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8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당원들이 평양 태생으로 대한민국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탈북자인 태영호 의원을 최고위원으로 선택한 것은 한국 정치사의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2천5백만 북한동포들에게 던질 희망의 메시지, 김정은 북한 정권이 느낄 위기의식, 북한인권 개선에 대한 기대감 등을 고려할 때, 태 의원의 여당 지도부 입성은 대한민국이 종북정권의 어두운 그늘을 지워내고 자유 민주주의를 향한 국가 정상화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내년 총선을 앞두고 좌파, 기회주의 언론에 휘둘리는 증도층에 영합하기 위해 4·3 관련 발언 등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태 의원을 사퇴시킴으로써 자유 민주주의에 입각한 국가운영의 정상화를 표방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은 물론 내년 총선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①남한에 정치적 기반이 없는 약자차별

김기현 대표 등 당 지도부의 사퇴압력에 맞서 또다른 징계 대상자인 김재원 최고위원은 10일까지 버티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의 핵심 지지기반인 대구경북(TK)에 비교적 강력한 지역적 연고를 갖고 있다.

결국 남한에 아무런 연고, 정치적 기반이 없는 태영호 의원만 여론재판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원칙을 지키고 약자를 보호해야 할 보편 정당이 해서는 안될 명백한 약자차별이 아닐 수 없다.

자유 민주주의, 법치주의를 수호해야 할 집권여당,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이 보여준 이같은 태도는 당내에 기회주의를 만연시킬 것이다. “원칙과 팩트에 입각한 바른 소리를 해서 좌파나 기회주의 언론에 찍히면 나만 손해”라는 인식이 확산될 수 밖에 없다.

②당에 대한 대통령실 내지 ‘윤핵관’의 부정적 지배력

태영호 의원에 대한 징계사유 중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과의 대화내용은 윤석열 대통령과 핵심 측근, 즉 윤핵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킴으로써 추후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물론 김기현 대표의 리더십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MBC에 의해 폭로된 이진복 수석의 공천관련 발언이 태영호 의원의 해명대로 과장되거나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3·8 전당대회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핵심 측근들의 여당에 대한 부정적 지배력 문제는 여의도 정가는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도 기정사실화 돼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이나 정무수석, 대통령실이 여당의 공천을 좌지우지한다는 인식은 과거 총선을 치르는 집권여당에는 늘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 시절, 2016년 치러진 20대총선 당시 유승민 의원의 공천을 둘러싼 청와대 및 친박의 행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총선패배에 결정적 요인이 되기도 했다.

③북한정권과 종북좌파에게 던져줄 잘못된 메시지

태영호 의원을 ‘눈엣가시’로 여겨온 북한은 이번 일을 계기로 ‘배신자의 비참한 말로’ 운운하면서 목소리를 높일 것이 자명하다.

1962년생, 평양 출신으로 북한의 주영(駐英) 공사라는 고위직 외교관으로 있던 중 2016년 8월 대한민국으로 탈북한 태 의원은 북한 뿐 아니라 남한의 종북좌파들에게 집중적인 공격대상이 됐다.

북한의 지령을 받는 단체나 회원들은 수시로 “살해하겠다”는 협박편지나 이메일 등을 보내는 바람에 예정된 강연이 취소되는 등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문재인 정권의 종전선언 추진을 반대하고 나서자 민주당 국회의원들까지 “북한으로 돌아가라”는 식의 비난과 조롱을 멈추지 않았다.

2020년 8월 태영호 의원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판하자 민주당 문정복 의원은 “변절자의 발악으로 보였다”라고 비난했다. 태 의원에 대한 ‘변절자’라는 표현은 북한과 국내 종북 좌파들이 단골로 사용하던 것이었다.

민주당은 얼마전 태 의원이 자신이 북한에서 들은 바를 근거로 “제주 4·3사건은 북한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자 그의 국회의원직을 박탈하기 위해 국회윤리위원회에 제소하기도 했다.

태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은 일제하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제3자 보상해법을 민주당이 극렬하게 반대하고 나오자 “민주당은 죽창가 부르기 전에 반일 감정에 얽매여 빈곤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북한을 먼저 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치평론가인 홍경의 단국대 객원교수는 “태영호 의원의 여당 지도부 입성은 윤석열 대통령에 의한 정권교체와 자유 민주주의에 입각한 국가운영의 정상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흐름이었는데 이번 일로 제동이 걸리게 됐다”면서 “승리감에 도취된 종북좌파들의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을 향한 공세가 더욱 격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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