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블랙리스트 없다’에 대해선 사과‧해명 한마디도 없어

대법원 특별조사단이 ‘블랙리스트는 없고 형사처벌은 어렵다’는 최종 조사 결과를 내놨지만, 일부 판사들이 불복과 함께 검찰고발까지 거론하고 있다. 좌파 성향의 판사 소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판사들이 중심이 된 이런 움직임에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른바 ‘재판 거래’ 관련자들의 징계 검토 절차에 착수하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31일 오전 9시께 서초동 대법원 출근길에 ‘특별조사단의 보고를 받고 판사들에 대한 징계를 검토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어제 보고서가 정리된 내용으로 제출된 것은 맞다”며 “지금 그 보고서를 기초로 해 결론을 정하기 위해 논의하고 심사숙고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특별조사단은 지난 25일 보고서에서 결국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한 성향, 동향, 재산관계 등을 파악한 내용의 파일들이 존재했음은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뚜렷한 범죄 혐의는 인정되지 않는다”며 “형사상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몇몇 인권법 연구회 소속 판사들은 지난 주말 서울가정법원에 모여 ‘비공개 토론’을 여는 등, 조사단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형사 고발 등의 대책을 계획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들이 제기했던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세 차례에 걸친 조사 끝에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또 다른 의혹인 ‘재판 거래 의혹’이 제기됐고,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에 대한 징계 절차 검토에 들어간 셈이다.

인권법 판사들이 ‘재판 거래’라고 주장하는 문서는 2015년 7월 작성된 ‘현안 관련 말씀 자료’다. 대법원 판결 중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방침에 부합할 만한 자료를 정리해뒀다. 과거사 정립·자유민주주의 수호·국가경제발전 최우선 고려·4대 부문 개혁 중 노동과 개혁 부문 등의 주제로 나뉘어져 있다.

하지만 이를 재판 거래로 간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게 다수 법관들의 지적이다. 오히려 상고법원 추진 등을 위해 청와대 협조가 필요했던 법원행정처가 ‘홍보물’을 만든 것으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앞서 지난 1월, 대법관들은 이와 관련해 이례적으로 전원 공동 성명을 내기도 했다. “청와대 압력으로 대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파기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는 요지였다. 법원이 청와대와 재판을 거래했다는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청와대와 재판을 거래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는 게 다수 법관들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일부 법관들은 재판 거래를 기정사실로 몰아붙이고 있다. 전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고 주장해 시작된 사건이 이제 ‘재판을 거래했다’는 의혹으로 비화한 것이다. 법조계 일각에서 ‘사법부판 ’적폐청산‘이냐’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 부장판사는 “일부 판사들이 마치 정치인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이들은 사법부 신뢰 추락을 부른 무리한 의혹 제기에 대해 반성부터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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