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분노가 곧 정의는 아니다. 포토라인 관행을 돌아볼 때”
범죄자라는 이미지 덧씌워...재판 시작도 전에 이미 여론 ‘유죄’ 판결
재판에 영향미치지 말아야...포토라인 이후 영장 기각-무죄판결 사례도 급증
포토라인에서 형식적인 問答만 오가...마구잡이 변명만 전파될 우려도
대중적인 흥미에 주력한 언론들 사이에서 비판적인 관점 눈에 띄어

‘여론 심판대’처럼 퇴색한 국내 포토라인 운영방식에 변화를 촉구하는 일선 기자의 칼럼이 눈길을 끈다.

한국경제 이수빈 지식사회부 기자는 22일 “[현장에서] 포토라인만 다섯 번… 영장 모두 기각된 이명희의 경우”라는 제목의 기자칼럼을 통해 “대중의 분노가 곧 정의는 아니다. 포토라인 관행을 돌아볼 때”라며 국내 사회에 만연한 인민재판성 포토라인 문화에 각성을 촉구했다.

이 기자는 “1990년대 초 취재 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안전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구역을 나누면서 처음 생겨났지만 최근 ‘여론 심판대’처럼 변질되는 모습”이라고 작금의 포토라인 문화를 꼬집었다.

그는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이 20일 법원에서 기각됐다”며 “피의자 한 명이 다섯 번이나 카메라 앞에 서는 사례는 드물다”고 지적하며 운을 뗐다.

그러면서 “앞서 포토라인에 선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까지 합하면 지난 두 달 사이 대한항공 일가가 포토라인에 선 횟수만 8차례”라며 피의자가 포토라인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며 과도한 낙인찍기가 횡행하고 있다는 논지의 주장을 펼쳤다.

그는 “법무부가 발표한 ‘인권보호수사준칙’에 따르면 피의자가 동의하지 않을 때는 포토라인에 설 필요가 없지만 이 권리를 행사하는 피의자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사기관에 의해 포토라인이 설정되면 취재진 앞에 서서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되고 범죄자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진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여론재판에서는 ‘유죄’ 판결을 받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이와 같은 실태와 관련해 “후진적 수사행태이자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만만찮다. 지검장 출신인 곽영철 법무법인 충정 고문변호사는 ‘피의자를 세워놓고 죄를 인정하라고 꾸짖는 식의 포토라인은 초상권 침해행위에 해당하는 야만적 행태’라고 말했다”고 부연했다. ‘포토라인에 선 뒤 영장이 기각되거나 심지어 무죄판결을 받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어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서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는 피의자가 수사받는 모습이 언론에 나오지 않는다. 검찰이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기소한 뒤 피의자가 법원에 재판을 받으러 갈 때부터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기소되기 전부터 범죄자로 낙인찍히면 수사와 재판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검찰과 경찰 외에 정부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수사에 나서는 듯한 인상마저 든다. 가정부 불법 고용은 분명 잘못이다. 엄정한 법의 심판대에 올라야 한다"고 지적하면서도, "하지만 합당한 처벌이어야 한다. 살인과 같은 중범죄도 아닌데 다섯 번이나 포토라인에 세운 데 대해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중의 분노가 곧 정의는 아니다. 포토라인 관행을 돌아볼 때”라고 강조했다.

포토라인에 참여하는 기자들이 짤막한 포토라인 시간 동안 진실규명보다는 이미지 낙인 찍기에 방점을 둔 만큼, 다수 언론들은 포토라인 문화를 대중적인 흥미와 통쾌함을 확보하는 데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가운데 무분별한 포토라인 운영방식에 경각심을 촉구하는 기자칼럼은 눈에 띈다. 타성(惰性)에 젖은 듯 별다른 문제 제기없이 운영되는 포토라인 문화가 만연한 가운데, 이같은 비판적인 시각 제기는 무분별한 포토라인 문화에 다소 제동을 걸 수 있어보인다.

이같은 ‘여론 심판대’와 같은 포토라인 문화에 대한 비판 외에도 보다 현실적인 효용성과 관련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포토라인에서 이루어지는 형식적인 질문과 대답이 진상규명에 별다른 효용성이 없다는 것이다. 가치있는 답변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살인자가 포토라인에 섰을 경우,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마구잡이성 변명이 사실처럼 전파돼 국민을 오도할 우려도 있다.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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