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

 

일장기는 한국인에게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 일장기는 한국 반일종족주의의 화신 좌파세력이 모멸하고 소각하는 대상물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우파에 의해 하늘 높이 추켜들고 '안티반일'을 감행하는 상징물로 변했다.
금년 5월 10일 서울 종로구 안티반일집회의 현장에서 필자는 '위안부'를 외치는 좌파를 향해 커다란 일장기를 휘두르며 돌진하는 우파 지식인과 활동가들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한마디로 경천동지의 변모를 보았던 것이다.
이에 앞서 3·1절에 세종시의 한 목사가 아파트에 게양한 일장기로 인해 한국사회를 소연케 한 '사건'이 있었다. 그 목사는 대일본제국 덕분에 한국이 근대화를 이뤘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면서 "한일은 과거에 대한 인식을 좀 접어주고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라고 직언했다(한국일보 3.7 박민식 기자)
그야말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에서 토로한 정론(正論)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뿌리깊은 일장기 혐오와 모독의 역사에서 우파들의 위와 같은 일장기 게양 및 일장기를 높이 휘두르며 좌파진영으로 매진하는 행동은 가히 일종의 안티반일'혁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종의 의미에서 광복 후의 반일사는 일장기 모독, 소각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반일데모·반일집회에서 각앙된 심정으로 일장기를 찢고 소각하는 모습은 TV화면으로 늘 국제사회에 알려져 외국인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일종기 모욕·소각은 한국 반일 정서의 상징으로서 클로즈업된 현상이며 고정메뉴다.
2012년부터 한국에서는 '일장기와 욱일기'를 전범기라는 사전에도 없는 신조어를 발안하여 널리 쓰이게 됐다. 나치나 일본 제국 군부 등 전쟁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속한 단체의 깃발이란 의미다.
그러나 법적으로나 학술적으로 모두 근거가 없는 감정적 차원의 조어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또 2013년 '일본 욱일기의 공식적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였는데, 이 '욱일기 금지법' 역시 국제사회에서도 전례가 없는 한국식 반일해프닝으로 심심치 않게 회자되곤 하였다.
최대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도 이런 '욱일기 금지법'이나 한국인처럼 일장기를 극도로 증오하는 소각 행위는 더러 있지만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북경대학의 우파 교수가 2016년 필자와의 대담에서 "한국인은 왜 그렇게 광적으로 반일하면서 일장기를 태우는가. 정말 불가사의하다"고 지적한 적이 있어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2023년 3월 16일 방일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일장기에 경례를 한 것을 두고,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의전비서관 출신 탁현민 씨가 '의전 실수'라고 공개비판을 가한 사례도 있었다. 방문국에서 국제적 관례로 고개를 숙여 각기 상대방 국기에 대해 예를 표하는 것은 문제삼을 일일까.

'일장기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23년 5월 7일 일본 기시다 총리가 국립현충원에 참배할 때 일장기가 내걸린 것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가히 통탄할 일"이라며 비난을 했는데, 현충원 측에서는 국제 의전상 관례라고 반박했다. 이때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한복판, 국립현충원에서 휘날리는 일장기를 보며 대한의 독립을 위해 몸 바쳤던 순국선열께 부끄러움이 가득하다. 이건 가히 통탄할 일"이라고 강도 높이 비판을 가했다.
민주당의 당 지도부에 속하는 인사가 국제적 외교 관례의 예의도 모르며 엉터리로 "대한독립 순국열사께 부끄럽다"는 어불성설의 말을 하니 필자는 대한민국에 그런 저열한 수준의 정치인이 있다는 사실에 더 부끄러움을 느꼈다.

솔직히 고백하여 중국에서 나고 자란 필자는 국민학교 때부터 일장기의 순수미에 매료된 기억이 있다. 붉은 해를 의미하는 동근 원이 결백한 배경에 떠 있는 모습은 세계 국기 중 가장 단순 명쾌하고 군더더기 없이 청결한 이미지의 깃발이다.
여러가지 별이나, 색채 또는 동식물의 로고가 들어 있는 세계 각국의 인공적인 이데올로기를 뜻하는 국기에 비해 '히노마루'는 해상에서 해가 솟아오르는 일본의 이미지 그대로이다.
이게 왜 한국에서는 전범의 깃발이 되고 증오하고 저주하고 모욕하고 소각하는 대상이 되어야 하나.
일장기와 함께 반일의 정서를 잘 노정시킨 한국인의 '일왕'이란 명칭 역시 석연치 않다. 천황을 그대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일황' 또는 많이 '일왕'이라 부른다. 일왕이란 칭호는 없는데도 한국인은 제멋대로 '일왕'이라 부른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인의 근성에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 멸시하는 국제적 상식과 예의의 결핍이 있음을 설명해주고 있다. 외교상·국제관례상에서 국가 원수, 국가 상징의 칭호 등은 반드시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는 것이 상식이다. 중국에서도 천황을 그대로 불러주는데 한국만이 천황을 일왕으로 낮추어 부른다. 천황은 황제를 의미하는데 국왕이 존재한 한국에서 천황은 국왕보다 한 차원 위라 할 수 있으므로 중국 조공체계에 있던 한국인에겐 천황은 기피의 대상인 셈이다.
중국이 동아시아 질서에서는 종주국이자 맏형이고 조선이 둘째, 일본이 막내동생이었기 때문에 종주국과 같은 '황제' 칭호를 사용하는 일본이 아니꼬운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철저하게 '일왕'만을 고집하는 한국 사회다.

'천황'이란 명칭마저도 낮추어 '일왕'이라 부르는 그 못된 협소한 아량은 가히 '반도인 급'이라 해야 하겠다.
일장기도 사실 따지고 보면 과거 일정시기 일본 국민으로 살던 조선인의 국가가 아니었던가. 일장기 아래서 공부하고 일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이 나자 일본 국군으로 참전한 조선인들은 중국군과 전쟁하지 않았던가. 조선계 일본군은 일장기와 욱일기를 휘두르며 일본인 군인과 함께 피흘리고 희생하지 않았던가.
또한 이런 일장기는 다름아닌 당시 조선인의 아이덴티티를 상징하는 깃발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일장기를 모욕하고 소각하고 찢어버리는 한국인의 행위는 자신의 과거, 자신의 아이덴티티의 일부분이었던 선대를 모욕하는 것이다.
일장기를 찢고 불사르는 한국인, 특히 좌파들의 그런 저열하고 비천한 행동양식에서 필자는 여전히 전근대적, 중세적 비민주주의·비자유주의의 몰골을 보게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인은 태극기를 불사르고 모독하는 일은 없다. 
그들은 한국인에 비해 비교문화론적으로 보아도 민도가 높고 교양이 있으며 신사숙녀들이다. 상대를 존중할 줄 알고 예의를 지키는 것을 아는 자만이 근대인의 품격이다.

같은 한민족 동포 지식인으로서 필자는 일본인의 민주·자유·근대의식에 비교했을 때 한국인들이 격심한 차이를 보이고 일본 증오에만 여념없는 것이 마치 신들린 무당의 굿처럼 보인다. 중세의 사고 틀에 푹 빠진 비열하고 파렴치하며 격앙된 그런 모습들을.
필자는 나름대로 이런 반일을 '일장기 알레르기' 또는 '일장기 콤플렉스'로 부르고 싶다. 이런 콤플렉스를 두고 국제적으로 비웃음당하는 화제가 되고 있음을 한국인은 알아야 한다. 멈출 줄 모르는 증일·반일의 감정을 타인의 시선과 견주어 보면서 일탈이라는 것을 깨닫고 절제할 줄도 알아야 하겠다.
제발 한국 동포들이 국제적 상식과 예의를 갖춘 근대인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접국 일본을 탓하기보다 그들의 고차원적인 근대성을 다시 따라배움이 지름길일 것이다.
한국 우파는 이 점에서는 이미 개안하고 깨달았다. 진실을 알기 때문에 반일을 반대하고 일본을 존중하고 배우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따사로운 5월도 대한민국 하늘 아래 일장기가 눈부시다. 일장기를 태극기처럼 존중하고 이해하는 그런 날을 필자는 기대해본다. 

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현 일본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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