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보수는 패배한 것이 아니라 폐기되었다
[정규재 칼럼]보수는 패배한 것이 아니라 폐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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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프레임 약발 떨어져 평화 선전전에 완패/ 다수당 제도와 선거 민주주의 중대 기로에
한국 민주주의, 균형 잃고 침몰한 세월호 닮아/ 지방분권 복지 평화 등은 인민주의적 구호
위장 평화 드러나면 거센 역풍 나온다/ 보수는 정치 동력 잃었고 지도자도 부재
전직 대통령 2명 감옥 보내고도 분열상만 보여/ 세계서 한국만 좌경화로 기울어가는 중
보수 이념과 원칙 잊지 말아야 국민이 돌아온다/ 국민은 책임 지지 않지만 고통은 그들 몫이다
정규재 대표 겸 주필
정규재 대표 겸 주필

보수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2018년6월13일.

한국인들은 북핵 폐기가 아니라 우파이념을 폐기하려고 작심이나 한 듯 자유한국당에 대한 강한 ’배제 투표’ ‘적대적 투표’를 실시했다. 시대적 여망이었던 북한 핵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가 아니라 완전하고 검증불가이며 불가역적인 패배 –CVID- 를 대한민국 보수 정치 세력에 안겼다. 역사상 이런 패배는 박정희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가 형성되었던 1960, 70년대 일부를 제외하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보수는 절망해야 마땅하다.

한국동란 이후 대한민국을 결정지었던 오랜 안보 프레임은, 가짜 평화가 가져오는 숨겨진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 평화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었다. 여기에 복지국가와 지방분권에 대한 오도된 열정과 희망들이 한껏 부풀어 올라 선거판세를 일찌감치 결정지었다. 지방분권에, 건강보험 확대에, 노동권력 강화에, 최저임금 파격인상 등의 정치적 뇌물이 퍼부어졌다.

전원합의적 쏠림 표결의 위험성

이번 선거는 차수를 거듭해가면서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만드는 그런 의미에서의 자유선거라기보다는 독재 정권을 만들어 내고, 소위 인민의 의지를 결집하는 그런 장치로 종종 해석되는 전원합의와 만장일치적 쏠림 현상에 지배되었다. 이런 선거라면 더는 선거가 사라지고 일당에 대한 찬반투표만이 존재하는 민주주의의 실종 상태로 치달을 수도 있다. 바로 그랬기에 이번 선거는 지독한 묻지마 선거였다. 범죄혐의가 짙어서 명백하게 사법처리 대상인 그런 후보조차 그 소속 정당에 따라 무조건적 지지를 받았다.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개별적 평가나 구체성보다는 집단적 소속감에 더 몰입하여 후보자가 우리 편인가 적의 편인가 만을 물었다. 유권자들은 개개 후보자들에게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들은 한덩어리로 움직였다.

이미 적폐 청산이라는 구시대적 이름으로 정치적 배제와 숙청이 자행되어 왔다. 이번 선거는 그런 반(反)민주적 폭거에 일종의 살인 면허증까지 부여하게 될 것인가. 보수정권의 전직 대통령 2명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였다. 국민들은 그들에게 일말의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땅을 칠 일이었지만 보수정치 세력은 국민들이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는데 실패했다. ‘인민의 법정’ 현상이란, 정의의 법정이 아니라 정치를 정의라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이미 그런 현상이 법치의 이름으로 자행되어 왔다. 그런 현상이 줄어들거나 자제될 것이라는 그 어떤 증거도 지금으로서는 찾기 어렵다. 이번 선거는 그런 반법치적 전횡의 법정에 면죄부를 발부한 결과에 이를 것이다. 정치를 정의라고 말하며 그들이 휘두르는 칼날은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스스로를 파괴하는 내재된 규칙을 작동시킨다.

제도는 약화되고 소위 인민의 의지만 부각될 수도 

이번 선거는 한국 민주주의의 극적인 부패요 타락이요 변질이다. 우리가 일찍이 허다하게 보아왔던 민주주의의 일탈 현상이 급기야 한국에서도 폭발할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이 제기된다. 나치즘이 그랬고, 문화혁명이 그랬고, 킬링필드가 그랬다. 최근의 현상으로는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과 그리스가 바로 그런 정치 실패의 살아있는 전형이 되어있다. 제도는 사라지고 인민의 의지만이 전면에 내걸릴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민주주의의 일탈과 전체주의적 검찰국가가 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대중이 정치권력을 맛보게 되면서 결국 한국도 민주주의의 운명적 덫에 걸리고 만 것이다.

민주주의는 불행히도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유권자가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제도다. 그들은 판을 뒤엎어버릴 권력을 가지고 있을 뿐 절대로 개별적 책임은 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온전히 국민들 스스로가 떠안는다. 아차, 하고 깨닫는 순간은 이미 늦은 때다. 이것은 거의 법칙과도 같아서 그 어떤 변명도 설명도 사후적일 수밖에 없다. 이번의 정치적 쏠림현상은 대한민국이 세월호처럼 균형을 잃고 침몰하는 극적인 계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 점이다. 대중은 책임지지 않는 존재지만 그 결과를 온전히 떠안는 존재이기 때문에 좌경적 전환이 만들어내는 비극적, 그리고 상응하는 결과도 온전히 그들이 떠안아야 한다. 북지재원은 바닥나고, 가난은 확산되며, 국가는 황폐해지고, 공원에는 쓰레기가 나뒹굴고, 사회는 분열되고, 강제적인 다이어트를 온 국민이 겪어야 하는 그런 결과는 사회주의의 일반적 결과일 뿐 한국에서만 예고되는 특수성이라고 할 수도 없다.

유권자 책임 안지지만 결과는 그들의 몫

노동 권력을 강화하고, 임금을 국가가 결정하며, 일자리를 나누고, 경쟁을 배제하고, 근로시간을 줄이고 평준화 교육을 강화하고, 일을 안 해도 그리고 공부를 안 해도 잘 살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그런 국민이 잘사는 국민일 수 없다. 가난한 국민이 많아질수록 좌익 정치가들이 더 득세하는 것도 필연적이다. 가난해진 어리석은 자들은 언제나 국가에 손을 벌리기 때문이고 좌익정치가들은 그들의 등에 올라타 가난과 국가 의존증과 게으름에 그들의 인민을 중독시키기만 하면 너무도 쉽게 정치권력을 거머쥘 수 있다. 가난은 좌익의 온상이다. 그리고 좌익은 그들의 국민을 가난하게 만든다. 부자가 되면 거역하거나 정치적 야망을 갖기 때문에 국민들은 언제나 우중의 처지에 밀어 넣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이 바로 그런 곳이며 남한은 그 반대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그다지 논리적이지는 않다.

대중영합 아닌 보편가치 지켜야 국민 돌아온다

문제는 보수다. 보수는 정치의 장에서 배제되었고 축출되었고 거세되었다. 언론은 좌익의 선전기관으로 변모한 지 오래다. 우리는 나치즘의, 스탈린니즘의, 그리고 북한 언론들이 독재당의 선전선동 기구화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새시대를 열었다면서 맞장구를 치는 것은 이미 선동기구일 뿐 언론이 아니다. 그런 조건 하에서 우리는 보수를 재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제도화된 정치의 장에서 건강한 보수 세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를 우리는 먼저 물을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가 법치의 골격을 갖는 것이며 제도로서의 정치를 말하는 것이며 작은 정치여야 하고 자유를 신장하는 정치여야 하며 국가의 복지독점이 그 국민을 노예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신앙고백을 보수정치가들은 과연 할 수 있는 것인가. 입법 타락이 극심하며 국회에서 두들겨대면 법이라고 생각하는 한마디로 웃기는 법의 타락을 입법이라고 생각하는 국회의원들이 득실거리고, 좌익운동을 안했다는 것만으로 우익이라고 주장하는 기회주의자들이 득실대는 그런 자유한국당으로 무슨 보수정치를 재건한다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양극화를 줄이고 어떻게 하면 빈민을 구제하며 빈곤층을 끌어올리는 길인지, 그리고 무엇이 그 국민과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길인지 진지한 고민조차 없는 자들이 보수 간판을 달고 있으니 그 누가 보수를 믿고 의지할 만하다고 하겠는가 말이다.

보수는 지금 더한 절망감 내재화해야

더구나 보수운동이 이제 겨우 1년 남짓인데 시민사회 내부에 싸구려 음모론자들은 왜 이다지도 많고, 왜 이다지도 내부 싸움질을 좋아하는 인간들이 많은지. 이는 실로 이해와 납득의 수준을 넘어선다. 서로가 발목을 잡고 끌어내려 지도자 한 명 육성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종북을 비판하면서 종미는 또 무슨 말인지, 미국에 대해 그 어떤 응원군이 온다는 것인지, 코앞에 닥친 미북 회담을 아예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장면들에서는 국민들이 그들의 협량에 웃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런 평단에 대해 국민들이 기대를 접는 것도 자연스럽다.

과연 보수는 재건될 것인가. 소위 국민에 영합하면서 대한민국을 나락으로 밀어 넣을 것인가, 아니라면 국민들과 함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며, 보다 숭고한 이념의 영역으로 스스로를 승화시켜갈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다만 패배와 절망을 뼈 속 깊이 더 새겨 넣는 것이 중요하다.

정규재 대표 겸 주필 jkj@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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