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20대 여성 살인 사건의 피의자 정유정에 '왜 한남을 죽이지 여성을 죽였냐'며 분노하는 여성시대 유저들. [사진=여성시대/온라인커뮤니티]

 

온라인 과외 앱으로 만난 20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던 20대 여성 정유정의 신상정보가 1일 공개되자 국민 대다수가 분노하고 있지만, 유독 여초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다른 반응이 포착된다. 이들에게선 "차라리 한남(한국 남자의 줄임말)이나 죽이지 왜 여자를 죽였냐"와 "왜 여성 피의자의 신상공개는 이렇게 빠르게 하냐"는 두 의견이 주로 제기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여성시대(이하 여시)에선 정유정의 신상정보가 아직 공개되지 않았던 지난 31일부터 그를 비판하는 반응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시 사용자들이 '살인'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거나, 그 누구도 '살인'의 대상이 되어선 안된다는 등 정유정의 범죄 그 자체를 규탄한 것이 아니라, 범죄의 대상이 왜 남성이 아니었냐는 반응을 주로 보여 논란이다.

정유정이 체포될 때 여성인 것을 알게 되자 "당근(당연) 남잔줄...너무 안타깝다"며 고정관념을 드러내기도 했던 이들은 "차라리 한남이나 죽이지 왜 여자한테 화풀이냐" "그럴 용기 있으면 남자를 죽여라. 인터넷에 널리고 널린게 쓰레기같은 한남인데" "죽이고 싶으면 널린 게 한남인데 걔들 안죽이고 왜 애먼 아까운 여성 목숨을" "남자나 죽여라" 등 집단 정체성에 근거한 비상식적인 댓글을 달았다.

이들은 1일 정유정의 신상정보가 공개된 것에 대해서도 '왜 남성 피의자에 비해 여성 피의자의 신상정보를 그토록 빨리 공개하냐'는 등 상식적으로 보기 어려운 반응을 보였다.

 여시 사용자들은 "진짜 다른 나라 같다" "남자는 XX 안 알려주잖아" "와 여자는 이렇게 빠르고 간편하게 신상공개하네" "그 많던 살인강간미수 한남들은 안하고" "동거녀 살해남 묻지마 살인 285950503명인데 왜 공개 안함" "이렇게 빨리 신상까는 거 진짜로 처음본다" 등 여성이 범죄 수사에서조차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유정의 신상정보가 왜 이렇게 빨리 공개되냐며 여성이기에 그렇다고 피해 의식을 드러내는 여성시대 유저들. [사진=여성시대/온라인 커뮤니티]

 

이러한 반응은 언론 온라인 지면에서조차 포착된다. 대표적으로 정유정 사건을 보도한 연합뉴스 기사의 댓글엔 "성차별하지 말고 평등하게 신상 밝혀라" "남자범죄자는 고작 저런걸로 신상 안 밝히고 집유 때리잖아"라며 여성이 더 가혹하게 다뤄지고 있음을 비판하는 의견이 제기됐다. 

일부 여성들의 여성 차별 인식은 연합뉴스 댓글에서조차 드러난다. [사진=연합뉴스]

 

더욱이 '고작 저런걸로'란 표현에서는 살인 행위의 심각성을 남녀 성별 대결 구도 속에서 격하시키려는 의도까지 포착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의 일부 여성들이 얼마나 왜곡된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가가 분명히 드러난단 지적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다른 네티즌들은 "살인자 얼굴 공개하는 것인데 여기서 남자, 여자, 한남이 왜 나오냐" "가해자 성별에 감정이입해서 어쩌자는 거냐" "세상 참 단순하게 산다. 모든 게 남자 vs 여자로만 보이나보다" 등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번 논란으로 모든 사안을 '남성 대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이 여성 커뮤니티 내에서 만연해 있는 것이 문제란 지적이 다시 한번 제기된다. 특정 사회, 집단, 커뮤니티 내에서 돌고 도는 '담론'이 그 구성원의 사고 체계와 정신을 지배하는 경향이 흔한데, 여대와 마찬가지로 여성들로만 이뤄진 온라인 커뮤니티가 건강한 정신을 병들게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앞서 피의자 정유정은 자신이 중학교 3학년 학생을 둔 학부모라며 여성을 노리다 지난달 26일 과외를 하던 피해자의 집에 중고로 구한 교복을 입고 찾아갔다. 

그날 오후 5시 40분경 부산 금정구에 위치한 피해자의 집에서 흉기로 그를 살해한 정유정은 여행용 가방에 훼손한 시신을 담아 택시로 이동한 후 경남 양산의 낙동강 인근 숲속에 시신 일부를 유기했다.

이 범죄행위는 가방에 혈흔이 묻어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택시 기사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들통났다. 경찰은 다음날인 27일 오전 6시경 정유정을 긴급 체포했다.

정유정은 평소 살인이 궁금했다면서 올해 2월부터 온라인 등에서 '살인'을 집중적으로 알아본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죽은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했지만 경찰은 그가 "평소 사회적 유대 관계가 전혀 없었고, 폐쇄적인 성격에 고교 졸업 이후 특별한 직업이 없었다. 프로파일러 심리상담에 이어 관련 진술을 분석하고 있으며 사이코패스 여부도 검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유정이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않고 있을 수 있단 것이다.

해당 사건을 맡고 있는 부산경찰청은 정유정의 신상을 공개한 이유로 "범죄의 중대성과 잔인성이 인정되고, 유사 범행에 대한 예방효과 등 공공 이익을 위한 필요가 크다고 판단된다"고 밝힌 상황이다. 

부산경찰청이 1일 공개한 정유정의 사진. [사진=연합뉴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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