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N 김민찬 기자

우리은행이 제작한 2018년도 고객 배포용 탁상 달력에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그림들이 실렸다. 그 그림들을 자라나는 아이들이 그렸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그림 중 하나는 인공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그려진 그림으로 우리은행이 주관한 우리미술대회 대상 작품이다. 다른 하나는 같은 대회의 금상 작품으로 촛불집회 현장이 그려져 있다.

이 사건의 비난의 화살은 현재 우리은행으로 향하고 있다. 목요일에만 2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우리은행 명동 본점 앞에서 이번 사건을 강하게 규탄했다. 본점 건물 앞에서 달력 화형식을 거행하고, 경찰이 막고 있는 본점 내부로 수십명의 시민들이 진입을 시도하며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식 사과는 차치하고서라도 공식 답변조차 내놓지 않는 우리은행의 태도는 실망스럽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이러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데 있다.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듣고, 지도 받고 있는 것인지 우려스럽다. 또래의 북한 어린이들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고, 인권은 유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인공기와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대중의 광기가 전체주의로 가는 지름길임을 알았다면 촛불집회를 아름답게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보수를 자칭하는 지인조차도,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의 뜻과 열망을 거슬러서는 안된다”고 했다. 국민의 뜻과 열망이 ‘인민의 뜻’과 무엇이 다른가? 국민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개인은 있을 수 없다. 다수가 틀릴 때 옳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올 수 없다. 다수가 지구가 평평한 것이라 하고, 그것이 다수의 열망과 뜻이라면 거슬러서는 안되는 것인가?

촛불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자유가 무엇인지 모른다. 나는 내 아이들이 다수가 옳다고 믿고, 옳다고 강요하는 길을 걷는 것이 아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걷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걷는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다수의 뜻에 참여하거나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낙인을 찍거나 짓밟는 곳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은행 달력은 어쩌면 그런 음울한 세상이 가까웠음을 시사하고 있다.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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