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오 2세는 전쟁을 자주 일으킨 잘못에도 불구하고 전임 교황 알렉산데르 6세만큼 평판이 나쁘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 외적을 쫓아낸 업적도 있지만 예술을 사랑하고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후원한데 있지 않나 생각된다. 미켈란젤로, 브라만테, 라파엘로로 하여금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성베드로 성당 등 불후의 명작을 남기게 했다. 알렉산데르를 야만인이라 깔본 것도 그의 부족한 예술에 대한 안목 때문일 것이다. 알렉산데르의 임기동안 예술가들을 후하게 지원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핀투리키오가 그린 자기 가족에 대한 그림 정도다. 반면에 율리오 교황은 예술가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다.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데려와서 인류문화사의 획을 긋는 예술품을 창조하게 했다. 그는 예술을 사랑하는 이탈리아 사람이자 르네상스인이었으며, 예술을 통해 구원을 받았다. 르네상스 정신이 그를 통해 구체화된 것이다. 그가 숙적인 알렉산데르 6세를 앞선 것은 예술분야였다. 

  새 베드로 성당을 시작한 브라만테 
  도나토 다뇰로 브라만테(1444년 ~ 1514년)는 밀라노에서 스포르차 가문을 위해 일하다가 밀라노가 프랑스에게 점령당할 때(1499년)에 로마로 왔다. 브라만테는 율리오 2세로 부터 성베드로 성당을 수선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리를 해서 쓰자는 입장이었다. 왜냐하면 구 베드로 성당은 1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건물로, 수선하고 확장해서 그 옛날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 자체가 역사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샤를마뉴대제 오토대제의 대관식을 거행한 곳이다. 50년 전 니콜라스 5세 교황도 대수선을 계획했었다. 그러나 브라만테가 보기에는 옛 건물은 희망이 없어 보였다. 너무 낡아서 언제 무너질지 걱정이 되었다. 죽은 시체나 다름없어, 치료를 한다고 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브라만테는 성베드로 성당을 다시 짓고 싶었고, 고대 로마의 건축술과 미적 감각을 재현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구성당을 완전히 허물고 다시 건립하자는 제안을 했다. 율리오 교황은 승낙했다. 그러나 돈이 문제였다. 새 성당을 지으려면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었다. 
  마침 율리오 교황이 엄청난 돈을 들여 자기 영묘를 지으려고 하고 있었다. 미켈란젤로가 이 묘지건설을 위해 거대한 대리석을 가져온 상태였다. 중차대한 공공의 목적이 있는데 개인적인 묘지를 위해 재산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영묘건설을 중단시키고, 교황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라파엘로를 데려왔다. 미켈란젤로보다 사근사근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라파엘로에게 교황은 많은 일을 맡겼다. 브라만테의 계획은 성공해서 교황은 당분간 영묘건설을 중단하고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라파엘로에게 바티칸궁의 교황 집무실에 벽화를 그리게 했다. 브라만테는 성베드로 성당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브라만테는 구 베드로 성당을 허물고 새 성당의 설계까지만 하고 죽었다. 설계도 그의 사후에 라파엘로가 수정을 했고 마지막으로 미켈란젤로에 의해 완성되었다. 120년 이상이 걸린 대작이라 오래 산 미켈란젤로에게 영광이 돌아간 것이다. 
  브라만테는 재능 있는 사람을 잘 소개하는 선량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다. 라파엘로 외에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당시 밀라노의 실세이던 루도비코에게 소개하여 그가 밀라노에 정착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추천하지 않으려는 게 인간사의 모습인데, 열심히 인재들을 추천했으니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는 일에만 빠져 돈에 관심이 없었고, 율리오 교황이 그의 생계를 위해 몇 가지 관직을 받으라고 명령했을 정도였다<윌듀런트 문명이야기 5-2>. 
  그래도 브라만테는 죽고 나서 천국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오랫동안 문 앞에서 대기해야했다. 천국 문앞을 지키고 있던 베드로는 “어쩌자고 내 교회를 망가뜨렸나?”고 물었고 브라만테가 “레오 교황이 새 교회를 지어드릴” 거라고 답하자 “성당이 완공될 때까지 천국 문 앞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한다<윌 듀런트, 문명이야기 5-2>. 콘스탄티누스 대제 등의 숨결이 스며있는 오랜 전통의 구 성당을 허문데 대한 비판이 많았던 것 같다. 새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옛 것을 부숴야한다. 창조를 위한 파괴는 전쟁의 신 마르스, 즉 전사교황만이 그러한 결단을 할 수 있다. 베드로는 브라만테가 아니라 율리오 교황을 질책했어야 했다. 

  라파엘로의 낙원 
  라파엘로는 이 세상을 낙원으로 이해한 예술가란 생각이 든다. 본인이 선량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를 빼고는 주위사람들이 다 라파엘로를 좋아했다. 그러니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겠는가. 불교의 삼천 대천 세계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여러 세계가 있고 지옥과 천국이 함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라파엘로는 천국을 살다 간 사람처럼 보인다. 자기가 살던 시대를 찬양했으니…. 
  그의 작품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평온하고 우아하면서도 자연스럽다. ⌜시스티나의 성모⌟에 그려진 성모는 아기 예수의 앞날을 걱정하듯 슬픈 표정을 짓고 있지만 예쁘고 우아하다. 아기는 똘망똘망하고 사랑스럽다. 아기천사들은 앙증맞고, 개구장이 악동같은 모습이다. 여성이 신의 거룩한 어머니나 범접할 수 없는 성스러운 존재이기 보다 아름다움을 지닌 즐거운 여신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숭배가 순결함과 경건함 만큼 소중한 것임을 보여준다. 라파엘로에게서 기독교와 그리스 로마 전통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그는 끊임없이 배우려는 사람이었다. 최초의 스승 페루지노로부터 회화의 기본을 배우고 레오나르도 다비치에게서 구도, 명암, 색조 사용법 등을 받아들였다. 미켈란젤로로부터 인체의 구조나 해부학적 지식 등을 습득했고 원근법 및 휘장의 채색 및 처리 기술은 프라 바르톨로메오에게서 전수받은 것 같다. 어쨌든 라파엘로는 모두에게서 소중한 요소를 스펀지처럼 흡수해서 자기만의 양식에 녹여 넣은 것 같다. T.S 엘리엇이 “천재는 모방하지 않고 훔친다”고 했는데 라파엘로가 그랬다. 
  대표작⌜아테네 학당⌟에서 인간의 이성과 학문의 발전을 그려냈다. 유럽 문화의 기초인 서양 철학과 과학에 기여한 고대학자들을 불러내어 토론회를 열게 했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를 설명하려는 듯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 세계를 중시했기에 땅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 보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아랍어로 번역해 이슬람에 소개한 아랍철학자 아베로에스, 페르시아의 종교 창시자 조로아스터도 있다. 최초의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도 보인다. 
  라파엘로가 이 그림의 설계를 혼자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학자들을 다 이해했을 정도로 체계적인 공부를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율리오 교황과 그의 자문단이 함께 고민했을 것이다. 신학 외에 철학, 법학, 시에 대한 그림까지 그리게 했으니 르네상스 시대의 포용력이 느껴진다. 이점에서 율리오 2세는 진정으로 르네상스를 빛낸 사람이었다. 종교와 이교 학문과의 조화, 여성스러움과 부드러움을 자연스레 화폭에 담은 위대한 예술가를 탄생시켰으니….

  미켈란젤로와 구약세계
  뛰어난 예술가 중에 괴팍한 성격이 많다고 하는데 미켈란젤로가 대표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의 작품에는 온화한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어서 그런지 성모가 아기를 쳐다보지 않는 사랑이 결여된 듯한 조각을 만들었고, 아름다운 풍경이나 포근한 여인들 보다는 무시무시한 최후의 심판을 보여준다. 
  어릴 때 친구와 싸우다 코가 주저앉아 외모에 대한 열등감도 있었던 것 같고, 자신의 재능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거만하게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당연히 그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주위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다. 미켈란젤로는 자기가 살던 시대가 싫었는지 모른다. 초월적인 세계를 꿈꾸었던 것도 이 세상을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 때문이 아니었을까. 메디치 집안에서 폴리치아노로부터 철학을 배워서 그런지 그의 예술은 심각해 보이고 생각하게 한다. 잠시 스쳐가는 순간인지 모르는 현재보다 근본적이고 영원한 것에 끌리게 한다. 성경을 소재로 하더라도 평온한 라파엘로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사람들을 쩔쩔매게 하는 구약의 전지전능하고 무서운 신이 등장하고 피렌체의 수도사 사보나롤라가 이 세상을 소돔과 고모라라고 부르짖는 모습이 연상된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이지만, 신앙심 깊은 중세적 분위기를 풍긴다. 스케일이 어마어마하고 신의 징벌이 느껴진다. 잊고 있었던 천지창조를 일깨우며 인간세상은 신이 창조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던진다. 최후의 심판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한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는 50명의 남자와 소수의 여자들이 나체로 나온다. 모두들 근육질의 강인한 몸으로, 솟구치는 에너지와 기괴한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근육과 인체의 구조 변화를 잘 묘사하는 미켈란젤로의 특기가 주제와 잘 맞아 떨어진다. 일부 사람들이 나체화를 문제 삼았으나 율리오 교황은 개의치 않았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옷을 입지 않았으니…. 교황은 위대한 예술이란 걸 단번에 알아보았다. 미켈란젤로 안에 끓어오르고 있는 예측할 수 없는 신적인 힘이 시스티나 천장에 펼쳐지는 것을 느꼈는지 모른다. 이 작품을 통해 자신도 불멸의 존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까. 교황은 시스티나 천장화가 완성되고 4달 뒤에 죽음을 맞이했다. 

  율리오 2세의 건전 재정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율리오 2세가 이러한 천재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또 수없는 전쟁을 치르면서도 재정을 흑자로 남겼다는 점이다<윌듀런트 문명이야기5-2>. 건전재정을 운영한 것인데, 성직과 면죄부를 많이 팔아 종교 개혁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다만 그 당시의 면죄부와 성직매매는 많은 교황들의 공통된 사항으로 율리오 교황만 비난할 수는 없다. 별다른 업적도 없이 사치스런 운영 때문에 빚을 남긴 교황도 많았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세입실적이 저조해도 세입경정 추경을 하지 않고 최대한 불용액을 활용해서 나라살림을 꾸려가겠다고 선언했다. 맞는 방향이라고 본다. 손쉽게 국채를 발행해서 추경하기 보다는 최대한 기정예산을 아껴 쓰려는 노력이 건전 재정을 향한 첫걸음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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