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1일 '창원 간첩단 사건'의 주동자 혐의를 받는 인사들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는 조선반도에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온 겨레 성원 모두가 우러르는 주체혁명의 새 세상을 열어주시었습니다"(2018년 12월 9일)
"수령님과 장군님의 사상과 업적을 빛나게 계승하여 이남 사회에 김일성·김정일주의화 위업을 빛나게 실현함으로써 이 땅 위에 꿈에도 그리던 조국 통일을 이룩하는데 한 몸 바쳐 투쟁할 것을 결의합니다"(2020년 9월 30일)
"백두에서 개척된 우리 혁명의 영원한 수뇌부를 결사옹위로 정의롭고 아름찬 역사를 계승하고, 경애하는 영도자 김정은 동지께 대를 이어 바쳐가자"(2021년 1월 11일)
"김정은 동지의 손을 잡고 태양조선, 백두산 민족의 기백으로, 선군의 총열에 붉은 기 묶고, 앞세워, 억척같이 어깨 걸고 한발한발 진군 또 진군해 나갈 것입니다"(2022년 1월 30일)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 받들어 대를 이어 충성하자"(2022년 4월 4일)

이는 북파 간첩이 쓴 것도, 북한 사람이 쓴 것도 아닌 북한 간첩을 자청한 한국인이 쓴 북한에 대한 충성맹세문이다. 21세기 한국에 간첩이 있을 것이라 꿈에도 생각지 못한 사람은 '경천동지'할 내용이고, 간첩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던 사람에게조차 소름 끼칠만한 문구들이다.

지령문을 통해 북한과 연락하는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민주노총 소속 인사들이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에게 충성맹세까지 했단 사실이 19일 공소장을 통해 드러났다.

여기엔 민노총 조직쟁의국장 석모 씨, 민노총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이었던 김모 씨, 민노총 산하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 양모 씨, 제주평화쉼터 대표 신모 씨 등 4명이 포함되는 것으로 이날 모 언론에 의해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 2018년부터 삼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 대한 충성맹세문을 쓰거나 자체적으로 사상학습을 실시한 결과를 주기적으로 보고하는 등 북한에 자발적 노예짓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북한 측에 의해 강요된 결과로도 보이는데, 북한 문화교류국은 그해 12월 3일 "새해와 1월 8일을 맞아 총회장님께 드리는 축전을 15일 전까지 보내라"고 지시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월 8일은 김정은의 생일이며, '총회장'은 김정은을 지칭한다.

상기의 충성맹세문들은 2018년 12월부터 비교적 최근인 지난해 4월까지 북한에 전달됐다.

이들은 위에서도 알 수 있듯 적발을 피하기 위해 김정은을 '총회장님' 등으로 바꿔 불렀다. 이외에도 북한 문화교류국은 '본사', 지하조직은 '지사', 민주노총은 '영업1부'로 이름을 다르게 바꿨다.

이들은 한국을 교란하기 위한 활동을 직접 했다고도 검찰은 적시했다. 검찰에 따르면 민노총 장악, 윤석열 정권 퇴진·반미 목적의 정치 투쟁 등이 이들에 의해 주도됐다. 이 과정에서 석씨는 지난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총 102번이나 지령문을 받고 또 북한에 전달했다.

이들은 그 외에도 민노총 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계파와 성향을 파악하고, 평택·오산에 있는 미군 시설과 군사 장비 등을 사진으로 찍기도 했다.

이들은 이러한 활동이 수사·안보당국에 적발되지 않게 '단선연계 원칙(1대1 연락)'에 따라 비밀스럽게 접촉하거나 북한 문화교류국과 연락할 땐 '간첩 통신'이라 불리는 스테가노그래피를 사용했다. 또 민주노총 게시판을 이용하거나 유튜브 동영상 댓글 달기 등의 방법으로 북한과 지령문 및 보고문을 주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하는 방식은 '계단 대기, 생수병 열고 마시는 동작' 등 사전에 정해진 신호를 통한 만남이었고, 이 과정에서 일정 간격을 두고 뒤따라가기 등 보안을 치밀하게 유지하려 노력하기도 했다.

이들의 '자발적 북한 노예짓'은 지난 1월 수사당국이 석씨의 민노총 본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암호 해독키를 찾아내면서 만천하에 드러났다. 현재까지 검찰, 국정원, 경찰청이 확보한 이들의 대북 문서는 총 114건에 달하는데, 북한지령문이 90건이고 대북 보고문이 24건이다.

이렇듯 증거가 나왔음에도 이들은 자신들의 혐의를 부인하고 진술을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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