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전쟁임박설을 퍼뜨리는 가운데, 미국 정가(政街)에서는 주한미군 가족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한국의 국회에서는 미국의 대북 해상봉쇄 가능성을 묻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일부 지역에서는 북한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대피훈련이 실시되기도 했다. 북한내 700개의 전략목표들을 설정해놓고 지난 4~8일에 실시된 최대 규모의 한미 연합공군훈련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에 대해서도 미국이 대북 예방타격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고, 미국의 고위 정책결정자들이 북한이 일정기간 도발을 멈추면 대화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에 대해서도 ’군사행동을 위한 명분쌓기‘로 보는 해석이 나왔다.

이런 위기설을 반영해서인지 문재인 대통령도 ‘제2의 6.25는 안된다’고 반복적으로 천명해왔고, 지난 12월 14일 베이징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의 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 전쟁 불용,’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등 4대 원칙에 합의했다. 그러나 문제는 전쟁위기설이 현실로 나타날 것인가를 결정하는 최대 변수는 평양정권임에도 평양으로 하여금 핵포기를 결단하게 할 수 있는 주변여건은 조성되지 않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도 최대 피해예상국인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즉, 한국이 ‘전쟁 불가’를 외친다고 해서 군사충돌이나 전쟁이 예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북 충돌과 한반도 전쟁

북한이 한미동맹 무력화 등을 목표로 삼고 계속해서 핵무력을 과시하고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을 위협한다면 미북 간 군사충돌의 가능성은 당연히 더 높아지며, 결과도 예상할 수 있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북한의 제2격(2nd strike forces)을 모두 제거하는 대규모 예방타격과 제한적․상징적 군사조치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놓고 고민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상징적 차원을 넘는 일정 규모 이상의 예방타격을 실시하는 경우 북한은 미 본토든 미국의 아시아 군사기지든 한 두 군데의 목표물을 타격하여 피해를 줄 수 있겠지만, 그 즉시 전개될 미국의 재타격으로 인해 북한이 지도에서 사라질 수 있다. 평양정권은 수소탄까지 보유한 천하무적의 핵강국이 되었다고 자평하지만, 북한과 최강국 미국 사이에 상호확실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전략이 작동하는 ‘상호취약성(mutual vulnerability)'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보는 전문가는 없다. 북한이 핵을 사용한다면 미국 역시 제한적 핵사용을 통해 북한을 초토화시킬 것이고, 북한이 재래탄두를 사용한다면 미국도 핵사용을 자제하고 토마호크 등 재래 정밀타격수단들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대규모 충돌 이후의 북한의 운명은 미중 간의 협의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미북 간 대규모 충돌의 시나리오는 미국에게 있어서도 극단적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도 북한에게 대응의 명분을 주지 않을 정도의 상징적․제한적 타격만을 가하거나 폭발력이 적은 해상봉쇄와 같은 조치를 택할 수도 있지만, 아예 첫 대북타격에서 북한의 모든 제2격 군사력을 파괴하는 선택을 검토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한국이나 일본을 향해 보복에 나설 것인가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초미의 관심사이다. ‘무적의 핵강국’을 선전해온 평양정권이 미국의 타격을 얻어맞고 가만히 있다면 스스로 존재감을 포기하는 것이 되어 정권생존에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미국의 제1파 타격이 대규모라면 북한은 제3국에 대한 보복을 결행하기에 앞서 미국의 추가 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제2격을 아껴야 하는 상황에 처할 것이다. 즉, 북한의 대남 또는 대일 보복의 가능성은 미국의 타격이 일정규모 이하일 때에 더 높아질 것이며 보복을 감행하더라도 타격수단의 소수만을 소모하는 제한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높고,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한다면 핵보다는 화생탄두를 사용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아 보인다.

아울러, 북한이 일본을 보복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으며, 보복을 하더라도 일본내 미군자산에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일본을 공격한다는 것은 경제대국이자 기술대국인 일본에게 핵무장을 포함한 본격적인 재무장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뒷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중국이 바라는 상황도 아니다. 사실, 일본인은 두 개의 시각을 가지고 북핵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하나의 시각은 북핵이나 미사일이 일본에게 주는 안보위협을 우려하면서 대처해야 한다고 판단하며, 이 부분에서는 한일 간 안보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또 하나의 시각으로는 일본이 북핵으로 인하여 실제로 물리적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그것을 평화헌법의 개정과 재무장 및 전후청산을 앞당기는 명분으로 활용할 궁리를 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미북 군사충돌이나 한반도 전쟁비화 가능성을 비교적 느긋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결국, 미북 간 대규모 군사충돌이 한반도에 핵재앙을 가져오거나 북한의 대남보복으로 인해 남북 간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은 우선적으로 한국인의 악몽(惡夢)인 것이다.

3국3색(三國三色)의 북핵 대응과 한국의 핀랜드화

직접적인 패해 당사국인 한국이 북핵 문제에 확고하게 대응할 방도를 찾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가역량의 한계이지만, 미국, 중국, 한국 등 핵심 당사국들이 3국3색(三國三色)의 북핵 대응 로드맵을 가진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미국은 군사행동 가능성을 흘리면서 최대 압박과 제재를 통해 북한을 굴복시켜 비핵화 협상으로 끌어내되, 여의치 않으면 군사행동으로 북핵을 제거하고 차제에 정권교체까지 모색한다는 로드맵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12월 18일 트럼프 행정부가 발행한 국가전략서(NSS)가 북한을 ‘임박한 위협’으로 간주한 것에서도 확인되었다.

중국은 ‘지나치지 않는 수준’의 제재를 가하면서 ‘대화와 협상’으로 북핵을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래도 북한이 협상에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래도 대화와 협상’이라는 대책없는 대답만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상 북핵을 묵인하는 이런 입장은 중국이 핵보유 북한을 대미․대일 견제를 위한 전략자산으로 간주한다는 의미, 즉 해양세력을 견제하는 지전략(geostrategy)의 한 수단으로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중국은 안보리 제재에 가담하면서도 동시에 지나치게 강력한 제재안이 채택되지 않도록 미국을 견제하는 이중플레이를 고수하며,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을 쏘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반대한다”는 하나마나 한 말만 되풀이할 뿐, 한번 더 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결코 하지 않는다.

이렇듯, 미국과 중국이 북핵 대응에 있어 상충되는 로드맵을 고수하는 중에, 양국 간에는 신냉전적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앞세우고 중화패권(中華覇權) 시대의 개막을 서두르고 있으며,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을 통해 중국의 팽창주의적 부상을 견제한다. 이런 의미에서 북핵 문제는 신냉전에 기생(寄生)하는 문제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신냉전을 악화시키는 촉매가 되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저지를 때마다 미중은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보호와 북한 제재를 놓고 대립한다. 북한은 이 경쟁구도 속에서 국제제재를 견디어내면서 핵무력 고도화를 강행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의 핵외교는 다분히 모호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는 ‘최대 압박’을 위한 공조를 모색한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중국과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핵해결’에 합의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으며, 북한을 향해서는 화해협력의 돌파구를 모색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는 결국, 발등의 불인 ‘전쟁위기 회피’와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집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행보에는 장기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야 하는 과제들을 수행함에 있어서는 더 많은 어려움을 초래한다는 모순성이 내포되어 있다. 있다. ‘대화와 협상’이외의 북핵 대응책을 가지지 않은 중국에 동조하는 것은 사실상 북핵 문제의 악화를 지켜보기만 하는 것으로 귀결되기 쉬우며, 미국이 원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의 참여나 한․미․일 안보협력을 거부하는 것이 되어 동맹의 신뢰를 잠식할 수 있다.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점 그리고 중국은 북한의 동맹국으로서 남북 간 안보위기 발생시 한국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역할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행보는 한국의 중장기 한국이익을 훼손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반대편의 행보가 쉬운 것도 아니다. 한국이 미국의 대북 강경기조에만 동조하면서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미․일 안보협력에 적극 동참한다면, 한중관계는 악화되고 불편은 가중될 것이다. 이는 두 강대국 사이에 낀 상대적 약소국인 한국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핀랜드화(Finlandization) 딜레마인지도 모른다.

현재로서 한국이 자력으로 미북 충돌 또는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불식시키는 묘안은 없어 보인다. 한국에게는 북한의 핵포기를 강제할 힘이나 중국의 최대 압박을 끌어낼 지렛대가 없으며 동시에 미국의 군사행동을 포기시킬 명분과 수단도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 불가’를 천명한다고 해서 북한이 군사충돌을 가져올 수 있는 핵게임을 포기할 것 같지 않으며, 중국이 입으로는 ‘전쟁 불가’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북핵을 방조하여 미국으로 하여금 군사옵션을 만지작거리게 하는 모순스러운 행동을 중단할 것 같지도 않다.

한국정부가 공개적으로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 반대’나 ‘한반도 전쟁 불용’을 천명하는 것이 군사충돌이나 확전을 회피하는데 기여한다는 보장이 없으며, 오히려 한국이 미국을 만류하는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 북한의 도발을 부추기는 결과로 초래할 수도 있다. 때문에 가장 바람직한 것은 한미 정부 간 그리고 군사당국 간 깊숙한 전략대화를 통해 미국의 군사행동을 자제시키고 군사행동이 불가피할 경우에는 한반도에 전화가 비화되지 않을 방안들을 협의하는 것이지만, 이 역시 한미 간 동맹신뢰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현재 한국은 한중관계 회복이라는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드 추가배치 배제, 미국 미사일방어(BMD) 통합 배제, 한․미․일 안보동맹 배제 등 ‘3불(不)’을 약속하고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에 참여할 뜻을 비치고 있지만, 미국은 중국을 ‘경쟁국이자 적국’으로 정의하면서 필요시 사드의 추가배치,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한미 간 미사일방어 협력 강화 등을 희망하고 있으며, 한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해주기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맹신뢰를 자신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제3의 대안으로서의 남북한 핵균형 전략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수시로 부상하는 중에도 한국이 그 가능성을 불식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역량은 부재하며, 그렇다고 해서 한국정부가 유사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비상계획을 강구하고 있다는 징후도 없다. 하와이, 괌, 일본의 호카이도 등지에서 미사일 대피훈련이 실시되고 있음에도, 정작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한국에서는 대피훈련이 실시된 적도 없으며 동원예비군을 점검하거나 비상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 그럼에도 다행스러운 것은 이론적이나마 한미 양국이 합의하기만 하면 대북 군사행동도 전쟁 가능성도 회피할 수 있는 제3의 대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계속되는 핵무력 고도화에 대해 무작정 ‘대화와 협상’만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확전의 위헙성을 지닌 군사옵션도 아닌 제3의 대안으로는 미 전술핵을 한국에 재배치하거나 한국과 일본에게 자위적 핵무장에 나서게 함으로써 핵균형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북한에게 있어 핵무기는 정권과 체제를 수호하는 ‘보물단지’에서 북핵을 오히려 정권과 체제를 위협하고 경제에 부담을 주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며, 북한이 지금까지 누려온 대남 비대칭적 전략우위도 소멸될 것이어서 대남 또는 대일 핵협박도 먹히지 않게 될 것이다.

물론, 미국이 동맹국들의 핵개발을 만류하는 대신 핵우산을 제공해주는 현재의 반확산에 기반한(nonproliferation- based) 동맹전략을 지속하는 상황에서는 한국이나 일본이 독자 핵무장을 결행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대안이 된다. 하지만, 중국이 북핵을 사실상 묵인하면서 러시아 및 북한과 더불어 미국의 영향력을 잠식하는 지전략을 펼치고 있음을 유의하여 미국이 동맹국의 핵능력을 함양함으로써 팽창주의적 중국몽을 견제하는 전략으로 전환한다면, 한국과 일본은 핵무장 행보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자체로도 중국의 자세를 변화시키는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한국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핵균형 전략이 북핵에 대한 군사행동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방안이자 미국의 장기적 전략이익에도 부응하는 방안임을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

여기에 비해, 전술핵을 재반입하는 문제는, 다양한 장단점과 찬반 논의에도 불구하고, 일단 동맹의 틀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동맹을 유지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이 것 역시 현실성에 있어 많은 문제점들을 내포하는 선택이지만, 이제는 일단 한미 간의 주요 전략 아젠다로 부상시킬 필요가 있다. 전술핵 재배치는 동북아의 핵지형을 바꾸는 것이므로 한미 양국이 이를 논의하는 것만으로도 중국과 북한의 자세변화를 촉구하는 지렛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20년 후 최대 안보위협은 중국

자고로, 한 나라의 역량은 국력(capability)에 전략(strategy) 그리고 의지(will)를 곱한 값으로 나타난다. 바꾸어 말해, 군사력, 경제력, 정보력 등을 포괄하는 하드파워에 그것을 운용하는 소프트웨어와 실천결의가 더해짐으로써 국가의 역량이 결정되는 것이다. 하드파워가 부족한 약소국일수록 현명한 전략과 강인한 의지가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20년 후 한국이 직면할 최대의 생존위협은 중국으로부터 올 것이며, 그 때쯤이면 주변국을 향한 중국의 완력정치를 극복하고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한국의 최대 안보과제가 될 것이다. 한국은 이에 대비하기 위해 지금부터 역량을 키워나가야 하며, 한반도에서 핵균형을 이루고 대중(對中) 경제의존도를 획기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11월초 인도네시아를 방문하면서 아세안과의 관계 증진을 통해 대중 경제의존을 줄이는 ‘신남방정책’을 표방한 것은 일단 올바른 방향제시라 할 수 있으며, 국민은 정부가 제대로 된 장단기 전략과 의지로 이를 관철시켜 나가는지를 주목할 것이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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