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다산초당에 기거하며 
백련사 혜장선사와 초의선사 등과 교유
'불교 혁신운동 거점'으로도 유명 

강진 백련사 대웅보전 전경.[문화재청 제공]
기둥 상부 용머리 조각.

강진 만덕산(408m)에 있는 다산초당과 백련사(白蓮寺)는 우리 사적지에 관심많은 이들에게 '문화유산답사 1번지'다.  
1801년 신유박해로 강진에 유배와 있던 다산 정약용(1762∼1836) 은 유배생활 18년 중 10년동안을 다산초당에 기거하며 야생차밭과 동백나무 숲사이로 난 오솔길을 오가며 초당에서 2km 남짓 떨어진 백련사의 혜장선사와 교유했고, 혜장선사 소개로 '한국의 다성'으로 불리는 해남 대흥사의 초의선사를 만나 제다법을 배우고 함께 다담을 나누었다. 

백련사의 승려들은 다산 정약용과 협업하여 '만덕사지'를 편찬하기도 했다.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27일 다산의 체취가 짙게 배어있는 강진 백련사의 대웅보전을 27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대웅보전은 1760년 화재 이후 1762년에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단층 건물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대웅보전은 공포(栱包, 전통목조건축에서 처마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 상부에 짜 맞추어 올린 부재)의 형식과 초각 (草刻, 건축부재에 다양한 무늬를 새겨서 장식하는 것) 등 세부기법이 화려하고, 기둥 상부의 용머리 조각, 천장 상부의 용머리 장식 등은 해학적이고 섬세하게 표현돼 있다"고 설명했다.  

만덕산 백련사 편액.   '절 사(寺)'자가 아닌 '모일사(社)'자가 쓰였다. 

실내를 채운 여러 마리의 용과 봉황 장식 등은 18세기 이후 불전 건축이 장식화 되는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백련사 대웅보전의 현판 글씨는 조선 후기의 명필 원교 이광사(1705~1777)의 작품이기도 하다. 

백련사는고려말 원묘국사 요세(1163~1245)의 결사처(結社處, 불교의 혁신운동)로도 알려져 있다. 요세는 백련사에서 백련결사문을 주도하여 신앙결사 운동의 이론적 측면을 완성함으로써 지눌의 수선결사와 함께 대표적인 신앙결사의 축을 이루었다. 

만덕산 백련사 편액에서 '사'자가 '절 사(寺)'자가 아닌 '모일사(社)'로 쓰인 것도 그같은 연유에서 기원한다. 

이경택 기자 kt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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