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데이트폭력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전체적인 건수가 급증하는 추세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폭력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납치, 감금, 폭행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살인까지 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모씨는 데이트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풀려난 지 1시간 만에 연인을 흉기로 살해했다. [사진=MBN 캡처]
지난 26일 데이트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풀려난 지 1시간 만에 연인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MBN 캡처]

이번 사흘간의 연휴기간에도 비극적인 데이트폭력 및 살인사건이 잇따라 터져나왔다. 우선 ‘시흥동 보복살인’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낸 사건으로 지적된다.

데이트폭력 조사받고 풀려난 30대 남성, 신고한 40대 여성을 ‘보복살인’

서울 금천경찰서에 따르면, 김모(33)씨는 데이트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풀려난 지 1시간 만에 연인을 흉기로 살해했다. 살해 동기는 자신을 신고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서울남부지법 이소진 판사는 28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을 한 뒤 "도주가 우려된다"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살인 혐의로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씨는 지난 21일 피해여성 A씨(47)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고 격분했다. 금천구에 있는 A씨 집 근처 PC방에서 숙식하다가 범행 직전인 26일 새벽 A씨 집에서 말다툼을 했다. A씨는 김씨가 TV를 부수고 팔을 잡아당기는 등 폭행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오전 6시11분에 경찰 조사를 마치고 먼저 나온 김씨는 A씨 집에서 흉기를 챙겨 나온 뒤 인근 PC방 건물 지하주차장에 있던 A씨 차량 뒤에 숨어 기다렸다. 오전 7시7분에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A씨는 주차장에서 기다리던 김씨에게 살해당했다.

경찰은 앞서 A씨의 폭행 피해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 김씨를 임의동행해 조사했지만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범죄에 적용하는 접근금지 등의 피해자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단순한 연인 간 다툼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비극이 발생했다.

김씨는 A씨를 렌트카에 태워 도주했다가, 범행 약 8시간 만인 오후 3시30분쯤 경기도 파주시에서 긴급 체포됐다. 경찰은 김씨가 타고 있던 차량 뒷좌석에서 A씨 시신을 발견했다. 김씨는 범행 현장에서 목격자 2명과 마주쳤으나, “여자친구가 다쳐서 병원에 가려는 중”이라거나 “임산부”라고 거짓말을 했다. 목격자들은 피습 장면을 목격하지 못해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김씨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금천경찰서를 나서면서 ‘피해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냐’는 질문을 받고 “평생 속죄하고 살겠다”고 답했다. ‘사전에 계획한 범행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러고 싶진 않았다”고 말했다. 우발적인 살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데이트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직후 연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모씨가 28일 남부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금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이트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직후 연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모씨가 28일 남부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금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찰은 김씨를 살인 혐의로 체포했으나 보복살인으로 혐의를 변경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살인죄의 형량은 5년 이상의 징역형인데 비해 보복살인죄의 형량은 10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데이트폭력 반의사불벌죄 조항 폐지해야...서울시 데이트폭력 신고건수 3년새 223% 증가

이번 살인사건도 예방가능했던 비극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남기고 있다. 경찰이 김씨를 귀가조치한 것은 데이트폭력이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에 해당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가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분명히 할 때에는 피의자를 처벌할 수 없는 게 반의사불벌죄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피의자와의 애정관계, 피의자의 협박 등과 같은 요소로 인해 처벌을 원치않는다고 해도 경찰이 적극적인 처벌 및 분리조치 등을 취해야 극단적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지적이다. 데이트폭력의 경우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관내에 접수된 데이트폭력 신고는 2018년 3173건에서 2021년 1만266건으로 3년 새 223% 증가했다.

반면 데이트폭력으로 형사입건된 피의자들의 구속 비율은 낮아지고 있다. 2017년 4.0%, 2018년 3.8%, 2019년 5.1%, 2020년 2.7%, 2021년 2.2% 등으로 하락추세이다.

모텔에서 술에 취해 다투다가 여자친구 살해...지인 여성을 목졸라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

여자친구와 다투다가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도 적지않게 발견되는 유형이다. 경기도 안산상록경찰서는 25일 술에 취해 여자친구와 다투다가 살인을 한 혐의로 20대 B씨를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26일 밝혔다.

B씨는 전날 오후 7시40분쯤 안산의 한 모텔에서 함께 술을 마시다 다툰 여자친구 C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B씨는 범행 직후 달아났다가 약 2시간 뒤인 오후 9시55분에야 “여자친구랑 싸웠는데 호흡하지 않는 것 같다”며 119에 스스로 신고한 뒤 도주하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C씨와 술을 마시고 다투는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그랬다”며 우발적 범행임을 강조했다.

28일에는 평소 지인관계이던 여성을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기 안산단원경찰서는 이날 오전 4시 56분께 "남동생으로부터 '사람을 죽였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는 112 신고를 접수했다. 경찰이 30대 여성 D씨의 안산시 단원구 소재 빌라에 도착했을 당시 D씨는 숨져 있었다. 신고자의 남동생인 30대 E씨는 크게 다친 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현재까지 중태이다.

E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D씨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누나에게 이를 알리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뒤, 흉기로 자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30대 남성, 여자친구 목조르고 납치... 지난해 살인미수에 그친 여성 225명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술에 취한 채 헤어진 여자친구를 구타한 뒤 차에 태워 납치하려 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신속하게 검거되지 않았다면 불행한 사태로 치달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전 연인을 폭행한 뒤 차에 태워 감금한 혐의로 30대 F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서울 마포경찰서는 전 연인 G씨를 폭행한 뒤 차에 태워 감금한 혐의로 30대 F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서울 마포경찰서는 28일 감금·폭행 및 음주운전 등 혐의로 F(31)씨를 체포해 조사 중이다.

F씨는 27일 오후 6시44분께 서울 마포구 지하철 2·6호선 합정역 인근에서 전 연인 G씨를 강제로 차량에 태운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한 남성이 여성의 목을 조르고 차에 태웠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추적 끝에 30여분 만인 오후 7시15분께 6호선 상수역 근처에서 F씨를 발견하고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F씨의 차에서 발견된 G씨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체포 당시 F씨는 혈중 알코올농도가 면허 취소 수준(0.08% 이상)이어서 음주운전 혐의도 적용됐다. F씨는 과거 G씨에게 데이트 폭행과 스토킹을 해 경찰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최소 86명의 여성이 살해됐다. 살인 미수 등으로 살아남은 여성도 최소 225명으로 집계됐다. 경찰이 F씨를 조기 체포하지 않았다면 G씨가 살인 또는 살인 미수의 대상이 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던 경우이다.

청년층에서 주로 발생하는 데이트폭력, 철저한 원인분석 및 방지대책 마련돼야

우리나라 전체의 데이트폭력(교제폭력) 신고 건수와 입건 건수는 급증 추세이다. 특히 10대의 증가세가 심각하다. 지난해 데이트폭력으로 입건된 10대 피의자가 2021년 대비 60.1%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가 지난해 연말 발간한 ‘치안전망 2023’ 보고서에 따르면,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지난해 9월 기준 5만2767건이다. 전년 동기 4만1335명 대비 27.7% 늘어난 수치이다. 데이트폭력 피의자는 지난해 9월 9869명으로 2021년 9월 7574명 대비 30.3% 증가했다.

데이트폭력 피의자 연령별 현황을 보면 20대가 36.8%(3631명)로 가장 많았고, 30대(25.6%·2526명)가 그 뒤를 이었다. 10대 피의자는 333명(3.4%)으로 가장 적었으나, 전년 동기 대비 60.1% 늘어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2030세대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는 데이트폭력이 10대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와 사회가 철저한 원인분석 및 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