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 폭압정권하 '책임지지 않는 사회'…富의 창출은 기적 바라는 격
김씨일가 비판 不用 '노동당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 10大 원칙'이 北 변혁 가로막아
진정한 개혁개방, 김정은이 절대권력 포기할 때만 가능…최소한 인권보장 필요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한다면 마셜플랜과 같은 막대한 자금을 북한에 퍼부어 대한민국과 같은 경제번영을 이루게 하겠다고 어르고 있다. 평양이 맨하탄처럼 변하고 원산 명사십리 백사장이 초일류 관광리조트 시설로 들어차는 장밋빛 그림을 보여준다.

과연 그렇게 될까? 불가능하다.

핵심적 이유는 북한 전체주의정권의 폭압통치 때문이다. 주민들은 자신도 모르는 이유로 처벌받지나 않을까 항상 두려움에 떤다. 열심히 노력해서 상을 받는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친척이나 친구의 일에 연루되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북한 사회는 최고지도자 외에는 모든 주민들이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회다. 책임을 피하기 위해 쉽게 약속을 어기기도 하고 거짓말을 한다. 여기서 정상적인 부의 창출이 일어난다는 것은 기적을 바라는 것과 같다.

필자는 88서울 올림픽 준비 당시 구소련 외교관들과 흉금을 터놓는 대화를 통해 공산사회의 몰락원인을 배우게 되었다. 우수하고 성실한 외교관들도 새로운 모험은 피하려 한다. 국가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도 10년 후나 20년 후 상황이 바뀌어 책임추궁 당할 가능성이 0.1퍼센트라도 있다면 아예 나서지 않는다. 공산사회 전반에 만연된 그러한 사고가 볼셰비키 혁명 70년 만에 공산정권들이 몰락한 원인이었다. 북한이 그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북한 사회는 붕괴 전의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김정은이 손오공 같은 신통력을 가졌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김정일의 후계공식화에 맞추어 74년 4월 14일 공포된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2013년 6월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으로 개정)이 가로막기 때문이다. 헌법이나 당 강령보다 상위의 이 10대 원칙은 온 주민이 몸과 마음을 바쳐 김일성 일가에 절대 충성할 것을 강요한다. 신격화된 김일성 일가를 어느 누구도 비판하거나 비난할 수 없다. 조금이라도 회의적으로 보이는 주민은 강제수용소구금, 고문, 공개처형이 기다린다. 장성택, 리영호, 현영철, 백남기 등 실력자에 대한 숙청과정이 좋은 본보기다.

그렇게 무지막지한 폭압공포통치와 외부정보 차단을 통해 세습정권은 유지되었다. 그러나 경제는 밑바닥에서 일어서지 못한다. 1972년까지도 북한경제는 남한을 앞서고 있었다. 그것이 뒤바뀌어 남한의 45분의 1로 줄어든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자원이 부족해서인가? 김씨 정권이 경제발전을 싫어하기 때문인가? 주민들의 능력이 모자라서인가?

그 어느 것 때문도 아니다. 체제 자체가 주민들의 자발적 경제활동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지금 400개 이상의 장마당이 허용되어 여기서 주민들의 생활필수품을 사고 판다. 그러나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이나 1986년 베트남의 신경제정책과 같은 본질적인 정책전환은 아니다. 그들 나라는 정권세습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이 아들들에게 권력을 넘기지 않았다.

진정한 개혁 개방이 없이는 주민들의 정상적 경제활동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외부의 지원이 있더라도 밑 빠진 독에 물 붙기와 같다. 그리되지 않으려면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10대원칙’을 포기해야 한다. 이는 김정은 일가의 절대세습권력의 포기를 의미한다. 바꿔 말하자면 진정한 개혁 개방은 김정은이 자신의 절대권력을 포기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이는 절대 권력이나 정책에 대한 주민들의 비판을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진정한 개혁 개방은 절대권력의 유지와는 양립할 수 없다. 김정일이 2001년 상하이를 방문하여 상전벽해가 되었다고 감탄하였지만, 끝내 개혁 개방을 단행하지 못한 것은 김씨 일가의 절대권력 유지 목표가 우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의 유일사상체계 10대원칙을 계속 고수하였다.

개혁개방으로 주민들이 바깥세상을 알게 되고, 그동안 지상최고의 파라다이스라고 알았던 북한이 지상 최악의 지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정권을 지탱할 수 있을까? 미국의 식민지라고 알았던 대한민국이 전 세계 10대 경제대국, 전 세계 6번째 수출대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대통령도 비판할 수 있는 자유 사회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찌 될 것인가?

이 딜레마를 해결할 결단이 서지 않으면 김정은도 결국 과감한 개혁개방을 하지 못한다. 지금과 같은 체제를 유지하면서 외부의 원조를 얻어다가 정권의 안전을 유지하는데 그칠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의 능동적 자세가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에서 외부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얻어낸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과는 흉내 낼 수 없다. 외부의 지원 자체는 낭비로 끝나 버린다.

문재인 정부는 4월 27일 판문점 정상회담 전후로 각종언론을 통해 평화무드로 물들여가면서 성급하게 대북지원 구상에 매달리는 인상이다. 6.15 선언의 남북 경제 유무상통 원칙, 10.4선언의 대북지원계획, 신북방정책 구현을 내세워 북한의 낙후된 인프라 건설 등 수십조 원의 개발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한다.

북한이 유일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버릴 정도의 근본적 개혁개방을 단행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이 폐허 속에서 피땀 흘려 이룩한 경제를 파탄시키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북한이 1970년대 합영법을 만들어 유치했던 조총련계 기업들의 투자가 실패로 끝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프리카에 지원한 수조 달러의 경제원조가 권력자들의 배만 채웠을 뿐 실패로 끝난 것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자금을 투입하면 곧 한강의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청사진은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을 버릴 각오가 없으면 한낮 물거품으로 그칠 것이다. 과연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前 통일원 차관·現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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