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기업가' 和談 구본무 LG 회장을 추모하면서

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
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

[꼭 두 달 전에 런던에서 나오는 잡지에서 아래 구절을 읽었습니다.

“옛 격언은 얘기한다, 권력은 부패한다고.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직은 반대의 경우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들 가운데 하나가 완전히 형성된 잡놈을 가장 높은 공직에 선출했다는 아직도 당혹스러운 실재를 반영한다. (Power corrupts, goes the old saw. Yet Donald Trump’s presidency is the opposite case. It reflects the still-dumbfounding reality that one of the world’s oldest democracies elected a fully formed rascal to its highest office.)” 우리가 이번에 싱가포르에서 목도한 그 “당혹스러운 실재”는 우리를 계속 당혹스럽게 할 것입니다.

“잡놈”이 이끄는 세계에서 약소국의 국민으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전망이 암담해집니다. 그래도 삶은 이어지고 운은 계속 돕니다. 어려운 처지에선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보다 더 좋은 격언은 없습니다.

그러나 행운이 작동하려면, 그것이 작동할 바탕이 있어야 합니다. 작은 바탕이라도 없으면, 찾아왔던 행운도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서양 속담이 얘기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자신의 둘레에 있는 작은 일들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마음이 나지 않더라도, 마음을 추슬러서 작은 일들을 해야 합니다. 실은 그것이 또 다른 불운이 작동할 여지를 줄이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 저는 지난 달 서거한 위대한 기업가 한 분을 추모하고자 합니다. 우리 사회의 기틀이 빠르게 허물어지는 지금, 우리 시장경제 체제가 낳은 가장 멋진 사람의 모습을 다시 새기는 일은 뜻이 작지 않을 것입니다.

“국난사량상(國難思良相)이라는데… 하늘이 이 나라를 안 도우시는구나.” 지난 달 화담(和談) 구본무(具本茂) LG회장의 부고를 듣자, 저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습니다,

우리처럼 그리 크지 않고 무역의존도가 무척 높은 나라에서 진정한 재상은 온 세계를 시장으로 삼는 대기업들의 총수들입니다. 나라가 안팎으로 어려워진 지금, 화담처럼 뛰어난 기업가의 서거는 국가적 불운입니다.

현 정권은 많은 시민들의 시기와 증오를 받아온 재벌을 공격함으로써 시장 경제를 무너뜨리려는 의도를 드러냈습니다. 재계의 중심인 화담의 갑작스러운 서거는 그래서 제 마음을 암담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화담의 행적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모두 감동했습니다. 그 동안 시민들은 뛰어나면서도 인품이 높은 기업가를 간절히 바랐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화담은 국민적 영웅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재벌에 대한 태도도 상당히 바뀌었습니다. 화담이 LG를 세계적 기업으로 일군 것이야 물론 큰 공적이지만, 이처럼 대기업과 재벌 총수에 대한 지나치게 부정적인 감정이 시민들 사이에서 상당히 가시도록 한 것은 뜻이 더욱 큽니다.

이제 우리는 화담의 행적에 대해 시민들이 품게 된 감동과 호의가 이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점점 빠르게 바뀌는 현대 사회에선 모두가 잘 아는 사람도 곧 잊힙니다. 화담의 전기가 나오면, 그의 기억이 오래 가도록 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선 전기다운 전기가 씌어지지 않습니다. 객관적이고 정직한 전기를 허용하지 않는 문화적 풍토가 근본적 문제입니다. 유족은 송덕문만을 원하고 정직한 전기엔 적대적입니다.

기업가들의 전기는 유난히 드뭅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성공적 기업가였던 박흥식 화신 회장과 민족주의 세력을 대표한 기업가였던 김연수 삼양 회장은 깊이 연구될 만한 분들인데, ‘친일파’라는 부당한 평가 속에 묻혔습니다. 이병철 삼성 회장과 정주영 현대 회장은 생애가 비교적 잘 알려졌고 자서전도 있습니다만, 우리 시장경제의 앞날을 걱정하고 미리 대비했던 선각자인 최종현 SK 회장은 그의 업적에 걸맞은 전기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정이 그러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화담의 전기가 씌어져야 합니다. 그는 우리 시장경제 체제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모습입니다. 화담처럼 존경 받는 기업가가 다시 나오려면, 아마 한 세대는 걸릴 것 같습니다. ‘명령경제에선 자선이 존재할 수 없다’는 밀튼 프리드먼의 얘기를 우리는 새겨야 합니다.

전기의 바탕들 가운데 하나는 주인공을 알았던 사람들의 회고입니다. 예전엔 긴 편지들을 주고 받아서, 좋은 자료가 되었습니다. 이제 편지는 사라지고 모든 것들이 인터넷으로 오가서, 종이에 씌어져 남는 것들이 아주 적습니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주인공을 실제로 알았던 사람들의 회고들이, 단편적 일화들일지라도, 기록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매체마다 화담의 공적과 인품을 자세히 보도했으므로, 제가 덧붙일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저의 마음에 남은 그의 면모를 적어서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고인을 추모하고 작은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먼저 얘기하고 싶은 것은 화담이 LG를 발전시킨 업적을 평가할 때는 권력의 압력으로 LG가 반도체 사업을 양도한 사건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 유망한 핵심 사업을 잃으면서, LG전자는 삼성전차처럼 웅건한 기업으로 성장할 기회를 잃었습니다. 그런 재앙을 견디고서 화담이 오늘의 LG를 이루었다는 점은 늘 기억되어야 합니다.

화담은 너그러웠습니다. 제가 LG 임원들에게 인공지능에 관해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한 시간 예정이었는데, 마치고서 진행자에게 물었더니, 두 시간 걸렸다고 했습니다. 머리 속이 하얘졌습니다. LG 임원 몇 백 명의 오전 일과를 어그러뜨린 것입니다. 회장이 자리를 지켰으니, 모두 꼼짝 못하고 제 횡설수설을 들었던 것이죠.

망연자실한 저를 보더니, 화담은 웃으면서 “이왕 늦었으니, 점심 들고 가시라”고 권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점심까지 대접받았습니다.

제가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어려움을 얘기하자, 화담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5대 기업 총수 중에 감옥 안 간 것은 나뿐입니다.”

‘삼성, 현대…’ 하고 따져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정말 그러네요.”

화담은 싱긋 웃으면서 덧붙였습니다, “내가 잘 해서 그런 게 아니고, 우린 원래 구씨하고 허씨가 동업이라서… 그래서 회계 장부가 제대로 만들어졌습니다.”

화담의 ‘자기를 낮추는 해학’은 뒷맛이 담백했습니다. 해학에서 사람의 인품이 잘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제가 글 쓰느라 암 치료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화담은 병세를 물었습니다. ‘간에서 시작한 것이 복강으로 퍼졌고 이제는 폐로 번지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듣자, 그는 비서를 불러 버섯을 가져 오라 했습니다.

그 버섯이 브라질 원산으로 간에 좋다고 설명하고서, 화담은 이름이 좀 까다롭다고 했습니다. ‘아가리쿠스’라는 이름인데, 자신은 그것을 쿠스아가리로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구(본무)의 아가리’라는 얘기였습니다. 지금은 저도 그 버섯 이름이 헷갈리면, ‘Koo’s Mouth’를 떠올립니다.

그 뒤로 화담은 버섯이 떨어질 때쯤 되면, 버섯을 보내왔습니다. 마지막으로 받은 것이 작년 늦가을이었습니다. 그때는 화담이 수술을 받은 뒤였다는 것을 이번에 뒤늦게 신문에서 알았습니다.

자신의 병이 위중한데, 그는 제게 보낼 버섯을 챙긴 것입니다. 의사로부터 암 선고를 받아본 사람만이 그 충격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이 뒤집힌 듯한 그 충격 속에서 챙겨야 할 것들이 그리 많을 대재벌 총수가 따지고 보면 아무 인연도 없는 사람의 보약을 챙긴 것입니다.

저는 화담과 인연이- 혈연도, 지연도, 학연도 – 없었습니다. 화담은 제가 “재산권을 옹호해온 것이 고맙다”고 했습니다.

재산권은 실질적으로 시장경제와 동의어입니다. 그것은 법의 지배와 경제적 자유가 만나는 곳에서 확립됩니다. 사람의 재산에서 핵심이 자기 몸이므로, 재산권은 인권을 포함합니다.

재벌 총수들은 재산권의 중요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재산권도, 다른 소중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보살펴야 지켜진다는 것을 깊이 인식한 사람은 생각보다 드뭅니다. 거의 모두 자신의 지위가 자신의 행운과 능력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재산권을 지키려 애쓰는 자유주의 지식인들에게 감사하는 이는 더욱 드뭅니다.

그래서 저는 화담의 업적과 그의 인품을 떼어놓고 평가할 수 없다고 여깁니다. 그의 소탈하고 정직한 인품이 그의 ‘정도 경영’을 낳은 것이죠. 그리고 최고경영자가 그렇게 옳은 길을 걸은 덕분에, LG가 뿌리를 튼튼히 내릴 수 있었죠.

위에서 화담의 전기가 꼭 씌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만, 전기도 당연히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재미의 원천은 전기가 그리는 인물입니다. 기업 총수는 일반적으로 흥미로운 인물은 아닙니다. 돈을 벌고 사업을 키우는 일에 몰두해서, 인간적 풍모가 그리 매력적이지 못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대기업 총수라는 잘 다듬어진 외모 뒤에 자리잡은 개인적 모습이 흥미로워야 좋은 전기가 씌어질 수 있습니다.

다행히, 화담은 깊이가 있는 인물입니다. 한번은 “멧돼지 쓸개가 간에 좋은데, 한번 들어보세요” 하고 제게 권했습니다. 젊었던 시절에 함께 사냥을 했던 친구들이 보내준다고 했습니다. 화담 자신은 “살생이 싫어서” 사냥을 그만두었다고 했습니다. 대신 새를 관찰하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면서, 자신이 후원해서 낸 새에 관한 책을 건넸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사냥을 좋아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냥을 그만두게 되는 과정엔 가슴 아픈 사연이 있게 마련입니다. 화담의 얘기들에서 언뜻언뜻 그런 사연들이 비치곤 했습니다. 재벌의 장손으로 자란 그가 따스하고 소탈한 인품을 지니게 된 과정은 독자들에게 흥미롭고 교훈적일 것입니다.

연전에 곤지암 화담숲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화담은 둘레의 소나무들을 가리키면서, “아버님(구자경 명예회장)께서 아끼시는 나무들”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살펴보니, 나무에 관한 안목이 없는 저로서도 그 소나무들의 기품이 느껴졌습니다.

화담 자신은 단풍나무와 이끼를 기른다고 했습니다. 이끼를 기른다는 얘기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이끼는 나무나 화초에 비기면 눈에 잘 뜨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헐벗은 땅을 덮어 토양을 보존하고 수분을 유지해서 생태계에 큰 공헌을 합니다. 그런 이끼와 사람들을 보살펴 메마른 사회를 촉촉하게 만드는 화담이 서로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끼 구경을 마치고 공원으로 들어가려는데, 여직원이 화담을 막았습니다. 아직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회장을 몰라보는 직원도 있나?’하는 생각에 화담을 살펴보니, 작업복 차림에 선글라스 끼고 모자 눌러 쓴 모습이 그럴 만도 했습니다.

화담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나 여기 직원이야.” 그러고는 날렵하게 여직원을 돌아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직원? 본 적이 없는데…’ 하는 생각이 씌어진 얼굴로 여직원은 기다란 전지 가위를 휘두르며 걸어가는 화담을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직원이 아니었으므로, 손으로 화담과 저를 번갈아 가리키면서 일행이라는 것을 그 여직원에게 알렸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이 양반은 또 뭐야?’ 하는 생각이 씌어진 얼굴로 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습니다.

그 광경을 뒤에서 지켜보았던 안식구가 나중에 한마디 했습니다, “촌티 못 벗기로는 구 회장님이나 당신이나…”

화담숲을 자주 찾아오라는 화담의 얘기를 따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서양 속담대로, 좋은 시절은 빨리 흐릅니다.]

자연선택의 메커니즘

모두 잘 아는 것처럼, 진화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자연선택 이론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과 앨프레드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가 독립적으로 생각해냈다. 발표는 월리스가 먼저 했는데, 다윈의 친구들이 다윈이 먼저 생각해냈다는 증거들을 제시하자, 월리스는 선선히 다윈이 앞섰다고 인정했다.

월리스는 뒤에 자신의 이론을 부분적으로 버렸다. 그는 사람의 정신은 특별한 것이어서, 진화론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런 정신주의(spiritualism)는 당연히 진화론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진화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그의 업적도 낮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자연선택 이론은 다윈주의(Darwinism)라 불리게 되었고 월리스의 공헌은 거의 다 잊혀졌다. 애석한 일이다.

자연선택 이론은 ‘생존에 적합한 특질을 지닌 개체들이 살아남아서 자손들을 남기며,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주장이다. 이런 과정은 3단계로 이루어진다.

어떤 특질에 관해서 여러 변이들(variations)이 생성된다;

그런 변이들 가운데 환경에 적합한 것들이 생존하고 덜 적합한 것들은 사라진다. 달리 말하면, 자연에 의해 선택된 것들이 살아남는다.

선택되지 못한 것들이 비운 공간을 선택된 것들이 차지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들이 셋이 있다. 먼저, 자연 선택이라 했지만, 자연이 실제로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체들이 자연 환경에 잘 적응하면 살아남아 자손들을 널리 퍼뜨리고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자연이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개체들의 적응이고 그런 적응의 적합도가 운명을 결정한다.

둘째, 자연 선택은 가장 적합한 개체들을 뽑는 것이 아니라 덜 적합한 개체들이 사라지도록 하는 것이다. 즉, 자연 선택은 적응하지 못한 개체들이 사라지는 소극적 선택(negative selection)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종들은 그럭저럭 생존한다. 그리고 환경이 바뀌면, 잘 적응한 종이 될 수도 있다.

소극적 선택은 가장 적합한 종들을 뽑는 과정에서도 작용한다. 어떤 환경에 이론적으로 가장 잘 적응한 종들이 덜 적응한 적응을 압도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현실에선 사정이 좀 다르다. 적응의 적합도에서 100%인 종보다 조금 덜 적응한 종들이, 예컨대 적합도가 99%인 종들이, 오히려 더 번창하는 경우들이 흔하다. 100%짜리 종은 아예 없고 100%에 가까운 적합도를 지닌 종들이 번창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자연이 만들어낸 이런 체제는 시장경제와 본질적으로 같다. 어떤 환경에서, 보다 정확히 말하면 생물학적 틈새(biological niche)에서, 모든 종들과 개체들에게 같은 기회가 주어지고 생존 경쟁을 통해서 낙오자들이 퇴출된다. 시장에선 모든 기업들과 제품들에게 같은 기회가 주어지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기업들과 제품들은 퇴출된다. 그래서 시장에선 진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바로 그 점이 시장경제가 명령경제보다 우수한 근본적 이유다.

셋째, 생존엔 우연과 필연이 함께 작용한다. 위의 3단계 과정에서 1단계는 우연이 크게 작용하고 2단계와 3단계에선 우연의 역할이 작다. 1단계는 ‘변이의 생산(production of variation)’인데, 변이는 돌연변이(mutation)를 통해서 생산되므로, 우연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2단계 및 3단계에서 생존은 환경에 대한 적응에 달렸으므로 우연과 필연이 함께 작용한다. 이처럼 우연과 필연의 상호 작용에 대한 이해는 생명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긴요하다.

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작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