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범 칼럼] ‘경제학자’ 문재인의 치명적 오류
[김행범 칼럼] ‘경제학자’ 문재인의 치명적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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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경제정책 골간은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
소득주도성장, '소득높이면 소득증가한다'는 동어반복일 뿐 경제 악순환 초래
공정경제, 경쟁동기 위축 및 국제적 경쟁력 동반 하락 불러와...이런 구조에서 혁신성장은 불가능
文의 사회주의 경제관은 역대 좌파정권보다 훨씬 체계적ㆍ노골적ㆍ유토피아적
文은 전두환의 겸허함을 배워야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 아니야!"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경제 위기를 겪으면 대통령들의 경제 독해력에 관한 슬픈 우스개들이 유행했었다. 한 대통령이 수행원들을 대동하여 외국으로 비행 중일 때 폭풍을 만났단다. 기내 경고 신호등이 깜박거리더니 기장이 방송으로 기상 정보가 왔는데 곧 폭풍이 온다니 안전벨트를 매라는 방송을 보냈다. 잠시 후 비행기는 심하게 요동쳤고 승객들은 고생을 했다. 한참 후 다시 이런 사태가 이어지자 대통령은 멀미를 했다. 이런 소동이 몇 번 반복되자 얼굴이 벌개 진 대통령이 조종사를 불렀다. ‘니가 기내에 경고 신호등을 켜고 나면 폭풍이 꼭 오니 다시는 경고등을 켜지 마!’ 그런데 이런 수준의 무지로 경제를 말아먹은 대통령을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야 할 시대에 든 것은 아닌가. 경제이론에 무지한 대통령보다 그릇된 경제이론을 열렬히 추구하는 대통령을 더 우려할 때 말이다.

이 정부의 경제정책의 골간은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이다. 첫째, 소득주도 성장론의 논리 구조 자체가 틀렸고 경제 악순환을 초래한다. 경제성장이란 국민경제의 각 구성원이 가처분 소득이 증대하는 것이며 경제이론들은 이 목표(종속변수)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수단들을 다양하게 제시해 왔다. 소득 주도 성장론은 실은 임금주도 성장론을 분식한 것인데 소득을 높이면 소득이 증가한다는 동어반복일 뿐이다. 요컨대, 소득주도 성장론은 위 우화처럼 그 정책목표-수단의 인과관계가 잘못 설정되었고,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비용 인상과 이윤 감소로 투자 및 성장후퇴로 이어지며, 핵심 생계비에 대한 가격 통제 및 정부 보조는 정치적 결정의 병리를 수반하고, 더구나 성공 실증 예도 없는 정책이다.

둘째, 공정경제 정책은 정책 목표가 잘못 설정된 것이다. 경제력 남용은 막아야 하지만 그것이 ‘경쟁’을 보호하기 보다는 특정 기업군을 보호 혹은 억압하는 것이 되면 안 된다. 오히려, 경쟁력이 있음을 소비자가 판정해 준 기업을 징책하고 경쟁에서 패배한 기업을 위로하는 기조로는 국내적으로는 경쟁동기 위축과 국제적으로는 경쟁력 동반 하락을 가져온다. 이것이 공정경제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셋째, 혁신 성장정책은 위 두 가지와 양립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예컨대, 공정경제란 기조 하에 경제력 집중을 막는 지주회사 행위제한 규제 강화, 기존 순환출자 구조의 단계적 해소, 소위 국민연금을 활용한 ‘연기금 사회주의’ 정책까지 가동하여 기업활동을 억누른다. 그러면서도 기업더러 ‘내가 억압하더라도 너희는 혁신하고 성장할지어다’ 라고 명령하는 구조이다. 소득주도성장론 및 공정경제론은 사회주의적 성격이 아주 강한 것이어서 성공한다면 그 자체가 재앙이다. 여기에 양립하기 어려운 혁신성장까지 조합한 정책 세트, 곧 소금장수와 우산장수의 노릇을 다 요구하고는 그 필연적인 실패의 책임은 경제부총리에게 씌우는 것이 이 정부의 경제정책 기본 틀이다.

민주주의를 억압한 철권통치자로 알려졌던 80년대 전두환 대통령의 최대 공적의 하나는 정치와 경제를 구분할 줄 알았다는 점이다. 경제는 정치권력으로 밀어 부치는 일이 아님을 절감했고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백면서생 시장경제학자 김재익을 삼고초려로 찾아가 경제수석 비서관 자리를 맡겼다. 경제수석 비서관은 장관급 직급인 일부 시절을 제외하면 대개 차관급 직급이었을 뿐이다. 전두환은 5공 집권 후 가시적 경제성과를 당장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정치 참모들의 반대를 무마하며 김재익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는 전권을 부여하여 시장경제 논리로 경제를 풀어나가게 하였다. 북한 공산정권의 테러로 김재익 경제수석이 급사한 후 이 자리를 맡았던 사공일 경제수석에게도 같은 경제 권한을 부여했다. 그것은 높은 경제성장과 국제수지 흑자를 가져오는 성과를 가져왔다. 경제성장은 중산층의 확대를 가져왔었고 이는 역설적으로 그 후 민주화의 한 기반이 되었다. 전두환의 ‘의도하지 않은 지혜’는 자신이 경제 무지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경제를 정치공학이 아니라 경제원리에 의해 작동되게 함으로써 시장 경제가 주는 당연한 열매를 얻게 한 것이다.

한국에서 반(反)시장적 기조가 두드러진 것은 김대중, 노무현 및 현재의 문재인 대통령 시대이다. 그런데, 김대중은 IMF 외환위기 극복이란 엄연한 시대적 과제에 대응하다보니 거대기업 빅딜 등의 개입주의를 구사했지만, 동시에 외환위기 뒤처리에 치중케한 환경은 사회주의적 경제론이 전면적으로 실시되는 것에 일정한 제약도 주었다. 노무현은 그 못지않은 좌파경제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국내외 시장경제의 냉엄한 현실이 그의 왜곡된 경제관을 바른 방향으로 교정시켜 나간 국면이 있었고 그가 직접 체결한 한미 FTA는 그 예이다. 이들이 제한된 범위와 강도로 현실 경제문제의 보완적 입장에서 좌파 경제를 시도한 반면에, 문재인의 사회주의 경제관은 훨씬 체계적이고, 노골적이며, 유토피아적 믿음까지 보여준다. 바로 그 때문에 이 정부의 경제는 어떤 좌파정권에서보다 더 큰 우려를 주는 것이다.

문재인은 경제이론가의 아이디어를 빌려 쓰는 게 아니다. 그의 생경한 사회주의적 경제 아이디어가 머리속에 먼저 확고히 자리 잡아 있고, 그에 맞장구쳐 줄 사회운동가와 사회경제이론가들이 막료들로 사후에 차출되었을 뿐이다. 즉, 경제브레인들의 경제 아이디어를 문재인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먼저 확립한 사회주의적 경제 세계를 확인하고 이를 구체적 정책으로 설계하고 복창해주는 보조원 노릇을 하는 국면이 선명하다. 자신이 경제를 잘 안다는 교만.

현 정부의 경제정책 결정 구조는 이를 고착화한다. 정부 구조에서 경제정책 결정의 주역은 대통령, 청와대의 경제수석(차관급의 홍장표), 내각의 경제부총리(장관급의 김동연)이다. 여기에 더해 노무현 정부를 모방하여 청와대 비서실에 비서실장(장관급의 임종석)과는 별도로 정책실장(장관급의 장하성)을 두는 이원 구조를 따랐다. 본래 부처의 조직에 상응하여 청와대 비서실이 존재한다. 대통령 비서실 직제상으로는 경제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정책(통일 외교 안보 정책은 제외) 전반을 보좌한다는 ‘정책실장’을 두며 그 밖에 ‘수석비서관’을 둔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 추측과는 달리, 경제수석 등 개별 수석 비서관들의 권한과 범위에 대한 법적 규정은 전혀 없다.

현재, 정책실장의 정체성은 경제브레인보다 시민운동가로 이해되고 있다. 경제수석의 직위는 아무런 법규 수반도 없이 언제라도 변경, 소멸되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이에 비하면 정부조직법(27조)에 경제부총리의 업무는 선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현행 대통령의 경제 막료구조의 특성이자 문제점이 드러난다. 현실 경제와 동떨어진 실험적 정책을 실질적으로 설계해 던지는 정책실장이나 경제수석의 책임은 드러나지 않음에 비해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공식 책임은 경제부총리가 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생경한 정치이념 구현을 주장하는 대통령 및 그에 자동적으로 따르는 정책실장•경제수석이 정책결정의 실질적 한 축이 되고, 경제 합리성을 고려하는 경제부총리는 다른 소수파가 되어 집행 기관의 역할로만 한정되어져 가는 구조이다. 이 구조에서 대통령의 경제에 관한 지적 자만이 교정되어 시장 경제로 돌아오기는 난망이다.

경제정책에서 대통령-부총리-정책실장-경제수석 중 누가 주도하는가는 대개 대통령이 좌우한다. 박정희는 경제에 전문성이 없었던 초기에는 김정렴, 김학렬, 장기영에게 경제를 맡겼으며 임기 말에는 그 스스로도 상당한 경제 전문가가 되어 정책을 직접 주도해갔다. 전두환은 애초부터 철저히 김재익 및 사공 일의 가르침을 따랐다. 그런데 문재인은 경제전문성이 없으면서도 사회주의 경제이론을 확신하고 직접 주도하는 패턴을 보인다. 좌파정책으로도 하위 소득분위의 소득이 개선되지 않았음이 드러나면 무익한 좌파정책을 재검토하기보다 오히려 더 강화할 사유로 삼는 의식 구조이다. 최저임금정책은 90%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당당히 내리면 막료들은 그 정답을 따라가는 형국이다. 과학적 기반은 없고 그릇된 확신만 강한 이런 사고가 그의 경제정책의 기반이다.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던 전두환 정권의 경제정책의 책임자로 들어 갈 때 김재익은 백지상태인 전두환에게 시장 경제의 가르쳐주기 위해 간다고 했다. 경제부총리 김동연은 올해 초 여의도 연구원에서 소득주도성장을 강조하는 이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옹호하며, 그에 비판적인 시장경제주의 진영에 대해 ‘이념 논리로 경제정책을 보지 말라’고 주문했다. 김동연의 경제관을 알고 있는 시장경제론자들은 실은 그가 몸을 돌려 좌파 경제이념을 요구하는 정권 실세들에게 하는 말로 해석하고자 했다. 혹은, 그런 희망이 우리에게 좀 있었다고 하자. 그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좌파에 포위되어 있는, 이 정부에서 그나마 경제 합리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경제 장관이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에 가장 근접한 부총리 혹은 그 누구에 의해서든 문재인 경제팀의 좌파 이념지향이 바뀌어져야만 희망이 있다.

정치 이념, 그것도 반시장적 이념이 경제를 좌우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사회주의 이념에 토대한 부조화의 3대 정책 세트는 필연적으로 우리 경제를 공멸로 이끈다. 노벨상에 사회과학분야로는 유일하게 노벨경제학상이 추가된 것은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은 다수결, 정변, 군중의 선동으로 얻은 권력을 구사하는 정치 작용과는 달리 객관적 진리 체계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 원리에 토대하지 않은 증오 및 주관적 정의(正義)의 구호로는 경제가 바로 작동된 역사가 없다.

나쁜 경제 이론은 대통령이 애초부터 선택하지 않음이 최선이고, 그 다음으로 나은 것은 그걸 채택한 자의 확신이 약한 것이며, 최악의 경우는 나쁜 경제이론을 자신의 이상국가로 가는 길로 맹신하는 것이다. 북핵을 해결하라는 강한 국민의 요구를 자신의 총체적 경제성과에 대한 높은 지지로 오해하여 이런 경제정책 틀은 더욱 굳어져 가는 느낌이다. 미운 정권의 경제 실패를 걱정해주는 것은 경제가 무너지면 민주와 평화도 없고, 몰락한 너는 물론이고 그 후에 남을 우리 모두가 큰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북핵 평화 쇼타임에 가려져 있던 집권 1년이 드러낸 경제에서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 잘못된 확신에 가득 찬 대통령의 학습을 위해 국민 경제의 실패를 더 체험하는 것은 너무 큰 비용이고 그럴 가치도 없다. 아는 게 없는 바보는 오류를 맹신하는 바보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의 생각만 바뀌면 경제는 회복된다. 지금 문재인은 그가 민주주의의 적으로 혐오해 온 전두환의 겸허함을 배워야 할 때이다.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 아니야.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부산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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