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샘의 교실이야기 18] 선거는 끝났고 민주주의는 남았다
[유니샘의 교실이야기 18] 선거는 끝났고 민주주의는 남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촛불’과 ‘광장’으로 학습된 민주주의는 왜곡된 민주주의
잘못된 학습효과가 불러온 설익은 ‘시민 불복종’이 민주주의의 전부 아니야
소중한 투표권으로 개인이 실천하는 ‘진짜 민주주의’ 가르쳐야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선거가 열리는 해는 민주정치의 원리와 법치 그리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 등을 가르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산교육의 장이다. 작년부터 법치가 진통을 겪고 숱한 사람들이 애통해 하던 시간들이 이어지면서도 ‘민주’는 이 사회를 관통하고 있었다.

"국민이 주인이다!" 이 보다 가슴 뛰게 하는 선언이 있겠는가.

민주주의란 ‘국민이 주인인 정치’라고 말하는 아이들. 눈만 뜨면 광장에 쏟아져 나온 국민들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광장정치가 민주주의의 전부라고 인지하기에 이르렀고, 촛불을 치켜든 광장의 ‘혁명’이 시민이 쟁취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정치가 무엇이냐, 우리가 치르는 선거가 민주주의에서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답은 ‘촛불과 광장의 시위를 정당화 시키는 시녀’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게 바뀌고 만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광장에서 촛불을 치켜들고 시민의 목소리만 드높이면 그것이 민주주의인가. 현재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사회과 교과서(법과 정치)에서는 우리나라의 민주정치를 다음과 같이 적시하고 있다.

● ‘한국형 대통령제’, ‘대의민주제’, ‘참여형 정치문화’로 표현되는 우리의 민주정치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는 의원내각제 요소를 가미하는 한편,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한 권력 집중형 정치 제도의 성격을 지닌다. 흔히 한국형 대통령제라 불리는 현행 정부 형태는 국무총리제, 국무회의제, 법률안 제출권  등과 같은 의원내각제 요소를 가미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대통령 임기 5년 단임제, 긴급 명령권 등과 같이 일반적인 대통령제와는 다른 요소를 지니고 있다.”

“국민의 대표 기관인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기초하여 국가 권력이 행사되는 대의민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제1조제 2항).”,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제40조).”, “국회는 국민의 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제41조제 1항).”라고 헌법에 규정하여 대의 민주제원리를 따르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참여형 정치 문화를 지향하는 가운데 더욱 성숙한 민주 정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중략) 참여 과정에서 나타나는 대립과 갈등을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서로 다른 의견은 숙고와 토론, 그리고 타협을 통해 조정되어야 한다. 토론은 자신의 견해를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 것이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타인의 견해도 하나의 의견으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 과정에서는 하나의 결론을 내기 위해 다수결의 원칙을 적용하여 다수 가 원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민주 정치는 소수 의견에 대한 관용과 배려, 그리고 대화와 설득이 이루어질 때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광장에 쏟아져 나오는 광기어린 시민의 목소리를 의사결정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말도, 국민청원을 법제화하는 의사결정과정이 제도화된다는 말도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청와대 홈페이지엔 하루에도 수십 건의 청원이 봇물을 이룬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채택하는 직접민주주의 요소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투표와 지방자치법에 명시된 주민 투표, 국민소환이 전부일 뿐임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왼쪽) 지금은 삭제된 국가대표 선수들 사형집행 청원
(오른쪽) 교육감 선거에 불만을 표하며 선거연령을 낮추어 달라는 청원

교과서에는 오히려 현재 우리나라에서 대의민주제의 문제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숙의(심의)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하며 또한 시민들의 ‘토론’결과를 반영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가슴이 달구어지기만 하면 플랭카드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오고, 집단행동을 하고, 청와대에 청원을 올리고 이 모든 것이 민주주의의 전부인양 이야기 하고 있다. 대체 왜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 것일까. 이른바 ‘학습효과’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설익은 <불복종>만이 민주주의일 수는 없다.
                         
오랜 동안 미디어를 활용한 수업을 해온 필자는 작년 탄핵 정국 시기엔 수업시간 마다 곤혹을 치러야 했었다. 신문기사를 활용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근거 자료로 만든 후, 3분 동안 매 시간 돌아가며 2명씩 자신의 생각을 말하게 하는 이른바 ‘3분 스피치’를 꾸려왔었다. 10여 년 이상 해오고 있는 미디어 활용 수업인데, 사회의 모든 현상이 교실로 들어와 생동감이 넘치며, 학생들과의 거리를 좁혀주고, 살아있는 지식을 나누며 교감할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수업이어서 늘 해오고 있다.

그러나 작년의 경우, 탄핵정국이 전개될 무렵에는 어떤 말도 진심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원칙을 중시하는 교사의 진정성 있는 말조차 모두 왜곡된 언론의 정보들 때문에 뒤틀리고 곡해된 채 전달되었다. 모든 신문이 탄핵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고, 천편일률로 거짓보도가 도배된 상황이었다. ‘3분 스피치’ 자료도 온통 그 내용이었다.

“최OO은 죽여야 돼요.”
“박OO가 빨리 뒈졌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의 막말은 거침이 없었고, 자신들의 감정과 바람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 자유로운 민주주의라고 여기는 듯했다. 기존의 법과 질서에 저항하고 거부할 권리가 국민의 자유이며 그것을 보장해주는 것만이 민주주의이기라도 한 듯이.

재판도 치러지기 전, 정치지도자에 대해 사법처리를 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소위 국민정서법으로 유무죄를 결정하는 것은 마녀사냥에 다름 아니라고 말했더니 화장실벽에 낙서가 등장하기도 했다. 필자더러 ‘박빠’라고 했다. 어처구니가 없는 경우여서 대꾸할 일고의 가치도 느끼지 못했지만 한편으론 서글픔이 밀려들기도 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교사의 이야기가 먼저 받아들여질 만큼의 신뢰를 받지 못한 것이라는 서글픔과 자괴감. 그렇다고 거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예와 비유를 들어 이야기하며 숨차게 한 학기를 마무리했다. 여전히 TV 에선 주말마다 촛불이 넘실거렸고, 광장에 모인 인파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깨시민’으로 포장되었다.

그렇게 광장에 모인 집단이 정권을 잡으며 ‘촛불정신’을 운운하는 것이 대세가 되어버릴 무렵, 아이들은 그런 것이 민주주의고 민주주의는 광장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각인되기에 이르렀다. 민주주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해도 그다지 설득력을 갖기 어려워져만 갔고 시민의 ‘불복종할 권리’야 말로 진정한 민주시민의 자격인 듯 학습되어갔다. 토론을 활성화시키겠다고 교육청이 권장했던 도서 중 <시민의 불복종> 이란 책을 읽으며, 아이들은 광장에 모여 촛불로 어지럽혀진 집단행동이 기존의 정권에 저항할 권리라고 정당화시키려 했다. 그러나 사실 그 책의 저자는 정부의 과도한 조세에 대한 저항을 위해 불복종을 강조한 것이었고, 권리보다 자유에 방점이 찍혀있음을 힘주어 강조해야 했다.

● ‘내로남불’은 이제 그만, 민주주의는 표로 심판 하는 것

그렇게 ‘시민의 불복종’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불복종’이 민주주의의 화신인 듯 이야기 하던 그 사람들은 이 정부 들어 뭐든 순응만 하려한다. 거부하지 않는다. 1년이 겨우 지났을 뿐이건만 저항과 불복종이 위대한 시민의 권리라던 그들은 이제는 순응과 복종이 시민의 덕목이라 말한다. 이해하기 곤란하다.

아이들은 또 어떤가. 집단으로 광장에 모여 떼로 외치고 떠들면 현실이 되고 세상이 바뀌더라 싶은 학습효과를 곳곳에서 실천하려 들고 있다. 청와대 청원 페이지에 가보면 중고물건 ‘장터’같은 청원에서부터 한 개인의 복수전 그리고 심지어 자신들의 맘에 들지 않으니 교육감을 갈아치울 기회를 달라는 집단행동에 이르기까지 차마 눈뜨고 봐주기 어려운 지경이다. 민주정치야말로 숙의(熟議)를 바탕으로 개인의 권리를 신중하게 표현하는 제도이며, 정부나 정권을 엄숙하게 참정권이라는 표로 심판하는 것임을 배우지 못한 탓일테다.

지금은 태생부터 광장의 집단행동으로 만들어진 정부가 들어서 있고,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있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야말로 우리나라 민주정치의 특징이라는 것을 이 아이들이 스스로 알도록 기대하기 어렵다. 민주정치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니라 ‘법의 지배(rule of law)’임을, 통치자뿐 아니라 누구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법에 종속되어야함을, 또 동시에 모든 국민은 국가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보장되어야함을 하나하나 짚고 가르쳐야만 하는 것이다.

얼마 전 마침 선거를 치렀다. 아직 선거권은 없지만 수년 내에 투표권을 가지게 될 아이들에게 제대로 민주주의를 가르칠 기회였다. 그래서 ‘짱돌과 촛불’ 대신 ‘투표용지’가 신성한 시민의 권리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무기이며 도구임을 힘주어 말하고 팁 하나만 날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뭐든 다 퍼주고 다 해준다는 사기꾼만 거르면 여러분의 투표는 성공일 것이다. 2년 후 명심하라고! 알겠지?”

조윤희(부산 금성고 교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6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