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기·'김정일 상징 의심' 꽃, 촛불시위 묘사작 상위권 입상
우리銀, 대회 심사위원단 공개 거부…문체부와 책임소재 '핑퐁'
신하순 심사위원장, 反 이명박·박근혜 교수 집단행동 적극참여

우리은행(행장 손태승)이 발간한 2018년도 탁상 달력의 '친(親)정부·좌편향' 파문이 은행 스스로 지목한 '우리미술대회'로 번지고 있다. 달력에 실릴 수도 있는 수상작을 고른 미술대회 심사위원단의 정치성향도 덩달아 도마 위에 올랐다.

당초 문제의 달력은 ▲좌파 문재인 정부의 집권 기반인 광화문 촛불시위를 "나라다운 나라"라는 구호와 함께 그려낸 1월 그림 ▲인공기와 붉은 스카프를 한 북한 어린이, 김일성·김정일화(花)와 유사한 꽃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10월 '통일나무' 그림에 의해 논란이 불거졌다. "쑥쑥 우리나라가 자란다"는 제목이 붙은 이 그림들에 대해 '어른의 손길이 들어간 것 같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제22회 우리미술대회 초등부 고학년 '우리은행장 대상' 수상작(왼쪽). 이 그림은 태극기가 '통일나무' 나뭇가지에 가려 잘 안보이는 동시에 인공기가 부각돼 파장을 일으켰다. 붉은 스카프와 단복을 갖춰 입은 북한 어린이를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나무를 둘러싼 꽃 중에 김일성·김정일화(花)와 유사한 꽃이 포함됐다는 지적 등이 잇따르고 있다.(작품은 우리은행 홈페이지 다운로드)
제22회 우리미술대회 초등부 고학년 '우리은행장 대상' 수상작(왼쪽). 이 그림은 태극기가 '통일나무' 나뭇가지에 가려 잘 안보이는 동시에 인공기가 부각돼 파장을 일으켰다. 붉은 스카프와 단복을 갖춰 입은 북한 어린이를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나무를 둘러싼 꽃 중에 김일성·김정일화(花)와 유사한 꽃이 포함됐다는 지적 등이 잇따르고 있다.(작품은 우리은행 홈페이지 다운로드)

 

제22회 우리미술대회 초등부 저학년 금상 수상작. 우리은행 2018년도 탁상 달력 1월 그림으로 실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광화문 광장 촛불시위의 "나라다운 나라"구호와 세월호 노란 리본 깃발, 이순신 장군 동상 등 풍경을 세밀히 묘사했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에 친화적인 작품을 우리은행이 전면에 내세운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작품은 우리은행 홈페이지 다운로드)
제22회 우리미술대회 초등부 저학년 금상 수상작. 우리은행 2018년도 탁상 달력 1월 그림으로 실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광화문 광장 촛불시위의 "나라다운 나라"구호와 세월호 노란 리본 깃발, 이순신 장군 동상 등 풍경을 세밀히 묘사했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에 친화적인 작품을 우리은행이 전면에 내세운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작품은 우리은행 홈페이지 다운로드)

 

문제의 달력 그림은 지난해 12월28일 "민주노총 달력인줄 알았다"는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의 페이스북 공개 제보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김 의원은 10월 그림에 대해 "대한민국과 북한이 같은 뿌리를 가진 동등한 나라인가"라고 지적했다. 이후 거래를 끊겠다는 고객들의 불만이 속출하는가 하면 우리은행을 규탄하는 집회까지 잇따라 열렸다.

이 과정에서 우리은행은 자사명을 걸고 22년째 개최한 '우리미술대회'를 거론, 미술대회 심사위원회가 어린이·청소년 참가자들의 출품작에 시상했고 그 일부를 달력에 실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한술 더 떠 우리미술대회를 "문화체육관광부의 행사"라며 "은행이 후원하는 형식"에 불과하다는 해명이 내부에서 나왔다. 총 4명의 심사위원단 인선도 문체부 측에서 맡은 것이라는 변명도 논란 초기에 나왔었다.

반면 문체부는 입상작 중 최우수 1개 작품에 "장관상을 수여한 것 뿐"이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미술대회의 주체도 아니며, 심사위원단 인선 및 심사 과정에 관여하지도 않는다는 입장을 PenN에 보였다. 추후 우리은행에 심사위원단 구성에 관해 물었지만, "대답할 수 없다"는 답변과 언론 취재·공식 사과 거부 의사만 돌아왔다.

좌편향 달력의 책임 소재를 놓고 은행과 문체부 측이 '핑퐁 게임'을 벌이는 양상이지만, 수상작을 직접 선정한 것은 우리미술대회 심사위원단이라는 것 만큼은 확실해진다. 달력에 게재되지는 않았지만, 자유의 여신상과 촛불집회를 결부시킨 작품이 대회 상위권에 입상(금상)하는 등 논란의 소지를 남기고 있다. 우리미술대회는 본선 진출자 1000명에게 모두 시상하지만 대상(大賞)과 유치부, 초등 저학년과 고학년, 중등부, 고등부 금·은·동상은 총 62명에게만 주어진다.

(왼쪽부터) 제22회 우리미술대회 초등부 고학년 동상, 유치부 금상 수상작. 전자는 국군과 북한 인민군 병사가 부둥켜 안고 눈물지으며 통일을 염원하는 듯한 모습을 정교하게 그렸다. 후자는 자신의 모습을 미국 자유의여신상에 빗댄 그림인데, 발치에 '종이컵 촛불'이 그려져 있고 횃불이 아닌 촛불을 든 듯한 묘사가 이뤄져 있다. 밤하늘의 노란 색은 별이 아닌 '촛불'이며, 탄핵 시위가 벌어지던 광화문 광장을 배경으로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작품들은 우리은행 2018년도 탁상 달력에 실리지는 않았다.(작품은 우리은행 홈페이지 다운로드)
(왼쪽부터) 제22회 우리미술대회 초등부 고학년 동상, 유치부 금상 수상작. 전자는 국군과 북한 인민군 병사가 부둥켜 안고 눈물지으며 통일을 염원하는 듯한 모습을 정교하게 그렸다. 후자는 자신의 모습을 미국 자유의여신상에 빗댄 그림인데, 발치에 '종이컵 촛불'이 그려져 있고 횃불이 아닌 촛불을 든 듯한 묘사가 이뤄져 있다. 밤하늘의 노란 색은 별이 아닌 '촛불'이며, 탄핵 시위가 벌어지던 광화문 광장을 배경으로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작품들은 우리은행 2018년도 탁상 달력에 실리지는 않았다.(작품은 우리은행 홈페이지 다운로드)

 

우리미술대회 심사위원단은 미술대학 교수 등 총 4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심사위원장인 신하순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 교수(미대 부학장) 외 나머지 위원들의 신상은 제대로 알려진 바 없으며, 우리은행도 공개를 거부했다.

신하순 교수는 개인 차원의 정치적 발언이나 작품 활동이 두드러진 적은 없다. 2016년 21차 우리미술대회 심사위원장을 맡았을 때 편향성 의혹이 불거질 만한 작품이 선정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신 교수는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 반(反)정부 성향의 서울대 교수 집단 행동, 전국 미대 교수 집단 행동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우선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인 2008년 1월31일 '한반도 대운하-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학내 토론회에 참석했다. 이 토론회에서 발족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모임'(이하 교수모임)에도 참여했다.  한반도 대운하는 가뭄·홍수피해 해소라는 순기능이 증명됐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좌파진영이 수십년 전부터 계속된 녹조 발생을 놓고 시비를 벌이는 '4대강 정비 사업'의 초기 구상이다.

당시 서울대 교수모임은 김상종 자연대 생명과학부 교수, 김정욱 환경대학원 교수, 송영배 인문대 철학과 교수, 이준구 사회대 경제학부 교수가 공동대표를 맡았고 신 교수 등 80명의 교수가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교수모임은 김종욱 사범대 지리교육과 교수가 공동대표에 추가 합류하는 등 세를 불려 같은해 3월10일 "혹세무민의 '한반도 대운하' 추진 백지화를 요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총 381명의 교수가 이에 서명했다.

교수모임은 성명에서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 ▲반경제적 ▲반환경적 ▲반문화적 ▲반국민적 ▲반민주적 ▲반실용적 ▲반시대적 등 꼬리표를 붙이고, 사업 타당성 검증을 위한 별도의 조사위원회를 꾸려 공개토론을 열자고 요구했다. 또 "우리들은 오로지 진리와 과학의 잣대로 이 문제에 접근할 것임을 다시 한번 천명"한다며 정부 대응을 촉구했다. 신 교수는 이 성명에도 이름을 올렸다. 같은달 30일에 이 교수모임은 "대운하 건설에 관한 정부와 집권 여당의 이중적 행태를 개탄하며, 계획을 공개적으로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거듭 발표했으며 연말까지 자체 홈페이지 등으로 활동을 지속했다. 

현재 우리은행 우리미술대회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하순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 교수는 2008년도 1월 발족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모임'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바 있다. 이 교수모임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성명 발표와 토론회 등을 통해 전면 비난하고, 자체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등 2008년 말까지 활동한 것으로 관찰된다.
현재 우리은행 우리미술대회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하순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 교수는 2008년도 1월 발족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모임'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바 있다. 이 교수모임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성명 발표와 토론회 등을 통해 전면 비난하고, 자체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등 2008년 말까지 활동한 것으로 관찰된다.

신 교수의 집단행동 참여는 박근혜 정부 말기에도 두드러진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초기인 2016년 11월7일 "대통령과 집권당은 헌정 파괴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제목의 학내 발표 및 기자회견에 서울대 교수 728명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이 행사를 두고 서울대저널은 "재적 교수 3분의1 수준으로 개교 이래의 최대 인원의 시국선언 참여"라고 자평했다.

당시 교수들은 "최씨가 대통령의 주요 연설문, 국무회의 자료, 인사 결정 내용 등을 미리 받아 연설문을 사전에 수정하거나 인사에 간여하는 등 국정에 깊숙이 개입한 증거들이 터져 나왔다"며 "현 정권이 단순히 비리와 부정부패에 물든 정도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가장 기본적인 질서마저 유린하고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여당이던 새누리당,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을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자들"로 규정하고 "철저한 수사와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또 "정권 핵심부의 참모습이 벗겨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세월호 참사에서 메르스(MERS) 사태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무능과 책임회피, 거듭되는 거짓말이 어디에서 연유됐는지 따져야 한다"며 ▲개성공단 폐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결정 ▲한·일 위안부 합의를 "위험하고 충동적인 외교안보정책"이라고 규정했다. 노동시장유연화를 위한 노동개혁법안을 "청년세대의 고통을 외면"했다며 비난하고, 조선해운업의 구조적 부실을 "마구잡이 사회경제정책" 탓으로 돌렸다. 좌편향을 바로잡기 위한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까지 지목해 "시대의 흐름과 국민 여론을 거슬러 밀실에서 밀어붙이고 있다"고 폄하하고, 언론 탄압과 통제를 거론했다. "전문가 집단"을 자처하면서 일명 '백남기씨 사망진단서'의 '외인사' 진단 변경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지금 당장 국정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한다"며 "헌정질서 파괴와 각종 부정비리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받으라"고 촉구했다. "헌정 유린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새누리당 지도부는 즉시 총사퇴하라"고,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은 검찰 수뇌부는 모두 교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을 시 "대통령 퇴진운동을 포함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것"이라고도 했다.

서울대 교수 시국선언이 있은 지 약 보름 뒤, 신 교수는 전국 미대 교수들과 함께 박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서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는 전국 50여개 대학 순수미술계열 교수 160여명이 모인 대학미술협의회(대미협) 일원이었다.

대미협은 신 교수를 포함한 79명의 교수가 동참해 11월23일 "이대로는 민주도 예술도 꽃피울 수 없기에…"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표면적으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정유라 이화여대 학사 비리' 의혹을 계기로 삼았다. 

대미협은 "1백만 인파의 촛불을 통해 민심은 준엄하게 표현됐다"며 "이대로는 이 나라의 희망을 더는 논할 수 없기에 나라의 기틀이 쇄신돼야만 한다"고 운을 뗀 뒤 "지난 3년여 동안 박근혜 정부의 무능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대처한 것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오히려 국론분열의 골만 깊게 했을 뿐"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국정농단과 파탄은 교육과 문화예술 분야까지 망라했다"며 "특정인을 위한 특혜와 부정으로 얼룩진 입학과 인사비리는 박근혜 정부의 청년 담론이 얼마나 위선적인 것인가를 여과 없이 보여줬다. 졸속한 대학구조조정의 강행은 그나마 취약한 예술교육의 기반마저 무참하게 무너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나라 문화예술의 지고한 명맥이 일개 국정농단세력의 젯밥으로 전락돼왔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면서 "문화예술을 융성케 해야 할 주무부서 문체부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공작정치의 산실로 스스로를 전락시키고 말았다. 개념조차 허술하기 짝이 없는 창조경제론으로 포장한다 한들 이 모든 패악을 가릴 수는 없다"고 비난했다.

대미협은 박 대통령에게 "국가공동체의 대표로서 자격을 상실했다"며 사퇴를, 문체부와 문화예술위의 사죄를 종용했다. 대학구조조정 중단이라는 요구 사항을 거듭 입에 올리기도 했다. 신 교수가 참여한 일련의 집단행동은 현재 상황을 반추해 보면 '과학과 사실관계, 전문성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적지 않다.

정권교체 이후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의 자축 속에, 신 교수가 이끄는 심사위원단은 "나라다운 나라"가 쓰인 깃발이 펄럭이는 광화문 광장을 묘사한 그림에 후한 상을 주고 '첫 새해 첫 달' 달력 그림으로 싣는 작업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졌을 수 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