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홍콩에서 중국의 '국가보안법'이 시행되면서 홍콩의 중국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중국 정부의 한 관리가 16일 홍콩 입법회(의회)에서 한 연설이 일국양제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의 샤바오룽 주임은 16일 홍콩 입법회에서 연설하던 도중 "반대를 민주주의로 착각하지 말라"라고 말했다고 더스탠더드,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홍콩 언론이 17일 전했다.
중국 중앙 정부 관리가 홍콩 입법회를 방문해 연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샤 주임이 연설한 행사는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입법회 의원 89명 중 80명 이상이 참여했다.
샤 주임은 이 자리에서 위의 발언과 궤를 같이 하는 "민주주의는 반대 의견 제기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반대의견의 존재가 질적 민주주의와 동일하지 않다" "시위는 유일한 의견 표현법이 아니다" 등의 발언을 했다.
이는 2010년대 홍콩에서 중국에 반대하는 시위가 대규모로 일어났던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홍콩 입법회 청사는 2019년 6월 송환법으로도 불리는 '범죄인 인도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의해 점거된 바 있다.
당시 시위대는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청사 건물 벽에 "중국 공산당 타도"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 등 반중국 정서가 담긴 구호를 걸었다.
반정부 시위는 이후 6개월 넘게 계속됐고, 중국 정부는 이를 계기로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중국 정부는 이에 더해 자신들이 규정하는 '애국자'만이 입법회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홍콩 선거제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기도 했다.
그 결과는 홍콩 입법회의 '거수기화'였다. 이날 비공개 행사에 대다수가 참석한 것 역시 거수기로 전락해버린 입법회의 실상을 드러낸단 지적이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샤 주임은 참석한 의원들에게 정부 행정을 지원하라고 사실상의 지시를 내렸으며, 필리버스터(합법적인 의사 진행 방해)를 삼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타협 가능한 민주주의"의 예로 중국을 들었고, "서양 민주주에도 단점이 있기에 외국 시스템을 그대로 따라해서는 안 되며, 홍콩은 자신의 길을 탐색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에 대한 입법회의 반응 역시 중국의 입장에서 '애국적'이다.
앤드루 렁 홍콩 입법회 주석은 "중앙 정부 지도자가 입법회를 찾아 의원들과 소통한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며 "홍콩국가보안법과 '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린다(愛國者治港)'는 원칙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못했을 일"이라 말했다.
샤 주임은 지난 13일부터 엿새간 홍콩 시찰 중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발간된 대만 백서에서도 홍콩에 선제적으로 시행된 일국양제가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샤 주임의 발언에서 보듯 일국양제는 공산당 일당독재체제에 완전 편입하기 전 일시적으로 실시하는 유예 체제라고 봐도 무관하단 평가다.
중국공산당이 보기엔 '성공적'일지 몰라도, 이미 자유 민주주의를 경험한 시민들에겐 자유가 억압되어가는 예속의 과정이란 것이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 압박이 지속되는 가운데 샤 주임이 당당하게 홍콩 입법회에서 행한 연설이 중국의 노예로 전락한 홍콩의 현실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