憲裁 "양심적 병역거부자 위한 대체복무제 마련하라"…7년 만에 바뀐 판결
헌재 “대체 복무 인정해도 국방력에 영향 없어…현역과 형평성 유지도 가능”
국방부, 보충역보다 긴 3년 대체복무 검토
법조계 “헌재가 대체 복무 조항 마련 지시…사실상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완승”

소위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대체복무를 할 수 있는 길이 늦어도 2020년께 열릴 전망이다. 종교적 이유로 입대를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입대와 법적 처벌을 모두 피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헌법재판소는 28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헌법소원 선고 재판을 열고 “병역의 종류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 제1항은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판단했다. 판단은 재판관 6(헌법불합치) 대 3(각하) 으로 결정됐다.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아니한 병역종류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다수결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 의사결정구조에서 다수와 달리 생각하는 이른바 ‘소수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반영하는 것은 관용과 다원성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참된 정신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병역법 제 5조 1항은 현역, 예비역, 보충역, 병역준비역, 전시근로역 등 5가지로 병역의 종류를 정하고 있다. 여기에 소위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위한 ‘대체 복무’ 규정이 없다는 게 헌재가 헌법불합치를 내린 이유다.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경우에 국방력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고 일축했다. 헌재는 판결문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수는 병역자원의 감소를 논할 정도가 아니다”며 “전체 국방력에서 병역자원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낮아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대체 복무제를 도입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국방력에 의미 있는 수준의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또 대체 복무와 현역 복무 사이의 ‘형평성’을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봤다. 헌재는 “공정한 사전심의절차와 엄격한 사후관리절차를 갖추고, 현역복무와 대체복무 사이의 난이도나 기관과 관련해 형평성을 확보해 현역복무를 회피할 요인을 제거한다면, 심사의 곤란성과 양심을 빙자한 병역기피자의 증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조항인 헌법 제88조 제1항 제1호 등에 대해선 재판관 ‘4(합헌) VS 4(일부위헌) VS 1(각하)’로 합헌 판결이 유지됐다. 지난 2011년에는 7(합헌)대 2(위헌)로 합헌 결정이 나온 것에 비하면 ‘합헌’이라고 판단한 재판관이 줄어든 것이다.

병역법 제88조 제1항은 '현역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원은 병역법 위반에 대해 집행유예 없는 징역형을 선고해 왔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조항이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와 “군대 아니면 감옥, 이제 그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병역법 개정을 주장해온 이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헌재는 또 해당 조항의 효력을 2019년 12월31일까지만 적용하겠다고 결정했다. 기한까지 대체복무제가 반영되지 않으면 2020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상실된다. 국회는 늦어도 이 시한까지 해당 법을 개정해야 한다.

한편 국방부는 헌재 결정 직후 "이번 헌재 결정에 따라 정책결정 과정 및 입법과정을 거쳐 최단시간 내에 정책을 확정하겠다"며 "그간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없고, 병역 의무의 형평성을 확보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체복무 방안을 검토해왔다"고 밝혔다. 이전 정부 때까지 대체복무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던 국방부도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태도를 바꾼 셈이다.

국방부는 ▲·후방에서 경계·대민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현역병들보다 복무 기간을 더 길게 하는 방안 ▲ 대체복무제와 유사한 사회복무요원들보다 복무 기간을 더 늘리는 방안 등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복무 기간은 3년 가량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복무 기간은 현역병은 육군 21개월, 해군 23개월, 공군 24개월을 비롯해 보충역인 사회복무요원은 24개월, 병역특례요원인 산업기능요원은 34개월(현역대상), 26개월(보충역 대상) 등이다. 공중보건의와 공익법무관 등은 3년이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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