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예산 정책·反난민 정책 등에서 EU와 엇박자 '예고'
저소득층에게 780유로(약98만원) 기본소득 지급 공약, 세금인하, 연금개혁안 철폐 등 공약
伊, GDP의 132%가 부채...예산 방만히 운영할 경우 '그리스 재정위기'보다 심각할수도
EU측 "어느 때보다 강력한 통합과 연대가 필요"

유럽연합(EU)의 창설 공신인 이탈리아에 포퓰리즘·반(反)EU 성향의 오성운동과 동맹당의 연정(聯政)이 출범했다. 오성운동-동맹당 연정은 지난 달 발표한 공동 국정운영안에 복지 확대와 세금 삭감 등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 불가피할 공약을 담고 있으며, EU와의 주요 협정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혀 일찌감치 EU와의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유럽연합(EU)기를 배경으로 휘날리고 있는 이탈리아 국기 [AFP=연합뉴스]

1일(현지 시각), 오성운동과 동맹당이 총리로 추대한 주세페 콘테 피렌체대학교수가 이날 오후 의회에서 취임했다.오성운동의 루이지 디마이오 대표는 노동복지부 장관을 마타 저소득층에게 월 780유로(약 98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실천에 옮길 예정이다. 

마테오 살비니 동맹당 대표는 난민을 대거 국외(國外)로 몰아내겠다며 내무부 장관 겸 부총리를 맡는다고 밝혔다. 살비니 대표는 앞서 "이탈리아의 존엄과 미래, 사업체와 심지어 국경까지 팔아넘기는 (EU의)노예가 되지 않겠다"며 EU에 대한 불만을 공공연히 표출해왔다.
 

1일 새 정부 출범식에서 활짝 웃는 루이지 디 마이오 오성운동 대표(왼쪽)과 마테오 살비니 동맹 대표 [AFP=연합뉴스]

경제부 장관에는 조반니 트리아 로마대 경제학과 교수가 기용될 예정이다. 이탈리아 언론은 트리아 교수가 영미식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싱크탱크 이사를 맡고 있는 등 온건 성향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오성운동과 동맹당은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 탈퇴론자인 파올로 사보나를 당초 경제부장관으로 밀었으나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이 거부감을 표시하고 해외 투자자들이 우려하면서 금융시장 또한 요동을 치자 한 발 물러선 것이다. 하지만, 사보나가 내각 명단에서 살아남아 EU와 이탈리아의 관계를 조율할 EU관계 장관으로 임명된 것은 EU로서 껄끄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입장을 변경하긴 했지만 집권 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꾸준히 이야기해 온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반(反)난민, 반EU 성향을 드러내 온 동맹이 손을 잡은 세력이 집권하는, EU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됐다. EU로서는 EU의 창설 멤버 중 하나로 그동안 EU의 통합 가치를 앞장서 실현하던 이탈리아가 아닌, EU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 것으로 보이는 ‘전혀 다른’ 이탈리아를 상대해야 하는 양상이다.

대(對)러시아 제재에 대한 반대, 50만 명에 이르는 불법난민 추방 추진, 다른 유럽 국가로의 즉각적인 난민 분산 촉구 등 이들이 내세우는 다른 정책 역시 EU와의 엇박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안 그래도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이 난민 정책 등에서 EU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난민 억제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한 오성운동-동맹당 연정까지 EU와 각을 세운다면 EU로서는 곤란한 처지이다.

또한 현재 그리스에 이어 역내 2번째인 국내총생산(GDP)의 약 132%의 부채를 지고 있는 이탈리아의 새 정부가 저소득층에 월 780유로(약 98만원)의 기본소득 지급, 세금 인하, 연금 개혁안 철폐 등의 공약을 실현하며 예산을 방만히 운용할 경우 그리스식 채무 위기가 닥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EU로서는 큰 고민거리다. 앞서 그리스는 8년 동안 구제금융신세를 졌다. 경제 규모가 그리스의 약 10배, 국가 부채의 총계는 약 7배에 달하는 이탈리아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처지에 놓인다면 이는 EU 전체의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문가들은 이탈리아의 재정 위기나 유로존 탈퇴가 현실화될 경우 그리스 재정위기 사태 때보다 파급 효과가 훨씬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EU는 새 정부에 통합과 연대를 선제적으로 강조하고 나섰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1일 취임한 콘테 총리에게 축하 서한을 보내 "이탈리아와 전체 EU에 있어 극히 중요한 시기에 총리직을 맡게 됐다"며 "우리 앞의 공동의 도전들을 극복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강력한 통합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전날 "이탈리아인들은 더 많이 일하고, 부패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논란을 빚은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도 대변인을 통해 "새 정부가 주변국, EU와 협조하며 EU의 중심 역할을 하는데 있어 역량과 의지를 보일 것으로 믿는다. 난민 문제를 포함해 많은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탈리아 정부와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오성운동(五星運動)은 코미디언 출신의 정치인 베페 그릴로가 2009년 만든 이탈리아의 정당이다. 오성운동의 오성은 '공공 수도, 지속 가능한 이동성, 개발, 접속 가능성, 생태주의' 등 다섯가지 이슈를 의미한다. 북부동맹은 1991년 부유한 북부의 분리독립을 추구하면서 창당했으며, 마테오 살비니가 당권을 장악한 2013년 이후에는 민족주의와 지방분권 강화 등을 강조하고 있다.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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