 그리고 이러한 석유 생산에 기반한 석유산업 (oil industry)는 수많은 억만장자들과 다국적 기업들을 배출하여 왔다.

과거 석유산업을 주도했던 기업가들의 기록을 살펴보는 것은 단순한 연대기를 읽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향후 새로운 산업의 발전 방향을 전망함에 그들의 행적이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으며 아직 불확실성이 가득한 업종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하여 어느 방면에서 접근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하에서 석유산업에 투신하여 천문학적 자산을 축적했던 대표적인 기업가들의 활동을 시대순으로 살펴 보기로 한다. (노벨은 스웨덴인, 새뮤얼과 다아시는 영국인, 디터어딩은 네덜란드인, 걸벤키언은 아르메니아인 이고 나머지 다섯 명은 모두 미국인들이다.)

1. 존 데이비슨 록펠러 (John Davidson Rockefeller: 1839-1937): 남북 전쟁이 끝나자 미국의 석유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였으나 초과공급에 의한 가격 폭락 등으로 석유업자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미국 오하이오에서 정유소를 운영하던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1870년 스탠다드 오일 회사 (Standard Oil Company)를 설립하고 대혼란을 겪고 있던 석유시장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고자 하였다.

록펠러는 석유를 수송하는 철도회사들과의 담합을 통하여 운임의 일부를 환급받는 방법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후 중소 정유소들에 대한 순차적인 가격 전쟁을 통하여 스탠다드 오일과의 합병을 선택하도록 유도하여 1880년에는 미국 내 정제 능력의 90% 이상을 지배하였다. 스탠다드 오일은 1911년 미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몇 개의 회사들로 분리되었는데 이들은 현재의 엑슨-모빌, 쉐브론, BP 아메리카 등으로 발전하였다. 록펠러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자산가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 역사상 최고의 사업가 록펠러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다른 기업과의 경쟁도 일반 대중의 비난도 반독점법안도 아닌 그가 예상하지 못 했던 과학기술의 발전이었다. 1882년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이 전기조명을 보급하면서 스탠다드 오일이 독점하던 미국 내 등유시장은 급속도로 축소되었다. 1900년 무렵의 록펠러는 이미 은퇴한 상태였지만 스탠다드 오일의 앞날에 대한 걱정 때문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 할 정도였다고 한다.

록펠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에디슨의 회사에서 기술자로 근무했었던 헨리 포드가 1903년에 개발한 휘발유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증기기관차와 전기기관차를 압도하면서 스탠다드 오일은 등유 매출의 감소에 따른 손실을 휘발유 매출의 증가에 따른 이익으로 보전하면서 계속 성장해 나갈 수 있었다. 결국 특정 산업의 흥망성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과학기술의 발전인 것이다.

2. 루드윅 노벨 (Ludwig Nobel: 1831-1888): 스웨덴 출신의 러시아 군수업자 루드윅 노벨은 소총의 개머리판 제조에 필요한 호두나무를 구입하기 위하여 1873년 그의 형 로버트를 코카서스 지방의 바쿠에 파견하였다. 현지에 도착한 로버트가 바쿠의 유전을 본 후 그 발전 가능성에 매료되어 작은 정유공장을 즉석에서 구입하면서 노벨 가문은 석유 사업에 투신하게 된다.

루드윅은 미국 석유기업들의 사례를 연구하는 한편 벌크 유조선 등 새로운 석유 운반수단을 활용하여 러시아의 석유산업을 급속도로 발전시켰다. 결국 노벨 브라더스 석유회사 (The Nobel Brothers Petroleum Company)는 유정, 파이프라인, 정유공장, 유조선, 수송선, 저장 탱크, 전용철도 등을 갖춘 거대기업으로 발전하면서 러시아 제국 내의 석유시장을 장악하였다.

3. 마커스 새뮤얼 (Marcus Samuel: 1853-1927): 러시아 제국 내에서 노벨 브라더스 석유회사의 최대 경쟁자였던 로스차일드가 소유의 카스피해 & 흑해 석유회사 (Caspian and Black Sea Petroleum Company)는 러시아 시장 내 등유 판매가 부진하여 유럽 및 아시아로 진출해야 했다.

1892년 영국의 무역업자 마커스 새뮤얼은 카스피해 & 흑해 석유회사가 생산한 석유를 벌크 유조선을 이용하여 싱가폴, 방콕, 홍콩, 상하이 등으로 운송하는 데 성공하였다. 새뮤얼이 공급하는 러시아산 석유는 기존 기업들의 제품보다 저가에 판매되었으므로 아시아의 석유시장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1897년 그는 자신의 무역회사, 유조선, 석유저장시설 등을 쉘 운송교역회사 (The Shell Transport and Trading Company)라는 이름 하에 하나의 기업으로 통합하였다.

4. 헨리 디터어딩 (Henri Deterding: 1866-1939): 네덜란드가 지배하던 동인도 제도 - 인도네시아 -에서 1890년에 설립된 로얄 더치 (Royal Dutch Company)는 오거스트 케슬러의 지휘 하에 대량의 석유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00년 케슬러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쉘에 대항하기 위한 로얄 더치의 독자적인 영업망을 구축하고 있던 헨리 디터어딩이 임시 대표이사가 되었다.

아시아의 석유시장을 놓고 경쟁하던 새뮤얼의 쉘과 디터어딩의 로얄 더치는 양사의 영업망과 석유생산시설을 통합하여 1907년 로얄 더치 쉘 (Royal Dutch Shell)을 설립하는데 1911년 로스차일드가 소유의 러시아 내 석유자산을 매입하면서 전세계적인 석유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디터어딩은 1907년부터 1937년까지 로얄 더치 쉘의 최고 경영자로서 전세계 석유업계를 지배한다.

5. 앤드류 멜론 (Andrew Mellon: 1855-1937): 파틸로 히긴스라는 기계공은 오스트리아 제국 출신의 기술자 앤소니 루카스 대위를 설득하여 미국 텍사스 남동부 지역에서 석유를 발굴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었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그들은 펜실베니아로 가서 민주당 의장을 지냈던 제임스 구피에게 석유 이권의 7/8을 양도하기로 하는 대가로 자금 지원을 받아서 1901년 1월 보몬트의 스핀들탑에서 대규모 유전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구피는 사업 경영에 서툴러서 1903년 9월 그의 석유회사에 자금을 투자하였던 멜론 & 선즈 (Mellon and Sons)라는 은행에 경영권을 양도하여야 했다. 멜론 & 선즈의 은행장 앤드류 멜론과 그의 형제들은 구피가 설립하였던 회사를 재편하여 걸프 석유회사 (Gulf Oil Corporation)를 설립하였다. 걸프 석유회사는 원유생산에서 정제 및 판매까지 모든 부분을 처리하는 수직적 통합을 이루어 내면서 세계적 기업으로 발전하였다.

6. 윌리엄 녹스 다아시 (William Knox D'Arcy: 1849-1917): 국왕의 낭비벽으로 재정난을 겪고 있던 페르시아 왕국은 호주에서 금광을 발견하여 백만장자가 된 영국인 윌리엄 녹스 다아시에게 60년간에 걸친 석유이권을 판매하였다. 석유 탐사에 드는 막대한 자금의 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다아시는 안정적인 석유공급원을 찾던 영국 해군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한편, 인도의 석유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버마 오일은 영국 해군에 중유를 공급하기로 하였으나 과연 충분한 공급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었다. 영국 해군의 후원 하에 다아시와 버마 오일은 신디케이트를 형성하고 페르시아에서 석유를 함께 탐사하기로 하였다.

1908년 마스지드 술레이만에서 대규모의 유전이 발견되자 1909년 버마 오일은 기존의 페르시아 석유이권에 기반한 신디케이트를 앵글로 페르시안 석유회사 (Anglo Persian Oil Company)로 개편하여 기업을 공개하였고 다아시는 기존에 투입된 석유탐사비용에 대한 보상금과 해당 기업 주식의 상당 부분을 양도받았다.

앵글로 페르시안 석유회사는 페르시아가 국명을 이란으로 변경하자 1935년 회사명을 앵글로 이라니언 석유회사 (Anglo Iranian Oil Company)로 변경하였고 이란 내의 자산이 국유화되는 일이 발생하자 1954년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인수한 자회사의 명칭인 BP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7. 컬러스트 걸벤키언 (Calouste Gulbenkian: 1869-1955): 1912년 터키 국립은행, 독일은행, 로얄 더치 쉘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 내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석유를 생산하기 위하여 터키 석유회사 (Turkish Petroleum Company)를 설립하였다. 1914년에는 영국의 앵글로 페르시안 그룹이 참여하면서 기존 참여자들과 오스만 터키 제국 내의 석유 생산은 터키 석유회사만이 할 수 있다는 약정 - 자제조항 - 을 체결하였다. 터키 국립은행 주식의 30%를 소유하고 있던 컬러스트 걸벤키언은 의결권 없는 지분 5%를 인정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메소포타미아는 영국의 지배 하에 들어가고 독일은행의 지분을 포함한 터키 석유회사 지분의 25%는 프랑스 석유회사에 양도되었다. 영국 정부가 미국 기업들도 터키 석유회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 걸벤키언은 이에 따른 그의 지분 하락에 강력히 반발하였다.

1927년 메소포타미아의 쿠르드족 거주지역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면서 다급해진 터키 석유회사의 참가자들은 1928년 걸벤키언의 지분 5%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합의하고 기존의 자제조항을 그대로 승계하는 적색 협정 (The Red Line Agreement)을 체결하였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막대한 석유 생산량과 적색 협정에 근거한 배당금 덕분에 걸벤키언은 세계 최고의 부호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8. 해롤드슨 라파예트 헌트 (Haroldson Lafayette Hunt: 1889-1974): 1930년 10월 콜럼버스 조이너는 미국 텍사스 동부에서 대규모 유전들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그는 해당 지역의 매장량이 확정되기 전에 석유이권을 너무 많이 판매하여 빚더미에 오르게 되었다. 해롤드슨 라파예트 헌트는 석유 유정의 작업 반장을 2만 달러에 매수하여 해당 지역의 석유 매장량이 역대 최고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조이너에게 접근하여 1930년 11월 석유와 관련된 모든 권리를 133만 달러에 매입하였다. 이 거래를 통하여 조이너 대신에 헌트가 당대 미국 10대 부호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9. 장 폴 게티 (Jean Paul Getty: 1892-1976): 1915년 8월 장 폴 게티는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구입했던 석유이권 지역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백만장자가 되었다. 1920년대까지는 미국 내의 석유 탐사에 주력하였으나 1930년대의 대공황 기간에는 퍼시픽 웨스턴, 타이드워터 오일, 스켈리 오일 등 저평가된 미국 석유회사의 주식들을 매입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여 억만장자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석유회사 주식들의 가격이 급등하자 게티는 석유 탐사를 재개하여 1953년 3월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중립지대에서 대규모 유전을 발견하였다. 이 유전은 게티를 1950년대 미국 최고의 자산가로 만들어 주었다.

10. 분 피큰스 (Boone Pickens: 1928-현재): 1980년대 초 미국에서는 시가 총액이 그들이 보유한 석유와 가스전을 처분하여 얻을 수 있는 평가액의 1/3 수준에 불과한 석유회사들이 다수 나타났다. 텍사스 서부의 석유업자 분 피큰스가 운영하던 석유기업 메사는 주식 매수를 통하여 걸프를 인수 합병하려 하였으나 1983년의 주주총회에서 52:48로 현재의 경영진에게 패배하였다. 하지만 이는 1985년 쉐브론이 걸프를 100% 현금으로 매수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걸프의 주가는 주당 47달러에서 주당 80달러로 상승하게 되어 메사는 5억 달러 (세후 3억 달러)의 평가이익을 올렸다.

이상에서 살펴본 석유 부호들은 석유산업의 발전 단계에 가장 적합한 전략을 선택하여 막대한 자산을 축적한 인물들이다. 그들의 기업활동에서 다음과 같은 산업 단계별 대응 전략을 도출해 내는 것이 가능하다.

산업의 도입 단계에서는 도소매 분야에서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는 기업이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반 소비자들은 해당 제품에 대한 지식이 없고 판매자가 많지 않으므로 유통업자들의 권유에 의하여 제품을 구매하게 된다. 나아가 신기술의 적용에 따른 각종 위험부담에 노출되어 있는 생산업자들은 유통업자들의 권유에 따라 제품의 표준화를 해 나가게 된다. 생산보다는 유통을 주력으로 하면서 시장 점유율 확대 및 수평적 통합이 필요한 단계이다.

산업의 성장 단계 초기에는 소비자들이 제품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갖추게 되어 특정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형성되기 시작하고 유통업자들이 계속 시장에 참여함에 따라 개별 도소매업자들의 경우 매출이 증가하지만 그 수익률은 점차 하락하는 단계에 접어든다. 시장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시점이 오게 되어 제품의 판매보다 생산이 보다 중요해지는데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새로운 기업을 설립하는 것보다 기술력이 검증된 기존의 기업들을 저가에 매수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산업의 성장 단계 후기에는 신기술을 이용하여 직접 생산에 참여하는 것이 우월한 전략이 된다. 소비자들은 제품의 가격 대비 성능을 스스로 비교할 수 있게 된다. 반드시 기존의 제품보다 우수한 품질의 신제품을 생산할 필요는 없으며 유사한 제품들을 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것도 기존 업자들의 시장에 침투하는 좋은 전략이다. 원가경쟁력 확보를 위하여 관련 회사들의 인수를 통한 수직적 통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산업의 성숙 단계에서는 일반 대중들의 압력과 그에 근거한 정부 규제로 인하여 기존 업자들의 수익률이 급격히 하락한다. 주주들은 보다 높은 배당금을 요구하고 지주들은 임대료 인상을 공공연히 요구한다. 산업 전체의 매출은 여전히 늘어나고 있고 이미 투자한 금액도 상당한 수준이므로 기존 업체들은 적자에 시달리는 경우에도 시장에서 철수하지 않고 현금 회수에 주력한다. 이 단계에서는 실물투자보다 주식시장을 통한 해당 산업 진입이 보다 바람직하다. 수익성 악화에 대한 우려로 인하여 기존 업체들의 주가가 순자산가액보다 낮게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태선 시민기자 (개인 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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