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방법원이 아시아나 항공기 비상문을 열어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 모(33)씨에 대해 28일 영장을 발부했다. 이씨는 26일 착륙 중이던 제주발 대구행 아시아나 항공기의 비상구를 열어 승객들을 위험에 빠뜨린 혐의를 받는다.
28일 아시아나항공은 이번 문 열림 사고가 발생한 기종에 대해 안전 예방 조치의 목적으로 이날부터 비상구 바로 앞자리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해법은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근본적인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씨는 비상구 쪽 좌석에 앉아 있다가, 비행기가 착륙을 준비하던 낮 12시 35분 경 갑자기 비상구 레버를 당겨 문을 열었다. 당시 비행 고도는 약 700피트 (약 213m)였다. 이씨의 돌발 행동으로 비행기 승객 중에는 호흡 곤란을 느껴 응급실을 간 경우도 발생했다. 하마터면 큰 참사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었다.
착륙 직후 체포된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최근 실직 후 스트레스를 받았다. 답답해서 빨리 내리고 싶어 문을 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다. 항공보안법 위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씨의 문제는 법적으로 가려지겠지만, 이 기회에 ‘비상구 앞자리’ 판매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아시아나항공과 에어서울의 비상구 앞 좌석 판매 금지 조치는 ‘미봉책’
아시아나항공은 ‘비상문 개방’ 사고가 난 기종 'A321-200' 14대 전체에 대해 비상구 앞자리 판매를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같은 기종을 운영하고 있는 아시아나 계열의 에어서울과 에어부산 중, 에어서울은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비상구 앞자리 판매 중단을 결정했다. 에어부산도 금주 중 결정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174석으로 운용되는 A321-200(11대)의 26A 좌석과 195석으로 운용되는 같은 기종(3대)의 31A 좌석이 판매 중단될 좌석에 해당된다다.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비행기에 탑승한 이씨는 195석 항공기의 31A 좌석에 앉았다. 해당 좌석들은 비상구 앞자리들 중에서도 이번 사고 때처럼 안전띠를 맨 상태에서 쉽게 문에 손이 닿는다. 이 기종의 비상문에는 비행기가 정지하기 전까지 수동으로 문을 열 수 없는 ‘비행 중 잠금장치(Lock actuators)’가 없다.
더욱이 아시아나항공은 해당 기종보다 업그레이드된 ‘A321-네오’ 기종 6대에 대해서는 ‘비상구 앞자리 판매 중단’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A321-네오’ 기종은 동체 중앙 날개 위쪽 자리의 비상문(Overwing Exit) 4개에 자동 잠금장치가 적용돼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이 비상구 앞자리 판매 중단을 해결책으로 제시했지만, 이번 기회에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한 다른 항공사에서도 비상구 앞자리 문제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아. 비상구 앞자리 문제점과 해결책을 3가지로 정리한다.
① 문제점= 국내 저가항공사, 비상구 앞자리를 웃돈 받고 판매
지금까지 일부 항공사들이 ‘비상구 앞자리’에 대해 웃돈을 받고 판매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비상구 앞자리는 다른 일반석(이코노미석)보다 공간이 넓어 고객들에겐 ‘웃돈’(프리미엄)을 주고서라도 타고 싶은 ‘명당’으로 꼽혔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국제선만, 저비용항공사(LCC)는 국내선에도 해당 좌석에 ‘프리미엄’을 얹어 판매해 왔다.
그런데 이 좌석은 비상시에 승객의 탈출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타야 한다. 국토교통부 운항기술 규정에도 ‘승객의 탈출에 필요한 역할을 못한다’라고 판단되면 비상구 좌석을 배정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다.
일부 저가항공사 국내선의 경우 비상구 앞자리는 최소 3만원 정도의 웃돈이 붙는 것으로 알려진다. 비상구 앞자리가 한 비행기당 최소 10석 이상 나오기 때문에, 저가항공사 입장에서는 비상구 앞자리의 매출 때문에 이같은 규정을 어긴 것으로 관측된다.
현직 승무원인 A씨는 30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비상구 앞자리는 이전부터 문제가 많았다. 웃돈을 붙여서 판매하기 전에는 대부분 지인 위주로 점령되어 온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저가항공사가 비상구 앞자리를 ‘돈벌이 수단’으로 여긴 뒤로는 ‘건장하고 승무원을 도울 수 있는’ 조건 대신 ‘웃돈’을 내는 사람에게 판매되어온 것이다.
그 결과 어린이나 임산부, 노약자 등 전혀 승무원을 도울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비상구 앞자리에 앉는 경우도 많아진 것이다. A씨는 “외국 항공사는 비상구 좌석으로 배정하면 ‘위급시 안전 요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반드시 고지하는 반면, 국내 저가항공사는 이 내용을 별도로 안내하는 승무원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② 해결책1= 탑승 전 ‘비상구 앞자리 안전교육’ 수료자에게 혜택으로 제공되도록
저가항공사가 아닌 대형 항공사는 국내선의 경우 웃돈을 주고 판매하지는 않지만, 비상구 앞자리 승객에게 이같은 고지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대형항공 승무원인 A씨는 “비상구 좌석 승객에게 ‘비상시 승객 탈출을 도울 수 있는지’ 질문할 경우, ‘싫은데요’라는 대답을 듣기도 한다”면서, 그런 승객에게는 안전수칙에 관한 문장을 형식적으로 안내하기 십상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A씨는 비행기 탑승 전 비상구 앞자리 안전교육이 실시돼야 한다는 점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은 책임감 있는 승객에게 ‘비상구 앞자리’가 혜택으로 제공되면, 이번 사고는 예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A씨가 이같은 ‘안전교육’을 제안한 이유는 ‘승무원 최소 탑승 인원’이라는 규칙 때문이다. A씨는 “Jump Seat(승무원들이 이착륙 때 앉아서 비상구를 지키는 승무원 전용 자리)에 승무원이 앉아 있었더라면 이번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면서 “국내 항공사는 ‘승무원 최소 탑승 인원’ 때문에 승객이 적을 때는 모든 비상구에 승무원을 배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 이번 사고 편에는 조종사 2명과 승무원 4명이 탑승했다. 195석이 만석인 비행기에 승객 194명이 탑승해 ‘승객 50석당 최소한 1명을 배치해야 한다’는 항공안전법에 따른 배치였다. 8개 비상구 중에서 승무원이 앉지 않은 비상구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사고를 낸 이씨의 좌석은 승무원이 앉지 않은 쪽 비상구 앞이었던 것이다.
이익 추구를 우선하는 민간 항공사의 입장에서는 195석 비행기에 8명의 승무원을 배치하기가 어렵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민간 항공사 혼자 힘으로는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국토교통부와의 협의를 거쳐 ‘비상구 앞자리’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③ 해결책2= 비상구 앞자리를 군인, 경찰 및 소방관에서 할인석으로 제공하는 방법
아시아나항공은 이번 사고의 해결책으로 ‘비행 중 안전잠금 장치’가 없는 기종에 대해 ‘비상구 앞자리 판매 금지’를 제시했다. 하지만 비상구 앞자리를 넓게 보면 한 비행기당 적어도 10석 이상이 나온다. 따라서 이 좌석을 판매 금지한다면 저가항공사의 경우, 매출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또한 성수기에 10석 이상을 비운 채로 운항을 한다는 것도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앞으로 비상구 앞자리에 앉은 사람은 수갑을 채우는 걸로”라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되고 있을 정도이다. 다리가 편한 대신, 팔은 움직이지 못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판매 금지가 합당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을 꼬집은 유머인 셈이다. 따라서 보다 합리적인 해결책이 강구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A씨는 이 부분에 대해 “승무원들 사이에서는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비상구 앞자리’에 군인과 경찰, 혹은 소방관들에게 할인석을 제공하는 방법이 고려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제안했다. 코레일 열차 일부 좌석에 대해 할인율이 적용되는 것과 같은 방법을 비행기에도 적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들이 비상구 앞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탑승 전 안전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군인과 경찰 및 소방관들의 평소 노고에 감사를 표하면서, 이번과 같은 비상 사고시 승객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거양득’의 해결책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