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두형 전 연합뉴스 편집국 부국장

노무현은 불법 대선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 넘으면 대통령직을 그만둔다고 선언한다. 100억 원 넘는 불법 자금이 검찰에서 밝혀진다. 한나라당은 800여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이 밝혀진다. 이것저것은 정치자금으로 볼 수 없으니 결국 10분의 1은 안 넘은 거라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한나라당은 800억 받았으니 차떼기 당이고 우리는 100억이니 깨끗하다?. 집권당 민주당의 불법 정치자금 수사에 대한 검찰의 부담으로 노무현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노태우는 대선자금, 정치자금 다 쓰고 남은 게 4,000억 원이다. 거기에 비하면 한나라당 800억은 가소로운 수준이다. 노무현식 궤변이면 한나라당도 깨끗하다고 얘기할 수 있다.

내가 받은 돈은 잘못된 정치 관행 때문이며 진흙탕 옆에 있다 보니 흙탕물이 튄 거고 다른 사람이 받은 건 원래 더러워서 받은 거다. 이런 뻔뻔스러움이 지지자들에게까지 전염이 되어 기업인에게서 1억원 짜리 시계를 세트로 받고, 수백만 불의 부정한 자금을 받아도 그게 뭐 대수냐, 대통령이 그 정도는 받을 수 있지, 누구누구에 비하면 돈도 아니다, 또다시 다른 사람을 걸고넘어진다. 노무현식의 후안무치와 궤변, 그리고 막말이 대한민국 도덕성의 평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대한민국의 언어, 문화와 정서를 파괴한다.

다음은 이인규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에 나오는 내용이다.

“SK 김창근 구조조정 본부장이 지난 김대중 정부 시절 여야 정치권에 준 정치자금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16대 대선 과정에서 한나라당에 100억 원, 민주당에 25억 원, 대통령선거 직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측에 12억 원을 제공했다는 내용이었다. 노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후 취임하기 전에 그 측근에게 12억 원을 주었다니 놀라웠다. 정치자금이 아니라 뇌물이 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불법 대선자금 액수는 한나라당 823억 원, 노무현 후보 캠프 119억 원이었다. 최도술 안희정 등의 범죄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 또는 공모에 의한 것이거나 적어도 대통령이 알거나 묵인하에 그를 위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이들 범죄가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소위 유체 이탈 화법이다. 또한 수십억 원을 수수한 것이 치부나 축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최소한 체면치레를 위한 것이라고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도대체 대통령의 체면치레를 위해 수십억 원을 받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인가?... 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노무현 대통령보다는 야당인 한나라당에 더 큰 타격을 주었다. 2004년 4월 15일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50.83 퍼센트를 얻어 156석으로 원내 제1당이 되었다.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라는 전장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승자는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박연차 태광그룹 회장은 회갑 선물로 피아제 명품 시계 1세트를 준 경위에 대해 2006년 9월 하순경 노 대통령의 회갑을 맞이하여 노 대통령의 형 건평을 통해 노 대통령 부부에게 스위스 피아제 시계 남녀 1세트를 전달했다. 위 피아제 남녀 시계 1세트는 부산에 있는 고급 시계 판매점 명보사에서 2억 550만 원에 구입한 것이다. 청와대 회갑 모임에서 돌아온 노건평이 노 대통령 부부의 감사 인사를 전해 주었다. 2007년 봄 경 청와대 관저 만찬에서 노 대통령으로부터도 직접 감사 인사를 받았다. 식사 도중 노 대통령이 왼손을 치켜들고 박 회장 지난번 보낸 시계가 번쩍번쩍 좋은 시계입디다. 군대가 쳐들어올까 무섭습니다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인규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미국 주택 구입 자금 명목으로 100만 달러를 준 경위에 대해 2007년 봄 경 청와대 대통령 관저에서 노 대통령의 초대로 노 대통령 부부와 정상문 총무 비서관 등 4명이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도중 권양숙 여사가 아들 노건호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 중인데 낡은 아파트에 월세로 산다. 대통령 아들이 세를 얻어 사는 것도 뭣한데 아래층에 사는 사람의 항의 때문에 아이들이 제대로 뛰어다니지도 못한다. 집을 사 주려면 10억 원 정도 든다는데 걱정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청와대 관저로 나를 초대해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이유가 미국에 유학 중인 아들을 위해 집을 사는데 도와달라고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권양숙에게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10억이면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권양숙은 그래도 되나요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했고 이때 노대통령은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들으면서 겸연쩍게 웃으며 몇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2007년 6월 하순경 노 대통령이 전화로 미국에 건호 집을 사줘야하는데 100만 달러만 도와주면 고맙겠다 정 비서관과 상의해서 처리해 달라는 취지로 말했다. 직후 정 비서관이 전화로 어른께 얘기 들었는데 도와주신다니 고맙습니다. 6월 30일 출국 예정이니 날짜를 꼭 지켜달라고 했다. 시간이 촉박해 정산개발 정승영 사장이 직원 130여 명을 동원해 김해 시내 은행 등에서 100만 달러를 환전했다. 130명을 동원한 이유는 1인당 1만 달러 이상을 환전할 경우 국세청, 금융정보분석원 등에 통보되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승영이 6월 29일 오후 청와대에 가서 정 비서관에게 100만 달러가 든 가방을 전달했다.” (이인규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사업자금 명목으로 500만 달러를 준 경위에 대해 2006년 9월경부터 베트남에서 화력발전 사업허가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환경문제 등으로 사업 제안이 두 번씩이나 거부당하는 등 베트남 정부의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2007년 11월 14-16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농득마인이 우리나라를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고 정 비서관 등 여러 경로를 통해 한 베트남 정상회담 자료에 태광실업의 베트남 화력발전 진출 사업 건을 추가하게 했다. 2007년 11월 14일 저녁 청와대 영빈관에서 있었던 농득마인 베트남 서기장 환영 만찬에 참석했는데 만찬 직전 정 비서관으로부터 대통령께 태광실업의 베트남 화력발전 사업 건을 보고했다는 말을 들었으며 만찬 도중 노 대통령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베트남에서 화력발전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당 서기장에게 잘 말씀해 주십시오 지난번 약속은 꼭 지키겠습니다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인 11월 15일 저녁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내가 주최하는 농득마인 서기장에 대한 환영 만찬이 있었다. 만찬 전에 농득마인 서기장이 묵고있는 신라호텔 2229호에서 그로부터 대통령이 당신을 절친한 친구라고 하면서 태광실업의 화력발전소 사업을 잘 도와달라고 부탁하더라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 그 후 2008년 2월경 베트남 총리로부터 태광이 남딘성에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을 지원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2007년 12월 초순경 노 대통령이 전화로 우리 애들이 사업을 한다고 하는데 지난번 도와주기로 한 거 지금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 직후 정 비서관으로부터 애들을 보낼테니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2월 중순경 최규성 전무가 노건호 등이 사업자금을 송금해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기에 어차피 주기로 한 돈인데 따지지 말고 송금해 주라고 지시했으며 같은 달 22일 홍콩 JS Global UBS 은행 계좌에서 HSBC Tanado Investment Ltd. 계좌로 500만 달러를 이체했다. 노건호 등과 사업내용, 투자금액, 이윤 분배, 투자 회수 방법을 정하는 등 투자 계약을 맺은 사실은 없으며 노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노건호 등의 사업자금으로 500만 달러를 대가 없이 준 것이다. 3월 중순경 정산 CC에서 박정규 전 민정수석과 골프를 친 후 저녁 늦게 봉화마을 사저에 놀러가 노 전 대통령을 만났는데 우리 애들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이인규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차용금 명목으로 15억 원을 준 경위에 대해 봉하마을 사저에서 술대접을 받은 지 얼마 안돼서 2008년 3월 17일경 정산개발 정승영 사장으로부터 정 전 비서관이 찾아와 봉하마을 사저 건축에 돈이 많이 들어갔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15억 원을 빌려달라고 한다는 말을 듣고 또 뭐가 그렇게 필요하노 참 체면없는 사람아이가 그거는 정확하게 차용증 받고 빌려주라고 지시했다. 같은 달 20일 정 비서관으로부터 노 전 대통령의 차용증을 받고 15억 원을 송금했다. 차용증에는 이자 연 7%, 변제기는 2009년 3월 19일로 되어 있으나 원금과 이자를 받은 적은 없다.” (이인규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5월 7일 권양숙 여사는 2007년 6월 29일 박 회장으로부터 받은 100만 달러의 사용처에 관한 답변서를 제출했다. 서면 답변서에서 미국 집을 구입하기위해 100만 달러를 빌렸으나 노건호의 반대로 집을 사지 못했다고 하여 미처 갚지 못한 빚이 있어 빌렸다던 기존의 진술을 번복했다. 100만 달러의 명목이 미국 주택 구입 자금임을 인정한 것이다. 다만 용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고 아이들 유학 비용 때문에 생긴 빚을 갚고 (40만 달러) 아이들에게 직접 주기도 했으며 (35만 달러) 친인척 등에게 조금씩 사용했다 (25만 달러)고 두루뭉술하게 진술했다... 정상문 전 비서관도 2007년 6월 29일 100만 달러를 받고 40만 달러는 추가로 받은 것이라고 인정했다. 5월 14일 언론에서 허드슨클럽 전경 사진과 함께 노정연이 구입한 미국 주택이 뉴저지 허드슨카운티 웨스트 뉴욕에 있는 허드슨클럽 400호라고 보도했다. 뉴욕 맨해튼 마천루 빌딩이 마주 보이는 허드슨강가에 있는 방 3개짜리 호화 콘도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은 더이상 항변할 수 없었다.” (이인규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창피해서 자살인가.노무현이라면 이렇게 변명했을까.

"그건 아니고요. 삶과 죽음이 하나 아니겠습니까. 어느 스님이 쓰신 책 얼마 전에 보니 그렇게 되어있고요. 재판 들어가면 얼굴 못 들 일이 낱낱이 밝혀질 테고요. 감옥에라도 가는 날엔 파렴치범이라고 나중에 작은 비석이라도 하나 세워주겠습니까. 죽음으로 진실을 덮는다는 게 비겁한 짓이지요. 그래도 대통령 했는데 죽고 나서 조그만 비석은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검찰에서 현찰을 그것도 달러로 받은 걸 다 추적하는 게 실력이 보통은 넘고요. 그렇지만 아무리 막가자는 검찰이라도 내가 죽어버리면 더 수사는 못 하겠지요. 내가 다 계산해서 하는 겁니다. 어린 애들이 하는 감상적이고 충동적인 자살은 아니지요. 뇌물 수수로 감옥 안 가고 조그만 비석 하나 챙기는 거 그게 남는 거지요. 그리고 내가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정몽헌 회장, 남상구 사장 심정도 이해가 되고요. 그분들께 조금이나마 속죄가 되지 않겠습니까. 남상구 사장 유족이 명예훼손 소송도 걸었던데 내가 제대로 사과도 아직 안 했지 않습니까. 대선 기간에 장인 빨치산 논란 때 그럼 마누라 버리란 말입니까 한 마디로 대박 났었는데 이번엔 빠져나갈 길이 없어 집에서 돈 받은 거 나는 모르겠다고 했는데 여론이 너무 안 좋고요. 마누라한테 다 떠넘긴다고요. 그거도 좀 만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인사 청탁, 부정부패 걸리면 패가망신시킨다고 내가 말했지 않습니까. 가뜩이나 참여정부를 NATO(No Action Talk Only) 정부라고 하는데 내가 한 말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망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한 조각이다. 이런 종류의 글은 자연스럽게 사망한, 천수를 누릴 때까지 묵묵히 기쁨과 고통, 그리고 모든 삶의 무게를 의연히 받아들인 그런 사람의 유서에 나올 때 설득력이 있다. 현실 도피적인, 파괴적인, 생명을 경시하는 한 정제되지 못한 영혼이 어느 스님의 글에서 급한 대로 빌어다 쓴 글은, 체화되지 못한 언행 불일치의 전형이다. 얄팍한, 간교한 사술이며 떳떳하지 못한 자살이란 결정, 목숨을 담보로 한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한 인간의 변명일 뿐이다. 노무현 정도의 고생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될까. 그만큼 성공을 이룬 사람도 몇 안 된다. 그런 분이 일이 안 풀린다고 자살한다면 대한민국에 살아남을 사람이 몇이나 되나. 세속적 성공에 앞서 정신의 수양, 영혼의 성숙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법조문을 달달 외워 고시 합격해서 변호사 되고 판검사 되고, 영어단어, 수학 공식 외우고 문제 풀고 일류 대학 가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구나. 내 맘대로 세상이 다되어야지. 오만과 탐욕, 그리고 치기로 가득한 가엾은 영혼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가난한 소외된 자들이 가득하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났으나 변호사, 국회의원, 장관, 그리고 대통령까지 나름대로 노력해서 많이 누렸다. 얼마나 더 누리면 만족할까. 감사할 줄을 모른다. 그만큼 누리게 해준 사람들에 대한 배은망덕이다. 평생을 힘들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에 대한 모독이며 위선과 이기심, 오만과 탐욕의 극치를 보여준다.

죄를 지었으면 죄의 값을 받으면 되고 법률적인 죄는 아니나 도덕적인 문제로 끝난다면 그것대로 감내하면 된다. 그리고 영혼은 성숙한다. 정권이 바뀌어 부당한 대우를 받은 부분이 있다면 억울하다면 그것도 다 그만큼 누린 반대급부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대통령직을 수행하며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에 끼친 해악과 불편함에 대한 인과응보다. 시골에서 조용히 농사지으면 다른 사람에 피해 끼치는 범위가 한정된다. 대통령은 다르다. 일거수일투족, 말 한마디, 조그만 결정 하나라도 5천만 대한민국 나아가 8천만 한민족의 가가호호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이 미친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자리는 막중한 자리다. 깜도 안되는 사람이 얼떨결에 맡았다가 성에 안 차면 못 해 먹겠다고 내팽개치는 가벼운 자리가 아니다. 80억 인류를 이끌어갈 8천만 한민족의 미래를 짊어지는 살신성인의 자세가 필요한 엄숙한 자리다. 누구나 크고 작은 죄를 짓는다. 잘못을 범한다. 실패도 한다. 잘못된 결정도 내린다. 배우고 거듭나는 과정이 삶이다. 후회하고, 참회하고, 배우고, 분발한다. 잘못을 저지르고 실패를 할 때마다 자살하면 대한민국에 지구상에 몇 사람이나 살아남을까.

자신은 죄가 없고, 없어야 하고 도덕적 흠결도 없어야 한다는 오만이다. 죄를 지었는데 벌을 받기 싫고, 도덕적 타락을 했는데 비난받기는 싫다. 특권 의식이다. 민주화 세력이라는 위선 아래 감추어진 권위주의와 특권 의식 그리고 도덕적 타락이다. 자신의 권리는 무한대이며, 아무리 작은 권리라도 절대로 침해당해선 안 되는 지고지선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엔 관심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14주기를 맞아 송파구 오금동 인근에 붙은 플래카드 [사진=박준규]

 

대통령 못 해 먹겠다. 대통령이 해 먹는 자리인가.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 대통령이라는 분이 절제되지 않은 막말을 일상적으로 하고 어린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 대통령도 하시는데 막말해도 되는구나. 텔레비전 출연자들도 막말하는 게 일상화가 된다. 권위주의를 없앤다며 필요한 최소한의 권위마저도 무너뜨린다. 언어는 정신세계의 표현이며 한 인간의 영혼의 수준을 보여준다. 절제된 언어의 사용은 정신을 정화하며 영혼의 성장에 도움을 주지만 순화되지 못한 언어는 정신을 갉아먹는다. 한마디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 언어는 글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닌, 우주와 존재의 근원인 소리와 파장으로 구성된 한 인간의 영혼의 울림이다.

절제되지 못한 말과 행동은 자기중심적이며 판단력과 분별력이 미성숙한 어린 시절의 치기와 무지함을 나이 들어서도 변명과 방어에 급급함에 다름이 아니다. 잘한 건 다 제 탓이고 잘못된 건 남 탓이며 사회 탓이다. 소외계층의 분노를 부추기고 자신들의 잇속을 채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겐 소외계층은 출세를 위한 도구이다. 사사건건 비판적이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 긍정이란 단어를 모른다. 가진 자, 기득권, 미국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싫다. 무조건적인 양분법이다.

미국이라면 쇠고기도 싫고 미군도 싫고 다 싫다. 그러나 자식은 미국에 유학 보내고 시민권을 딴다.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으로 비등하는 반미정서에 편승해 가까스로 대통령에 당선되신 분도 기업인의 검은돈을 받아 자식을 미국에 유학 보내고, 맨해튼이 보이는 고급 주택가에 수십억 원의 호화 주택을 매입한다. 한국의 진보세력의 실체다.

그럴듯한 대학은 다 나오고, 어디든 대학 졸업한 게 특권이다. 대학 졸업은 커녕 구경도 못 해본, 자기들보다 훨씬 못한 처지의 사람들의 분노와 증오, 좌절감을 이용한다. 위장취업 경력을 훈장이나 되는 것처럼 내세운다. 그들이 부추긴 일부 노동자가 아니라 휴일도 없이 묵묵히 일한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오늘의 영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위장취업자의 의도대로 모든 노동자가 파업하고 임금인상 요구하고 정치투쟁하고 그러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나. 휴일도 없이 첫 공일이니 삼 공일이니 한 달에 하루 쉬는 날 기다리며 배고픔을 면하려, 보다 나은 미래를 그리며 묵묵히 일한 그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는 우리나라 여기저기의 공단에서 지금도 힘든 3D 직종에 근무하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동남아 근로자들의 신세가 됐을 터이다. 저임금에 열악한 노동 환경, 임금 체불에 불법입국과 불법체류까지 하는 동남아 근로자들은 아무도 그들을 강제로 한국에 보내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온다. 브로커에게 뒷돈을 주면서까지 온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지금의 고생을 딛고 보다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지금의 인권이나 힘든 일 이런 걸 따지는 게 아니다. 

노무현은 김영삼의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을 통한 12.12와 5.18에 대한 역사 왜곡과 조작을 이어받아 각종 과거사 위원회와 법원의 재심 판결을 통해 수십 년 전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 검거되어 재판을 통해 확정판결을 받은 인혁당, 통혁당, 민청학련, 남민전 등의 간첩 사건 관련자 수천 명을 무더기로 민주화 유공자로 지정하여 국고에서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재심을 통해 무죄로 만든다. 이들은 단지 유신 독재 체제에 대한 반대 투쟁을 했을 뿐이며 반국가 단체를 구성해서 국가 전복을 기도한 적이 없다는 이유다.

반면 노무현 이후 집권한 박근혜, 이명박 우파 정부는 이들 좌파 정권의 역사 왜곡에 대한 도전은 고사하고 오히려 종북 좌파의 눈치를 보고 끌려다니다 종국에는 박근혜 탄핵과 박근혜, 이명박의 감옥행이란 결과를 맞는다. 이는 이들이 우파의 가치를 필사즉생의 각오로 결연히 지키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적화에 일익을 담당한 자업자득, 사필귀정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적화되었으며 적화통일만 남았다는 얘기가 도는 이유이며 윤석열 정부 포함 앞으로의 우파 정부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임진왜란 당시 1597년 9월 16일 울돌목 명량대첩을 앞두고 12척의 전함으로 133척의 왜군을 맞아 이순신은 병사들에게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것이요 요행으로 살기를 바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필사즉생(必死卽生) 필생즉사(必生則死)를 외친다. 박정희의 혁명군이 1961년 5월 16일 새벽 한강 다리를 건널 때 한강 초소를 지키던 초병들이 정지 신호를 외치다 불응하자 일제 사격을 가한다. 혁명군이 멈칫하자 박정희는 빗발치는 총탄 앞으로 나아가며 돌격 명령을 내린다. 혁명군은 일제히 박정희를 따라 진격하고 위세에 눌린 초병들이 흩어져 도망을 간다.

판사, 검사, 변호사, 고위 공무원, 교수 출신의 웰빙족이 즐비한 국민의힘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소신과 명분으로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있는가. 선공후사를 제쳐두고 일신의 안위와 사리사욕을 탐하는 국민의힘은 투쟁력이 부족하며 조금이라도 투쟁력을 보이는 인물이 나와서 민주당의 비판이라도 받으면 가차 없이 자체적인 징계를 통해 투쟁의 싹을 잘라버린다. 좌파 정권에서 통과된 무리한 입법은 기회주의적인 우파 정권에서 바로잡기는커녕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편승해버린다. 기껏해야 일부 개정을 통해 많은 부분의 좌파 입법이 그대로 살아남게 되며 이렇게 누적된 좌파 정권의 입법은 대한민국의 경제와 정체성, 그리고 경쟁력을 무너뜨리고 대한민국을 서서히 적화시킨다.

인혁당 사건이 중앙정보부의 조작이라는 노무현의 과거사위 결론과 달리 당시 서울대 시위를 주도한 김정강은 <자유공론> 1995년 1월호와 1996년 8월호에서 인혁당은 실제로 존재했다고 인혁당 주범 도예종과의 대화 내용에 대해 증언한다.

“그가 1차 인혁당 사건으로 투옥된 도예종과 교도소에서 만났을 때 도예종은 그에게 ‘이번에 검거되기는 했으나 법정 투쟁에 의해서 승리적으로 넘어왔고 당은 노출되지 않았으므로 전략적으로 승리라고 봐야한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당이 재건되면 입당하라고 권유했다는 것이다. 김정강은 그 후 다른 인터뷰에서도 도예종이 형기를 마치고 나가면 전위당을 다시 추진하자고 자신에게 권유했다고 회상하면서 당시 피고인들의 검찰에서의 부인 작전이 성공했다는 점도 증언했다. ‘검사들은 좌파 사건들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 사람들이 일제히 부인하니까 이 사람들이 엉뚱하게 걸려들었구나 하고 착각을 한 거지요. 그래서 검찰 파동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결국에는 조직으로서가 아니고 고무 찬양 조항으로 유죄가 돼서 넘어왔단 말입니다.” (남시욱 <한국 진보세력 연구>)

노무현 정부 당시 2006년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남민전 사건이 용공 조작이라는 증거가 없으며 남민전은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자생적 반 국가단체라는 대법원 판단에 이견이 없다고 발표한다. 친북반국가행위진상규명위원회도 2006년 남민전은 친북 공산 폭력 혁명조직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노무현 정부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 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의 결정을 전문성이 없는 정치 놀음이라고 결론짓고 노무현 정부의 각종 과거사 위원회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를 유린하고 모욕했다고 비판한다. 노무현을 용서하는 것과 미화하는 것은 별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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