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법원행정처 컴퓨터 통째 제출 요구…대법원 "법적 근거 불분명하다"

대법원과 검찰이 소위 ‘재판거래 의혹’ 수사 관련 자료 제출을 두고 갈등을 겪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수사 협조’ 발표에 힘입은 검찰이 방대한 양의 자료를 통째로 제출할 것을 요구했지만, 대법원은 심사숙고 끝에 검찰이 요구한 대로 자료를 제출할 수는 없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대법원은 24일 “방대한 자료제출을 요구받은 입장에서 임의제출이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법령에 위배되지 않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는 등 여러 모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점을 양해해주길 바란다”며 “제출 가능한 자료의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이 요구한 모든 자료를 제출할 수는 없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전한 것이다.

특히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과 당시 대법관 등이 쓰던 하드디스크 일체에 대해서는 “임의로 처분할 권한이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넘길 법적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게 근거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김 대법원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및 ‘재판 거래’ 의혹 사건에 대해 ‘수사 협조’ 입장을 공식화하자, 지난 주 관련 인사들의 컴퓨터 제출을 대법원에 요구한 바 있다.

검찰이 제출을 요구한 컴퓨터에는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의 컴퓨터 등도 포함됐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범죄 혐의와 직접 관련이 있고 ▲수사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며 ▲법원행정처가 제공할 수 있는 권한 내의 자료에 한해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정했다.

대법원은 이르면 이번 주 중 자체 조사단이 발견한 410개 컴퓨터 파일이나 이것이 저장돼 있던 행정처 일부 컴퓨터, 상고법원 진행 관련 자료, 법원 정기인사 자료 정도를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25일 검찰에 출석하는 조석제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장

한편, 검찰은 3차 고발인 조사를 진행하며 법원을 압박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자용 부장)은 25일 조석제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장을 고발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의 고발인 소환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인 임지봉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조승현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에 이어 세번째다.

조 본부장은 검찰에 출석하며 “재판거래와 법관사찰을 비롯한 사법 농단 전모가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최대한 수사를 촉구할 것”이라며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 임 전 차장의 컴퓨터 피씨까지 조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 본부장은 이날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조사보고서에서 비실명 처리된 사람들의 이름을 특정한 자료를 검찰에 제출했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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