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경찰청, 지난해 6월 태극기 집회에 기부금 낸 시민들 금융정보 조회
'통지서' 받은 시민들, "내가 왜 수사 대상이냐" 불안 호소

#2일 저녁, 서울 노원구에 사는 김씨(52)는 집에 들어가기 전 우편함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랐다. 거래 은행이 금융거래 내용을 서울지방경찰청에 제공했다는 ‘통보서’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김씨는 순간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에 나가 후원금을 냈던 것을 떠올리며, ‘왜 경찰이 나를 조사하지’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올 들어 시민들이 받고 있는 금융정보 제공 통지서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운동본부’(이하 탄기국)의 불법모금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태극기 집회를 후원한 시민들을 ‘이 잡듯’ 수사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수사대는 지난해 6월27일경 이들의 금융정보를 조회했다. 이후 12월27일 정보제공 통지 유예기간이 끝나면서 통지서가 날아온 것이다.

통지서를 받은 시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수사대에는 ‘내가 왜 수사 대상이냐’며 항의하는 시민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통지서를 받은 한 시민은 “불법모금을 조사하려면 돈을 모은 사람들의 통장만 조사하면 되지, 왜 돈을 낸 사람들의 정보까지 조회하느냐”며 “이런 식의 ‘저인망 수사’가 타당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도 “몇 백만 원도 아니고 많아봐야 몇 십만 원 기부한 사람들이 개인정보까지 뒤져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앞으로 무서워서 어디 기부나 할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경찰은 불법모금 수사 시, 돈을 받은 사람과 낸 사람 모두의 금융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일반적인 수사방식이라는 입장이다.

수사를 맡은 지능수사팀 이모 경관은 “탄기국에 후원한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파악한 것은 맞다”면서도 “이는 단체 구성원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지 수사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찰의 이런 수사 방식이 ‘과잉이냐’ 여부를 둘러싸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불법 모금 수사 시, 기부금을 낸 사람의 통장까지 조회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냐는 지적이다.

한 변호사는 “시민들의 불안감을 조장해 다시는 해당 집회에 기부를 하지 못하도록 위협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경찰이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수사 방식에 대해 재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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