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남북 장성급회담서 MDL 양측 40km내 군용기 비행 금지, 60km내 정찰 금지 종용
韓美연합훈련 중지 이어…北 "서울불바다" 운운 장사정포 위협 사전포착 대응 어려워져
회담 닷새 뒤 '反美親北성향' 문정인·김종대 등 "국방개혁2.0 재검토" 공군 부추겨
이왕근 공군총장 軍수뇌 중 처음 "방향조정" 동조…"주변국 위협 대응" 北서 눈돌리기도

북한이 지난 14일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한국군에게 "군사분계선(MDL) 양측 60km 이내에서는 정찰기 비행 등 상대방에 대한 정찰활동을 하지 말자"고 제안한 것이 일주일여 지나서야 알려졌다.

북측은 "MDL 양측 40km 내에선 전투기 등 한미 및 북측 군용기를 비행시키지 말자"는 요구도 했다고 한다. 동아일보는 22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북측이 회담 당일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하면서 이런 요구사항을 내놨다고 전했다.

6.25 남침 전쟁의 침략주체임에도, 군사적 긴장완화라는 명분하에 한미연합군의 대북 감시망을 걷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한반도 유사시 가장 빠르게 대북 공습에 나설 한미 공중전력의 대비 태세까지 무력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동아일보는 다만 "장성급 회담이 10년여 만에 이뤄진 만큼 양측이 서로의 요구 사항을 듣고 분위기를 살피는 데 주력해 북측 제안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는 않았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런 제안을 통해 북한이 한미 첨단 정찰기의 MDL 인근 활동을 대표적인 적대행위로 규정한다는 점은 분명해졌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남북장성급회담 장면.(사진=연합뉴스 자료)
남북장성급회담 장면.(사진=연합뉴스 자료)

미군이 운용하는 글로벌호크, U-2 등의 정찰기는 MDL을 넘지 않고도 MDL 북측 수백 km 지점의 북한군 움직임을 손바닥 보듯 감시할 수 있다. 북한은 후속 군사회담에서 소위 비핵화 상응 조치라는 명목으로 이런 식의 무장해제 조치를 한미가 우선적으로 이행하라고 종용할 가능성이 높다.

군 안팎에선 북한 제안이 만에 하나 현실화될 경우 '킬체인'에 큰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킬체인은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 징후를 사전에 포착해 선제타격하는 개념으로,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대량응징보복(KMPR)과 함께 한국형 3축 체계를 이룬다. 

미군이 운용하는 정찰위성 외엔 사실상 감시 수단이 사라지면서 대북 감시 태세에 커다란 공백이 생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이 수도권을 겨냥해 MDL 일대에 집중 배치, "서울 불바다" 위협이 가리키는 장사정포 도발이 현실화하더라도 사전에 포착하고 대응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북한은 14일 회담에서 자신들도 MDL 북측 60km 내에선 정찰에 나서지 않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은 MDL 북측에서도 남한을 집중 감시할 수 있는 작전능력을 갖춘 정찰기 등 정찰자산이 없다. 북한이 수시로 소형 무인기를 MDL을 넘어 남측으로 내려보내며 대남 정찰에 사활을 거는 것도 이 때문이다. MDL 인접 작전을 수행할 최신예 전투기도 없다. 북한 입장에선 손해 볼 게 없는 셈이다.

3축 체계는 문재인 정부가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한편 전술핵 재배치를 완강히 거부하면서 내세웠던 대안이나, 올해 초부터 남북 정권이 조성한 이른바 '평화무드'를 이유로 이마저도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미동맹이 깨져도 전쟁은 안 된다', '미북 평화협정 후 주한미군 주둔 명분 없다' 등 숱한 친북·반미성 주장을 반복해온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지난 19일 "판문점선언과 북미(미북)정상회담 등 한반도에 상황 변화 요인이 생겼는데 국방개혁 2.0도 전반적으로 재검토가 필요한 것 아니냐"고 주장한 바 있다.

문정인 특보는 당일 서울 공군회관에서 열린 '제21회 항공우주력 국제학술회의' 제1부 토론회 사회를 보면서 이렇게 말한 뒤 "작년에 북한 미사일 위협으로 제기된 3축 체계를 추진하면서 공군의 입장이 상당히 반영되지 않은 측면이 강했다"며 "현재 국방부에서 국방개혁2.0에 대한 보완 작업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라고 사실상 정책 백지화를 주문했다.

토론에 참석한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5월16일에 원래 확정되기로 예정됐던 국방개혁 기본개혁이 대통령 재가가 무기한 연기되면서 청와대 보고는 간담회로 축소됐다"면서 "작년에는 3축 체계 조기 완성을 위해서 총력을 동원하던 분위기로서의 국방개혁이 올해 와서는 갑자기 방향타를 상실하고 주저앉은 것"이라며 같은 궤에서 '재수습'을 주장했다.

이에 이왕근 공군참모총장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세계평화를 위한 큰 발걸음이 시작됨에 따라 국방개혁 2.0도 일부분 방향 설정을 새롭게 해야 할 시기"라고 동조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 부임 이후 설계된 국방개혁2.0에 대해 군 수뇌부에서 '방향 조정'을 언급한 것은 이왕근 총장이 처음이다.

그는 나아가 "우리보다 양적, 질적으로 우수한 군사력을 보유한 주변국들의 위협에 대비한 실질적 대응 능력을 어떻게 구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도 했다. 벌써부터 안보위협의 주체를 북한이 아닌 주변국으로 돌리는 셈이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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