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에 대한 증오가 부른 ‘일당 독재’ 체제
권력 견제 실종되고 오만과 부패 토양 키웠다
정치권력에 대한 열성적 팬덤의 피해자는 시민 자신
유권자가 무서워야 정권이 사악해지는 것 막는다

홍찬식 객원칼럼니스트(언론인, 전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언론인, 전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6.13 지방선거가 있기 직전 어느 신문에 세계적인 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 교수의 인터뷰가 실렸다. 우파와 좌파의 갈등 문제를 연구해온 그의 언급 중에서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는가보다 무엇을 증오하는가에 기반해 투표를 한다”는 말에 눈길이 갔다. 선거가 끝나고 보니 딱 맞아떨어지는 탁월한 예측이었다.

이번 지방선거가 자유한국당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었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 결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시도지사와 기초단체장 자리는 물론 지방의회까지 압승을 거뒀다. 지방행정을 감시해야 할 광역의회의 경우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전체를 포함해 여러 시도에서 여당 의석이 90%를 넘어 사실상 ‘일당 독재’ 체제다.

그렇지 않아도 유별난 연대의식으로 서로 챙겨주며 공생해온 좌파 사람들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에 ‘코드 인사’로 일관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견제와 균형이 사라지면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선거를 휩쓴 증오와 분노의 태풍이 가라앉고 나니 ‘묻지마 투표’의 또 다른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누구보다 덜컥 겁이 난 쪽은 문재인 정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에게 “지방권력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해 달라”고 지시했다. 그들에게 민주당이 장악한 지자체의 부패 스캔들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것이리라. ‘사전 단속’에 나선 꼴이지만 청와대가 안에서 뭐라고 떠든다고 해결될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지자체는 전부터 ‘비리의 온상’이다. 요즘처럼 전국적으로 개발 사업이 이뤄지고 있는 시기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 은밀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을 것이다. 학연 지연 등을 매개로 한 유착 관계가 뿌리 깊게 형성되어 있다. 같은 지역에서 오래 일해 온 공무원들은 주민들 머리 위에서 노는 터줏대감들이다. 민선 자치단체장이 자기 사람을 심어놓는 내부 감사기능도 기대할 게 못된다. 선심행정 전시행정으로 혈세를 낭비하는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입이 아플 정도다.

중앙정부도 마음대로 손을 대지 못한다. 감사원이 특감에라도 나서려고 하면 유력 대권 주자들이 포진되어 있는 지자체 쪽에서 당장 음모론을 내세우며 ‘정적(政敵) 죽이기’라고 반발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국민 세금은 세금대로 낭비되고 부패는 부패대로 만연하는 일들이 더 심화할 수 있다. 한 가닥 희망이 있다면 지방권력이 스스로 알아서 국민 편에서 일을 해나가는 것이지만 가능성은 낮다. 돈(예산), 자리, 이권을 한손에 쥔 정치인들의 선의를 믿는 것은 바보짓이다.

피해자는 시민들이다. 먹고 살기도 바쁜 마당에 지자체의 일탈에까지 감시의 눈을 들이대야 할 판이다. 이 대목에서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원인제공자 자유한국당을 다시 한 번 질책해야 하겠지만 한편으로 선거를 통한 다수의 선택이 반드시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진리도 확인된 셈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 결과는 정치인과 정치권력에 대해 유권자들이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지를 새삼 떠올리게 만든다.

마침 지난주 미국과 일본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에 대한 지지율 조사가 발표됐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45%(갤럽 조사), 아베의 지지율은 44.6%(산케이신문 FNN 공동조사)로 최근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분석이다. 거의 여당에 몰아주기 흐름으로 가고 있는 한국의 정치 지형과 맞물려 궁금한 게 있었다. 두 지도자를 반대하는 비율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점이었다.

해당 사이트를 찾아보니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다는 비율은 50%, 아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5.6%였다. 최고 지지율이라지만 결국 트럼프와 아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이처럼 여기저기에 의심과 불신의 눈초리가 번득이고 있으면 아무리 막가는 캐릭터를 지닌 지도자라도 섣불리 독주하지 못할 것이다.

국내 유권자들의 쏠림 현상은 비단 지방권력의 문제만이 아니다. 현 정권은 지난 우파 정부 때 발목잡기로 일관하다가 상대방 자멸에 엄청난 행운까지 겹치면서 권력을 잡게 됐다. 스스로 잘해서 잡은 정권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만큼 평가 조정이 필요한 세력이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이라는 혁명의 포연이 걷힌 뒤 나타난 정치 상황은 오히려 이들에 대한 열광적 팬덤을 연상시킨다.

민주주의 역사에서 권력과 시민은 늘 긴장과 대립 관계였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시민들이 고분고분하면 권력은 금세 오만해지고 피해는 자신들에게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제 유권자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정치권력에 대한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시민들이 무서워야 권력도 쉽게 사악해지지 못한다.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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