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선거 참패-洪 실각 직후부터 "우편향·수구" 운운 하며 중앙당 해체 등 독단선언
선출직·임명직 해당 안되는 권한대행직으로 독선…'오락가락' 복당파가 중앙당·이념 칼질
사수파 항의 불구 "친박 망령"이라며 복당파 결집만…대행직 사퇴커녕 당 수석대변인 인선
교과서 '자유' 삭제에 北 비핵화 거부·경제파탄 양상 뚜렷해져도 무관심한 제1야당
舊 친박·비박 '도토리 키재기' 그만, 계파대립 종식·자유수호 단일대오 확립 않으면 소멸할것

한기호 PenN 기자
한기호 PenN 기자

6.13 지방선거에서 '역대급' 패배를 당한 자유한국당에서 지도부 공백이 초래되자마자, 어찌 보면 '예상대로' 진흙탕 싸움이 일고 있다. 소재파악을 못 하는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싸움의 열기가 뜨거워질수록 한국당에 대한 '혐오지수'도 덩달아 최고조에 이르는 양상이다.

진흙탕의 중심에는 김성태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있다. 선거 참패를 확인한 다음날(14일) 홍준표 당대표가 '약속대로' 사퇴하고 나서, 당헌 제30조에 따라 당대표 권한을 자동으로 승계한 인물이다. 지난 13일 밤, '홍준표 실각'이 가시권에 들어오자 마자 어용방송에 대고 "너무 우편향적인 정책"과 "남북관계, 국제관계에 있어 수구적인 입장"이 너무 과했다면서 먹기 좋은 '떡밥'을 던져줬다.

당대표와 함께 '투톱'으로서 이끌어온 당의 이념노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으로 권한대행 첫 행보를 시작한 셈이다. 한술 더 떠 15일에는 비상의원총회를 열어 이번 선거를 "한국당을 탄핵한 선거"로 규정하고, "수구기득권, 낡은 패러다임에 머무는 보수는 탄핵당했고 저희는 응징당했다"고 의원들을 상대로 강변했다.

도대체 그동안 한국당의 어떤 행보가 '너무 우편향'이고 '남북관계에서 수구적'이었는지 구체적인 논거는 내놓지 않은 채 "보수이념의 해체"까지 입에 올렸다. '내 잘못은 없고 이념 탓'이라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유체이탈 화법'이 날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18일 '현안 관련'으로만 예정했던 기자회견에서 예고 없이 중앙당 해체를 선언하고 "새 이념과 새 이름으로 시작할 것"이라고도 했다. 원내대표가 본직이면서 "원내중심 정당화"라는 말로 원내 기득권 집중만큼은 살뜰하게 챙겼다.

이 모두 선출직도 임명직도 아닌 권한대행 자격으로 일방 선언한 것이었다. 이런 결정이 당내 공감대 없이 이뤄졌다는 건 초·재선 의원 모임 등에서 보인 '어이없다'는 반응과 의원총회 개최 촉구로 즉각 확인됐다.

그가 가진 권한에는 정치적 정당성이 부족하다. 그동안 원내에서 이뤄진 대여(對與) 투쟁에 "들개"를 자처한 '원내대표 김성태'가 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선거 참패의 책임론을 홍 전 대표에 떠넘기고 비껴갈 수가 없는 위치라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들개'는 주인이 없어진 집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당장 권한대행직을 내려놓고 자숙하라는 요구가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옛 친박(親박근혜), 비박(非朴)을 막론하고 지난해 '탄핵 정변' 당시 흩어지지 않고(자의 반 타의 반) 당을 지킨 '사수파'들이 중심이 됐다. 그동안 홍준표 전 대표의 그늘 아래 계파색을 숨겼지만, 김성태 권한대행은 구(舊) 바른정당 '복당파'의 핵심 일원으로 우파 내에서 "기회주의자"라는 혹평을 받아 왔다.

앞서 비박 중에서도 김무성계·유승민계는 새누리당 시절부터 좌클릭을 '합리적·개혁적 보수'로 포장하는 한편 '박근혜 때리기'로 언론의 관심을 갈구했다. 나아가 2016년 10월부터 시작된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여론몰이에 적극 편승해 탄핵 정변을 주도하더니 당적을 내던지고 바른정당을 차렸다. 그러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대선후보 옹립에 실패하고 침체 일로를 걷다가, 김무성계 의원들이 총 3차례 걸쳐 친정으로 돌아와 '복당파'로 불리게 됐다.

이런 복당파가 돌연 당의 지휘부를 접수하더니 집단행동도 노골화하고 있다. '당이 비대하고 이념과 이름이 낡아서, 북한에 속아주지 않아서 선거에 졌다'는 문제인식을 토대로 한 김성태 표 쇄신안에 힘을 몰아주자며 19일 그 장본인과 함께 조찬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사수파 의원들의 요구로 열린 21일 항의성 의총에서는 '복당파 조찬 메모'를 들켜 물의를 빚은 박성중 의원까지 감싸고 돌았다.

김성태 권한대행은 선거 참패와 함께 '굴러 들어온' 당대표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며 복당파 일원들과 함께 철옹성을 쌓는 모양새다. '친박 핵심 모인다', '세력화 필요', '목을 친다'는 메모가 복당파 조찬 도중 누구의 말을 받아 적은 것인지 함구한 채 박성중 의원에 대한 꼬리자르기 식 윤리위 징계 예고로 봉합에 나섰다.

구 친박 초·재선 의원들의 반발만 큰 게 아니라 신상진·한선교 의원 같이 계파색 없는 4선 중진들까지 앞장서 절차 무시와 선거 패배 책임론을 물었음에도, 김성태 권한대행은 의총 다음날(22일) "친박의 망령"이라며 "지긋지긋하다"는 비난으로 일축했다. 추가 수습 필요성이 역력한데도 "더 이상 의총 사안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더 이상의 공론은 피곤하고, 사수파의 상식적인 문제 제기를 '계파 분쟁' 쯤으로 치부하는 게 오히려 편한 입장이 됐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을 선임하겠다더니, 내친김에 당대표 직권으로 중앙당 수석대변인(윤영석 의원) 인선까지 강행했다. 대행직 사퇴론에 쐐기를 박아버렸다.

"싸워라 싸워라", 덕분에 '김무성 대표 옥새 파동'을 정점으로 20대 총선 참패를 야기했던 친박 대 비박 프레임을 갈구하는 좌경언론들만 더 신이 난다. '적의 적은 내편'이라고, 드루킹 특검 관철을 위해 물·소금에만 의지하며 벌인 9일간 단식투쟁마저 비하·조롱만 받던 김성태는 하루 아침에 저들로부터 응원받는 입장이 됐다. '최순실 국조특위 위원장' 시절 탄핵 정변에 적극 가담하고, '한국당 때리기'로 존립 명분을 찾던 당에서 막춤을 추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호시절이 다시 왔다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당의 내홍은 한없이 깊어졌고, 지향점은 흐려졌다. 드루킹 특검팀은 낙동강 오리알이 돼 법무부 파견검사조차 제때 못 데려오는 입장이 됐고, 22일 '김상곤 교육부'가 기어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도려내 버린 중·고교 역사·한국사 교육과정 개정안 행정예고를 자행했는데도 원내 논평 한줄조차 없었다. 

날이 갈수록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새로 드러나고, 경제는 죽어가는데 '종부세 폭탄'과 정권에서 발뺌하던 '전기료 인상'까지 코앞인데도 제1야당이 세태에 무관심한 듯한 형국이 길어지고 있다. 말로만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이다. 정작 가야할 길은 모르고, 내부 암투에만 몰입하는 권력은 존재 가치가 없다.

한편 그 암투의 현장에 '잘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이들은 지난해 5.9 대선에서의 홍준표 후보 득표율(24.03%) 이후 1년, 그 이상의 정당득표율 28.40%(전국 기초·광역의원 비례대표 선거 총 득표율)를 이번 선거로 확인하고도 소위 '천하제일 자학대회'라도 하듯 패배주의를 확대 재생산하고, 상대 계파에게 책임을 떠넘기느라 여념이 없다.

전임 지도부가 총사퇴했지만 여론조사 지지율이 반등은커녕 하락세로 돌아섰다. '실익이 있느냐'는 의문마저 제기된다. 자신들의 주군을 지키는데 투신한 적 없는 옛 가신들이나, 내부총질로 적진에 표를 구걸하던 이들 모두 '도토리 키재기'를 해 왔음을 인정하고 오로지 우파 대표정당 차원에서 정확한 공과(功過)를 파악해 대책을 세울 때 아닌가. 하루 빨리 사심을 버리고 계파 대립을 상징적으로라도 종식한 뒤, 110여명 의원들이 '자유수호' 노선 단일대오를 확립하지 않으면 일부러 해체하지 않아도 소멸당할 수 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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