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경 기자
조준경 기자

자유민주주의는 너무 쉽게 무너지는 취약한 체제다. 자유민주주의가 가진 다원주의와 포용성이 그 자신의 적을 유인한다. 우리가 이방인을 품으려면 그들을 철저히 알아야한다. 저들이 우리의 다원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섣부른 포옹의 결과는 국민 재산과 안전의 파탄으로 나타날 것이다.

제주도로 올해 5월까지 이슬람 국가인 예멘 난민 519명이 몰려들어왔다.

4월까지만 5436건의 신규 난민신청이 있었다. 이에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주도 난민수용 거부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삽시간에 18만 명이 서명했다. 그러나 돌연 삭제됐다. 문제가 기사화되자 청와대 관리자는 “청원 글에 부적절한 표현이 있어 삭제했다”고 설명했다. 관리자가 지목한 부적절한 표현은 “이슬람 사람들은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애 낳는 도구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성범죄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는 문장이었다.

문재인 청와대는 일단 6월 1일 기준으로 예멘을 무사증 입국불허국으로 포함시키며 사태를 수습했다. 그러나 이후 언론들은 난민 옹호 기류를 띠는 기사를 대량으로 내보냈다. 이 나라 펜대들은 지난 2015년 유럽 난민사태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  

2015년 중동과 북아프리카 이슬람권 이민자들이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이들이 진짜 난민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은 같은 종교를 믿는 사우디아라비아로 가지 않았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에 안착했지만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넜다. 디폴트로 휘청거리는 그리스를 뒤로하고 북쪽 독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려 150만명에 달하는 건장한 청년들이 ‘복지 천국’ 독일에 입경했다.

2016년으로 넘어가는 신년 밤, 독일 쾰른 역으로 쏟아져 나온 중동 이민자 수천명은 닥치는 대로 독일 여성들을 유린했다. 누가 상상이나 해봤나? 번화한 선진국 길거리에 중세시대 사라센족과 같은 이질적 생김새의 ‘개떼’들이 트렌치코트와 머플러를 멋스럽게 두른 ‘모던여성’들을 뚜드려 패고 겁탈을 했다. 같은 날 독일 내 12개 주에서 비슷한 일들이 발생했다. 접수된 피해 신고는 1072건이었다. 그 중 692건은 신체상해나 재산 손괴, 384건은 성폭력이다.

이들이 즐긴 ‘놀이’는 ‘타하루시(집단 성폭행)’라 불리는 이슬람 악습이다. 2016년 1월 21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타하루시는 남성들이 표적이 된 여성을 포위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막는 ‘바람잡이’ 역할을 하면서 한 명씩 들어가 범행을 저지르는 식이다. 타하루시 같은 놀이가 자행되는 이유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온다. ‘히잡’이나 ‘니캅’을 쓰지 않은 여성은 비이슬람교도이기 때문에 성폭행해도 된다는 경멸감이 나왔을 수도, 서구사회가 모르는 중동 남성들의 여성관이 작동했을 수도 있다. 요점은 이들을 자세히 알아보고 조심해야 한다는 거다.

이슬람권 이민자들로 인해 실제 유럽의 범죄율은 크게 올랐다. 1975년부터 스웨덴은 이슬람권 이민자들을 받고 다문화를 수용했다. 당해부터 421건의 강간사건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았다. 인권단체들이 눈에 불을 켜고 이민자들에 대한 비판을 방탄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점점 늘어나 2014년에는 6620건을 달성했다. 스웨덴은 올해 기준으로 40년만에 범죄율이 300%가 늘어났으며 강간율은 1472% 증가했다. 스웨덴 경찰은 이민자들이 많은 특정 구역을 ‘가면 안되는 곳(No-Go-Zone)’으로 지정하고 사실상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난민을 받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우리의 세금을 축낼 가능성 있는 이들이 진짜 난민인지는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올해 들어온 519명의 예멘 난민 중 남성은 504명에 이르는 반면 여성은 45명에 불과한 것은 매우 문제가 있어 보인다. 혹자는 내전 중인 예멘에서 남성이 학살 대상이라고 변호하지만 건장한 남성이라면 마땅히 제 자리에서 나라를 지키고 노약자부터 피신을 시키는 게 도리 아닌가? 그리고 종교도 같은 이슬람권인 말레이시아에 안착을 했는데 다시 한국까지 온 건 '안전'을 추구해야할 난민이 ‘경제적 이득’을 계산한 것 아닌가?

이 외로운 남성들이 개방적인 한국 여성들에게 그들의 문화적 배경으로 접근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문제다. 일부다처제와 아내를 때리는 것을 허용하는 이슬람 율법도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줄 수 있다. 

자유와 인권을 누리며 문명의 정점에서 깨춤을 추는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포용성을 자랑한다. 그들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도 자신들처럼 개화돼 있을 거라 착각한다. 다분한 위험 가능성을 경고하는 사람은 ‘차별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달아 조롱한다. 예멘 난민이 화제가 되자 언론들은 ‘난민 미담’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현금 67만원 그대로…제주도민 지갑 찾아준 예멘 난민들’, 지난 23일자 뉴스1 기사다. 그게 진짜 우리사회에 필요한 소식인가? 국민들은 그들이 어떤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 헌법을 받아들여 어울려 살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강제송환은 난민법 때문에 불가능하니 이들을 한국 문화에 적응시키는 것도 숙제다. 그런데 글쓰는 인간들이 이런 주제들은 놔두고 봉창을 뚜들기고 있다.

지금 문제가 없다고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하면 오만이다. 눈에 불을 켜고 잠재적, 그리고 미래에 충분히 일어날 가능성 있는 위험을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려야 한다. 그게 언론인을 포함한 지식인들의 역할이다. 이상주의에 빠져 착한 소리들만 하다가 ‘서울역 사태’가 일어나면 도대체 누가 책임지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을 넘지 않으려 가식을 떠는 인간들 때문에 피해는 일반 국민들이 고스란히 입는다. 한국 PC들이 본 기자에게 차별주의자 딱지를 붙인다면 기꺼이 볼짝을 내주겠다. 그들의 비방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본 기자는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에만 관심있다. 

조준경 기자 calebca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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