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13명 "재판거래 의혹 근거 없다…"국민에게 혼란 주는 일 계속되면 안돼"
김명수 "고발에 따라 수사 이뤄지면 협조...현직 판사 13명 징계"
김 대법원장, 직접 고발 안했지만, 사실상 '칼자루' 역할 자처한 모습
'법원 신뢰 회복' 가장한 정치적 공세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돼

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제공]
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제공]

김명수 대법원장이 15일 이른바 ‘재판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향후 진행될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김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전원이 반발하고 나서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1시 40분쯤 법원 내부통신망을 통해 “섣불리 고발이나 수사 의뢰와 같은 조치를 할 수는 없더라도, 이미 이뤄진 고발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해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모든 인적·물적 조사자료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사법행정의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며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모든 인적·물적 조사자료를 영구 보존할 것을 지시했다. 그는 법원 차원에서 직접 고발하지 않는 배경에 대해서는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기관의 책임자로서 섣불리 고발이나 수사의뢰 같은 조치를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엄정한 조치를 약속한 바와 같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4명을 포함한 13명의 판사를 징계절차에 회부하고, 관여 정도와 담당 업무의 특성을 고려해 징계절차가 완료될 때까지 재판 업무 배제 조치를 취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사법부 스스로 훼손한 현실을 직시하고 국민 여러분의 질책과 꾸짖음을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정사실화하며, 국민의 신뢰 회복을 있도록 “사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발전위원회, 전국법원장간담회, 전국법관대표회의, 대법관간담회 등의 약 3주에 걸쳐 법원 안팎의 의견을 청취한 뒤 이같은 결론을 냈다.

그의 언급이 전해지자 고영한 대법관등 대법관 13명은 이날 오후 4시쯤 공개된 ‘사법행정권 남용사태에 관한 입장’이라는 문서를 통해 “재판의 본질을 훼손하는 재판거래 의혹은 근거가 없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면서 “이와 관련해 국민에게 혼란을 주는 일이 계속돼서는 안된다는 깊은 우려를 표시한다”고 밝혔다.

대법관들은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는 대법원 재판부와 엄격히 분리돼 사법행정 담당자들은 재판사무에 원천적으로 관여할 수 없다”면서 “대법원 재판은 합의에 관여한 모든 대법관이 각자의 의견을 표시해 하는 것이고, 전원합의체 재판장인 대법원장 역시 재판부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독립해 대등한 지위에서 합의해 참여하는 대법원 재판에서는 그 누구도 특정 사건에 대해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판결이 선고되도록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대법관들은 지난 1일과 12일 대법원장과의 간담회을 언급하며 "사법불신을 초래한 사법행정 제도와 운영상의 문제점에 대해서 철저한 사법개혁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회 일각에서 대법원 판결에 마치 어떠한 의혹이라도 있는 양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 당해 사건들에 관여했던 대법관들을 포함해 대법관들 모두가 대법원 재판의 독립에 관해 어떠한 의혹도 있을 수 없다는 데 견해가 일치됐다"고 강조했다. 

대법관들은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로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되고, 국민 여러분께 큰 혼란과 실망을 안겨드린 데 대해 참담함을 느끼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와 같은 형태로 의견을 개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며 조금이나마 의구심을 해소하고 법원이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의견을 밝힌다"고 덧붙였다.

입장 발표에는 김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13명이 모두 참여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조사단을 이끈 안철상 법원행정처장도 동참했다.

법조계에서는 대법관들의 입장발표가 김 대법원장에 대한 반기를 든 것으로 보고 있다.

다수 법관들은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며 무리한 정치적 공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앞서 지난 1월에도 대법관들은 이와 관련해 이례적으로 전원 공동 성명을 내기도 했다. 법원이 청와대와 재판을 거래했다는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청와대와 재판을 거래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는 게 다수 법관들의 주장이다.

지난 8일, 의정부지방법원의 법관대표 정원 판사는 이같은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에서 근무해본 분들은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정치적 공세에 불과한 것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제가 알기로 대법원의 판단이나 의사결정 구조상 그러한 일들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부연했다. 또한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시작된 이번 사태는 어느덧 재판거래 의혹으로 번져가고, 비로소 언론의 적극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며 “그러나 재판거래라는 표현은 특별조사단 조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언론에서 만들어낸 레토릭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번 김 대법원장의 입장문 곳곳에서 재판거래 의혹이 전혀 근거가 없는 데도 대법원장이 논란을 종식시키지 않고 검찰수사를 받겠다고 입장을 밝혀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대법원장의 입장에 대법관들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며 검찰의 수사착수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법률상 고발의무가 있는 대법원장이 ‘수사 협조’의사만 밝혔을 뿐 고발은 하지 않는데다 대법관들이 집단 반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관계자는 “오늘은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면서 “관할 검찰청에서 심사숙고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조준경 기자 calebcao@pennmike.com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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