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새 대표로 선출된 송영길 의원(가운데)이 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경쟁했던 우원식(왼쪽), 홍영표 의원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1.5.2

정치권에서 또하나의 후진국형 사고가 터졌다.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사건이다. 이름만 들어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14일 검찰수사결과 드러난 사실은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송영길 당대표 후보 캠프 관계자 9명이 당내 인사 40여명에게 현금 9400만원을 뿌린 정황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①돈 뿌린 사람들,무슨 이권관계 얽혔길래...

우선 돈을 뿌린 사람들의 후진국적 행동이 단연 눈에 뛴다. 의리를 위해 돈을 조달하는 전형적인 옛날 정치권 방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 따르면 현재까지 이 사건 관련 피의자로 입건된 사람은 9명이다.윤관석,이성만 의원,강래구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조택상 전 인천시 정무부시장,송영길 전 대표의 보좌관 박모씨.강모 전 대전 구의원,민주당 관계자 강모씨와 허모씨 등이다.

대부분 송영길 전 대표의 측근들이라고 한다.

의원들이 돈을 서로 주고받는 행위는 관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게 여의도의 상식이다.출판기념회를 하거나 무슨 행사나 선거 등에서 격려금이나 후원금을 돌리는 경우가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주목되는 것은 주변 인물들이다.정치권 주변 인물들이 돈을 마련하고 뿌리는 걸 주도하는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검찰이 확보한 녹음파일에는 강래구씨가 이정근씨에게 "관석이 형이 의원들을 좀 줘야 되는것 아니냐고 얘기해서 고민하고 있다.필요하면 돈이 최고 쉬운 건데..."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그리고 사흘뒤 강씨가 "윤관석 만나서 그거 줬고 봉투 10개로 만들었더만"이라고 했다.또 다음날 윤의원이 "다섯명이 빠졌다"고 하자 이씨가 "모자라면 채워야지.무조건 하는 김에 다 해야지"라고 답하는 대목이 나온다고 한다.

검찰에 따르면 강래구씨는 두차례에 걸쳐 3000만원씩 모두 6000만원을 지인을 통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수자원공사 감사가 이런 일을 하는 자리냐는 의문을 갖게된다.민주당 정권은 통상 공기업 감사에 정치권 인사를 유난히 많이 앉혔다.결국 이들 공기업 감사가 하는 일이 정치권에 돈을 조달하는 일이라는게 드러난 셈이다.

자리를 줬으면 보은해야 한다는 논리대로 일까.이번 사건에서도 자금 조달은 강래구씨가 주도적으로 하는 것으로 나온다.강씨는 이후 지인을 통해 3000만원을 더 만들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수자원공사 감사가 매관매직을 위한 통로로 쓰였다고 볼수 밖에 없을 것이다.

조택상 전 인천시 정무부시장도 지인을 통해 현금 1000만원을 조달한 것으로 나타났다.정무부시장이라는 자리도 민주당 정권에선 정치권 인사들이 들어간 것인데,돈살포 사건에서 이런 식으로 '역할'을 하는 셈이다.

②돈 받은 의원들의 수준도 한심

돈 살포가 이뤄진 2021년 전당대회는 송영길 후보와 친문 홍영표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보였다.당시 대의원,권리당원 투표와 당원,국민 여론조사 합산 결과 송후보가 득표율 35.60%로 1위에 올랐으나,2위를 한 홍영표 의원의 득표율 35.01%와 불과 0.59% 포인트 차이였다고 한다.

선거 초반만 해도 송영길 후보가 우세했다고 알려졌지만 친문계 지지를 받는 홍영표의원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었다.실제 최고위원 5명은 모두 친문 후보들이 당선됐다. 당시 민주당에서는 선거일이 며칠만 뒤였어도 송영길 후보가 낙선했을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홍영표의원의 추격세가 그만큼 강렬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정황이 사실이라면,결국 민주당 현역의원이나 대의원들도 돈 살포의 영향권에서 떳떳하다고 할수 있겠냐는 의심을 받게될 처지이다.송영길 후보 캠프의 이같은 적극적인 노력의 결과 친문후보에게 역전당하지 않고 당 대표를 거머질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당의 선거가 아직도 이같은 수준이라는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평가이다.

③한국 정치의 후진국성...언제까지

이번 전당대회 돈살포 사건의 가장 큰 충격은 우리 정치에 여전히 돈이 개입돼 있다는 게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우리 정치는 돈 문제로 여러번 홍역을 앓았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비자금으로 퇴임후 구속까지 당했다.

이회창 후보는 대기업으로부터 돈 받은 사건이 터져 결국 정치권을 영원히 떠나게 되는 빌미를 줬다.당시 보수당은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썻고,천막당사 시대를 열게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선거때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고,나중에 같은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은 문제때문에 검찰수사까지 받게 됐다.

정치권에서 한동안 돈의 흔적이 사라진 듯 했으나 최근 몇차례 선거를 통해 되살아났다는게 여의도의 분석이다.이명박,박근혜 두 후보의 경쟁이 한창일때 서로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를 공약하면서 공천에서도 돈이 사라져 갔다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하지만 오히려 여의도에 제왕적 당 대표시대가 저물고,누구나 당대표가 될수 있는 시대로 넘어가면서 돈봉투가 되살아나게 됐다는 것이다.

최진녕 변호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50년이상 후퇴된게 아닌가 싶다"면서 "50년대 고무신, 막걸리 선거 얘기있었는데 금권선거가 2021년까지 있었다니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최 변호사는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인지 더불어금권당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번 검찰수사는 이정근씨 관련 수사를 하다가 나온 녹취록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여기서 노웅래 의원의 6000만원 뇌물수수 사건도 불거졌다.정치권이 싸울 일이 아니다.뒤늦게라도 밝혀진 이번 돈봉투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이 깨끗해지는 출발점으로 삼기를 국민들은 바랄 것이다.

장정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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