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소리(VOA)는 18일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과거 미북 간 핵합의와 비교하는 기사를 실었다.

VOA에 따르면 미국과 북한이 핵 문제와 관련해 체결한 주요 합의는 크게 4번이다.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19공동성명, 2012년 2.29합의 그리고 이전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

VOA는 “위의 합의들은 세부 내용은 다르지만 모두 큰 틀에서 북한 비핵화와 미북 관계 정상화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미북 간 새로운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미군 유해 송환 등 4개항으로 구성됐다.

기존의 합의들과 달리 양국 정상이 서명했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크지만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또한 ‘비핵화’ 관련 내용이 항상 1항으로 제시됐던 과거와 달리 3항에 등장한 것도 특징이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와 북한 김정일 정권이 합의한 제네바 합의는 북한 핵개발 시설 폐기와 그에 따른 경수로와 중유 제공을 주요 내용으로 삼는다. 또한 양국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의 비핵화에 근거한 평화와 안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목표도 포함됐다. ‘미군 유해 송환’을 제외하면 이번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 명시한 ‘미북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 비핵화’ 모두 기존에 제네바 합의에 담겨있던 내용이다.

특히 제네바 합의의 경우 모든 항마다 세부 조항을 둬 서로가 해야 할 일을 구체적, 단계적으로 규정했다. 무엇보다 경수로 건설 진척 상황에 국제기구의 사찰과 검증, 핵 설비 폐기, 핵연료 국외 반출 시기를 연동하는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제시했다. 또한 ‘정치적, 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를 추구한다’로 표현된 2항에서는 경제 관련 제한 완화,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 대사급 외교 관계 수립 등 구체적인 목표를 명시했다. 그러나 실제로 미북 간 관계 정치·경제적 정상화와 핵 없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 정착 부문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북한이 관련 조항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0년 10월 클린턴 행정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백악관을 찾은 조명록 차수와 함게 발표한 ‘미북 공동 코뮈니케’를 계기로 미북관계가 잠시 급진전하는 듯 보였으나 임기 말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에 대한 반대 여론이 많고 미북 수교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특히 이번 싱가포르 공동성명 4항에 명시된 ‘미군 유해 송환’ 작업은 1990년대부터 이미 진행됐지만 미북관계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다.

2002년 북한은 고농축우라늄 개발 의혹 속에 핵동결 해제 선언을 했다. 이어 2003년 제네바 합의는 파기됐다.

2005년 타결된 9.19공동성명에서 6개국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평화적으로 달성하는 데 만장일치로 뜻을 모았다. 또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 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북귀할 것을 약속했다.

또한 미국은 북한을 공격 또는 침공하지 않으며, 미국과 북한은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다. 9.19 공동성명은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미군 유해 송환’ 내용을 제외한 거의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비핵화 부분도 항층 구체적이다. 그러나 합의 직후 북한과 거래한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이 미국의 제재를 받고 북한은 다음해 10월 첫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후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의 핵실험 위기를 돌파하고 9.19 공동성명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2007년 2.13 합의를 체결했다. 이 합의에는 북핵 폐기를 위한 단계적 조치가 구체적으로 명시됐고 북한이 이를 제대로 이행하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북한은 2.13합의에 따라 다음해 6월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다. 이어 10월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제외시켰다. 그러나 북한 핵 신고 검증방법을 두고 당사국들 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북한이 검증 의정서 작성도 거부해 결국 그해 12월 6자회담은 중단됐다. 2009년 북한은 장거리 로켓 시험 발사와 2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결과적으로 9.19공동성명, 2.13합의도 사문화 됐다.

2011년 7월 미북 고위급대화가 다시 시작됐고 2012년 2.29합의가 도출됐다. 이 합의에는 북한은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영변 우라늄농축 활동을 임시 중단하고 미국은 24만 톤에 달하는 대북 식량지원에 나선다는 새로운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합의 발표 2주 만에 북한은 로켓발사 계획을 밝혔고 실제로 두 달 뒤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쏘아 올리면서 합의는 다시 수포로 돌아갔다.

미국과 북한은 이처럼 지난 25년 동안 핵 문제를 놓고 여러 차례 대화에 나섰고 합의와 파기를 반복해 왔다고 VOA는 전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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