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법제도가 가해자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데 편중돼 있다는 지적이 다시 커지고 있다. 이는 고질적인 문제로 볼 수 있지만, ‘정유정 사건’과 ‘부산 돌려차기 사건’ 등이 새로운 불씨가 되고 있다.

고교 동창도 못 알아본 ‘경찰 공개 정유정 사진’, 머그샷 공개 제도 필요성 대두

지난 1일 부산경찰청이 공개한 정유정(23세)의 사진(왼쪽). 지난 2일 부산 동래경찰서의 포토라인에 선 정유정은 검은 벙거지를 눌러쓴 채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같은 인물인지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캡처]
지난 1일 부산경찰청이 공개한 정유정(23세)의 사진(왼쪽). 지난 2일 부산 동래경찰서의 포토라인에 선 정유정은 검은 벙거지를 눌러쓴 채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같은 인물인지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캡처]

온라인 과외 앱을 통해 처음 만난 불특정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23)은 지난 2일 부산 동래경찰서에 마련된 포토라인에 섰지만 검은 벙거지를 눌러쓴 채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전날 경찰이 사진 등 신상정보를 공개했으나 그 사진이 현재 모습과 비슷한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흉악범죄자의 경우 신속하게 머그샷을 공개해 현재의 모습을 대중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대조적인 게 한국의 현실이다. 머그샷은 피의자가 구치소에 구금되는 과정에서 이름표와 수인번호를 들고 촬영하는 사진이다.

그러나 경찰이 공개한 정유정의 증명사진은 고교 동창들조차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정확하다는 논란이 일었다. MBN이 지난 7일 공개한 졸업사진에서 정유정은 매서운 눈매를 갖고 있는 등 경찰 공개 사진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고교 동창들조차 경찰 공개 사진을 보고 정유정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따라서 포토라인에 세울 때 얼굴을 공개하거나 미국이나 일본처럼 머그샷을 찍어서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현재 경찰은 특례법에 따라 신상정보 공개가 결정된 피의자에 한해 머그샷을 공개할 수 있는데, 그나마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당사자가 거부하면 신분증의 증명사진만 공개할 수 있다. 흉악범죄자 신상공개 제도의 목적은 국민의 알 권리와 재범방지, 범죄예방 등에 있다. 흉악범죄자의 신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선량한 국민의 권리이자 재범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조치이다. 더욱이 신상공개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법질서가 자리잡을 경우 흉악범죄자의 범죄욕구를 감소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흉악범죄 피의자가 머그샷 공개 결정을 내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국가 중 유일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그샷 공개에 흉악범죄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면, 사실상 머그샷 공개는 불가능해진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머그샷이 공개된 경우는 단 한 건에 불과하다. 지난 2021년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의 가족을 보복살해한 이석준(27)이 유일하다. 흉악범이 선심을 쓰듯 머그샷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는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흉악범 피의자의 얼굴은 검찰로 송치되기 전 포토라인에 섰을 때 확인이 가능하다. 이 때 모습은 경찰이 공개한 사진과 대부분 다르다. 지난해 10월 신당역 살인사건 피의자 전주환, 노원 세 모녀 살해 피의자 김태현, n번방을 처음 만든 ‘갓갓’ 문형욱, 갓갓 공범자 안승진, 박사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 등의 사진은 실물과 큰 차이를 보였다.

더욱이 포토라인에 선 피의자들이 자기 얼굴을 가릴 경우 강제로 공개할 수 없다. 경찰이 강제로 얼굴을 드러내도록 완력을 행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선진국가에서처럼 머그샷을 공개하는 게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밝히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정보자유법에 따라 피의자의 머그샷을 공개정보로 규정해 놓았다. 범죄 종류나 피의자 국적과 무관하게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일본도 강력범죄 피의자의 얼굴과 신상정보를 공개한다.

대한민국의 사법체계,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 갖춰

대한민국의 사법체계는 흉악범죄를 포함한 피의자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우선 형법 제126조(피의사실공표)에 따라 피의자 허락 없이 머그샷을 무단으로 올리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과거 헌법재판소도 피의자가 특정인임을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을 함부로 촬영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판시했다.

정유정은 그나마 부정확한 사진이라도 공개돼 다행인 편이다. 전과 18범인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가해자 B씨의 신상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이다. 피해 여성인 A씨가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한 취지로 신상공개를 요청했으나 경찰과 검찰이 모두 기각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의자 신상정보는 공개되지 않았고, 모 유튜버가 신상정보를 공개한 상황이다. [사진=유튜브 캡처]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 A씨는 가해자의 신상정보 공개를 요청했지만, 경찰과 검찰이 모두 기각했다. 가해자의 신상정보는 모 유튜버가 사적으로 공개한 상황이다. [사진=유튜브 캡처]

우리나라에서는 수사기관이 공개를 결정하기 전에는 아무리 흉악범죄라고 해도 피의자의 신상이 보도되지 않는다. 언론기관들도 철저하게 익명성으로 보호해준다.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민사소송을 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피해자 신상은 가해자에게 완벽하게 노출된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진행과정에서 이 같은 모순이 재연됐다.

이 같은 부조리가 만연하게 된 계기는 ‘1998년 대법원 판결’에 있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판결은 범죄 내용을 보도하는 것의 공공성은 인정했지만 범죄 피의자를 특정하는 것은 공공성이 없다는 논리로 피의자 신상을 보도한 언론사들이 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전까지만 해도 흉악범죄 피의자의 실명과 얼굴 등을 보도했던 한국 언론들은 이 판결 이후 몸을 사리게 된다. 대법원이 흉악범죄 피의자 편을 들었기 때문에 언론사들로서도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에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 죄가 인정돼 흉악범죄 피의자라고 해서 섣불리 신상을 보도할 경우 손해배상뿐만 아니라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흉악범죄 피의자는 어떤 선진국에서도 작동되지 않는 이중, 삼중의 보호장치를 향유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의자인 B씨의 사진과 신상을 모 유튜버가 사적으로 공개한 상황이다. 그 유튜버는 사적 보복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법제도의 규제 속에서 할 일을 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손혜정 변호사, “우리나라는 범죄자 인권 보호하는 방향으로 형법 등이 정의돼”

이와 관련 손정혜 변호사는 7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피해자분과 유튜버의 목소리는 저희가 청취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면서 “우리나라가 조금 범죄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안으로 형법이나 형사소송법이 정의가 되다 보니까, 피의자나 확정되지 않은 범죄자들에 대한 인권 보호가 치중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손 변호사는 “이 유튜버나 피해자는 피해자들의 인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조금 더 넓은 범위로 저희가 범죄자들의 신상을 공개하고 또 확정되기 전에도 얼굴이나 이런 것들을 조금 더 강도 높게 공개하는 부분들이 있다”면서 “우리도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서 신상공개가 일부 이뤄지고 있는데 아주 잔혹한 살인범죄 아니면 대체적으로는 신상 공개를 하지 않는다. 조금 더 공익적 목적이나 국민의 알 권리, 피해자 보호 차원에서는 공개 범위를 넓히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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