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 “재판거래는 불가능…프랑스 혁명과 비슷한 위기 느껴” 돌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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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거래라는 표현은 언론에서 만들어낸 레토릭에 불과”
“블랙리스트 비밀로 전직 대법원장 등 벼랑 끝으로 내모는 現 상황, 프랑스 혁명 당시 닮아”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 하의 특별조사단 등이 3차례에 걸쳐 추가 조사한 끝에 제기한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 현직 판사들의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 대해 제기된 재판거래 의혹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8일 의정부지방법원의 법관대표 정원 판사는 법관대표회의에 보낸 글을 통해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시작된 이번 사태는 어느덧 재판거래 의혹으로 번져가고, 비로소 언론의 적극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며 “그러나 재판거래라는 표현은 특별조사단 조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언론에서 만들어낸 레토릭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정 판사는 “대법원에서 근무해본 분들은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정치적 공세에 불과한 것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제가 알기로 대법원의 판단이나 의사결정 구조상 그러한 일들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부연했다.

정 판사는 일부 판사들이 언론 인터뷰나 입장표명 등을 통해 의혹을 부추기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쏟아냈다. 그는 “판사가 스스로 그러한 언급을 할 경우 파급효과가 결코 작지 않다”며 “요즘은 제가 판사가 아니라 무슨 마피아 조직원으로 의심받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우리 법원의 내부자들이 앞다투어 스스로를 자해하고 그 권위를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다”며 “이 정도면 거의 자초위난(自招危難) 수준이다. 이것이 그들의 어리석음탓인지, 교만함 때문인지는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판사는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로 시작해 ‘재판 거래’ 의혹을 확대된 이번 사법부 사태가 아무 이유 없이 마리 앙뜨와네트를 단두대에서 처형했던 과거 프랑스 혁명 당시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쩌면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는 블랙리스트를 빌미로 기조실의 컴퓨터를 뒤져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들, 그리고 법원행정처 출신 판사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현재의 상황도 프랑스 혁명 당시를 닮아 있다”며 “그것이 역사의 필연이라면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프랑스 혁명을 이끌던 로베스피에르도 그 단두대 위에서 생을 마쳤고 프랑스의 공화정은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자리를 잡았다는 점도 기억하시기 바란다”고 경고했다.

앞서 현직 대법관 7명과 서울고법 부장판사회의, 전국 각 법원의 수장들도 "재판 거래의 근거가 없으며, 검찰에 수라를 의뢰하거나 고발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요지의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다음은 의정부지방법원 법관대표 정원 판사의 글 전문.

<의정부지방법원 법관대표 정원 판사입니다.>

이번 임시회의에는 발언을 원하실 판사님들이 많아 저에게까지 발언기회가 돌아올지 알 수 없고 충분한 발언시간을 확보하기도 어려울 듯하여 제가 발언하고자 하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준비서면 형태로 작성하여 먼저 보내드립니다. 만약 회의에서 제게 발언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내용을 1분 이내로 요약하여 발언할 예정입니다.

의정부지방법원 부장판사들은 정식 판사회의는 아니고 비공식 간담회를 통하여 이번 사태에 대한 의견을 모았습니다. 우리 법원 부장님들의 대체적인 의견은, 걱정거리가 많이 있지만 젊은 판사님들이 사법부를 위하여 열정을 갖고 하시는 일에 대하여 적어도 발목을 잡지는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의견을 좇아 이번 임시회의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법원 부장님들의 우려도 여러분에게 함께 전달하고자 합니다. 꼰대들의 잔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저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의견들이기 때문입니다.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시작된 이번 사태는 어느덧 재판거래 의혹으로 번져가고 있고, 비로소 언론의 적극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재판거래라는 표현은 특조단 조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언론에서 만들어낸 레토릭에 불과합니다. 대법원에서 근무해본 분들이나 그들의 경험담을 들어본 분들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정치적 공세에 불과한 것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굳이 우리나라 대법관들이 얼마나 훌륭한 분들인지 강변하여 그들의 호위무사가 되고자 함이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 대법원의 판단이나 의사결정 구조상 그러한 일들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일부 판사님들이 언론의 관심에 부응하는 인터뷰나 입장표명 등을 통하여 사실상 그 의혹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대단히 걱정스러운 대목입니다. 법원에 근무하는 사람이 판사인지 검사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장삼이사가 아니라 판사가 스스로 그러한 언급을 할 경우 파급효과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 결과 국민들은 이미 재판거래 의혹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언론보도에 격분하여 대법원 점거농성을 한 KTX 승무원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요즘은 저희 와이프도 방송을 보고는 저에게 혹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이 사실 아니냐고 자꾸 물어봅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대법관들도 그럴진대 저 같은 일선 판사들은 여기저기 눈치 보아가며 재판 하느라 정말 힘들었겠다면서 위로의 말을 전한답니다. 요즘은 제가 판사가 아니라 무슨 마피아 조직원으로 의심받는 기분입니다. 판사는 목숨을 걸고 재판을 하는 직업이라는 신념으로 지금껏 버텨왔던 저나 대다수 판사님들의 자긍심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탓이라고 돌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우리 법원의 내부자들이 앞다투어 스스로를 자해하고 그 권위를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면 거의 자초위난 수준이고 더 이상 돌이키기도 어려운 상황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어리석음 탓인지, 교만함 때문인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국민들이 재판거래에 대한 의혹을 갖고 있다면 법원으로서는 검찰 수사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제 와서 수사를 받지 않겠다는 것은 자칫 국민들에게 진실을 감추려는 시도로 오해될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법원은 거의 외통수에 걸린 상황입니다. 검찰 수사가 부적절하기는 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검찰수사로 이번 사태의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는 둥, 관련자들을 형사처벌하여 사법적폐를 청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등의 성급하고 정치적인 언급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검찰도 이번 사건은 무척 난감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대법원장의 고발이 없더라도 그들은 결국 국민적인 의혹을 이유로 수사에 나서리라 예상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이번 사태의 진실이 아니라 아마도 기조실과 차장실의 컴퓨터일 것입니다.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법원 관계자의 컴퓨터는 그야말로 정보의 보고입니다. 검찰은 거기서 찾아낸 정보를 활용하여 적어도 향후 10년 이상 법원을 압박할 수 있는 먹거리를 찾아낼 것입니다. 영장담담판사를 압박해서 인사실과 윤리실의 컴퓨터까지 확보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테지요. 전직 대법원장을 포토라인에 세우고 법원 전체를 공격함으로써 법원이 사실은 검찰보다 못한 위선자들의 집단일 뿐이라고 국민들에게 홍보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노릴 수 있습니다. 수사 이후에도 의혹은 그대로 남고 대법원의 결백은 증명되지 않겠지만 그것은 법원의 책임으로 떠넘기면 그만입니다. 결국 가장 곤혹스러운 사람은 아마도 서울중앙지법의 영장 및 형사 사건 담당 재판부가 될 것입니다.

범죄혐의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있으니 대법원장이 나서서 고발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도 부적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의심이 합리적인지도 의문이지만, 합리적 의심은 유죄판결을 할 수 없는 이유가 되는 것이지, 직무고발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권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하고 그 사건의 재판을 맡게 될지도 모를 판사들이 시민단체를 흉내내어 그러한 이유만으로 형사고발을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분노가 이성을 가린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원래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존재들인지 자괴감마저 생깁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세력은 억울하게 갇힌 정치범들을 풀어주자는 거짓선동으로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뒤 거기서 확보한 무기를 이용하여 루이 16세와 귀족들을 단두대 위에 세웠습니다. 당시 마리 앙뜨와네트가 무슨 죄를 지어 죽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어디 있는지 모를, 어쩌면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는 블랙리스트를 빌미로 기조실의 컴퓨터를 뒤져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들, 그리고 법원행정처 출신 판사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현재의 상황도 프랑스 혁명 당시를 닮아 있습니다. 작금의 정치적 상황은 결국 현재의 사법부 구조를 붕괴시키고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던 판사 조직도 해체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의 필연이라면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겠지요. 하지만 프랑스 혁명을 이끌던 로베스피에르도 그 단두대 위에서 생을 마쳤고 프랑스의 공화정은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자리를 잡았다는 점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법부의 독립을 위하여 구태 척결과 새로운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하여 공감하지 않을 판사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적 청산만 앞세우는 지금의 방식은 사법부를 갈등과 투쟁의 장으로 만들 것이고, 소명의식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왔던 판사들을 법원에서 떠나게 할 것입니다.

이번 사태가 분노를 넘어 부디 국민을 위한 새로운 사법부 건설의 초석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의정부지방법원 법관대표 정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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