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7일 광저우 쑨원 대학에서 강연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주 3일 간 중국 방문 과정에서 '유럽 독자노선' '반미' 취지의 발언을 해 같은 서방 진영 내에서 뭇매를 맞고 있다. 한국의 일부 친야 매체에선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을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간자적 위치를 취해야 할 근거로 삼았지만, 그가 왜 이런 발언을 했고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고찰은 보이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최근 프랑스 내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즉 연금개혁 등으로 2018년 이후 대통령 지지율이 최저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스트롱맨(strong man)'으로 보일 필요가 있었단 분석이다.

지난달 19일(현지시각) 프랑스여론연구소(lfop)가 주간 르주르날뒤디망슈(JDD)의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직전 조사보다 4%p만큼 하락한 28%였다. 이는 지난 2018년 노란 조끼 시위 등으로 역대 최저치였던 23%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지지도다.

이렇듯 악화된 프랑스 내부의 여론을 '유럽 리더'로서의 마크롱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만회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단 지적이다.

또 프랑스행 비행기에서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프랑스 경제전문매체 레제코 등과 인터뷰 중 했던 "두렵다고 우리가 미국의 '봉신'일 뿐이라고 여겨선 안 된다" "유럽은 미국 의존도를 줄여 대만 관련 미중 대립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발언에서도 그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단 분석도 나온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이 'vassal'이란 단어를 언급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단어는 다른 언론들에서는 '추종자' '속국' 등으로 번역됐지만, 본래 역사적 의미로는 '봉신'이다. 봉신은 중세 유럽 봉건주의 체제에서 군주나 영주에게서 토지를 부여받은 대신 여러 의무를 져야 했던 신하를 의미한다. 의무 중 가장 중요했던 것은 당연하게도 '군사적 의무'였다.

'봉신'의 뜻을 알게 되면 마크롱 대통령이 왜 이 단어를 사용했는지를 알 수 있다. 프랑스가 미국의 봉신이란 과격한 주장을 함으로써 혁명을 통해 구체제를 혁파한 후 공화국을 건설했고, 한때 영국과 더불어 유이했던 식민제국을 건설했던 프랑스인의 자부심에 상처를 내기 위함이다. 국내적으로는 봉건제를 없앴을지 몰라도 국제체제에선 프랑스가 미국의 '봉신' 신세라는 점을 각인시키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 말고는 마크롱 대통령의 돌출 발언을 해석할 길이 없다. 그는 평소 나토 및 유럽 연합의 집단 안보를 강조해왔으며, 만약 미국이 고립 노선을 택한다면 유럽이 독자적인 안보 태세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런데 조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전 행정부와 달리 세계 경찰이라는 미국의 의무를 방기하거나 고립 노선을 취하겠단 행보를 한 바가 없다. 마크롱 대통령이 전혀 맥락 없이 '탈미국화'를 선언한 셈이다.

이에 더해 마크롱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가 "우리 일이 아닌 위기"라고 했던 것도 급변하는 세계 질서에 대한 고찰 없는 어리석은 발언이란 평가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에 맞서 '신(新) 밀월' 관계에 접어들었다. 이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면 이에 고무된 중국이 근시일 내 대만 침공을 단행했을 것이란 분석은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단순히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졌다고 해서 프랑스와 대만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은 유엔 상임이사국이자 한때 세계를 주도했던 프랑스의 지도자로서 할 말은 아닌 것이다.

이렇듯 다소 뜬금없는 야망을 드러냈다 곤욕을 치르고 있는 마크롱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각) '대만과의 거리두기' 발언에 대해선 진화에 나서면서도 '유럽 독자노선'에 대해선 재차 강조하는 모양새다.

그는 네덜란드 국빈 방문 중 "대만에 대한 프랑스와 유럽연합의 입장은 동일하다"면서 "(대만의) 현 상태를 지지하며 이 정책은 지속적이고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미국과의) 동맹이 곧 '봉신'은 아니다"라며 "동맹이 된다는 것이 우리 스스로 생각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라면서도 중국에 대한 접근법은 다르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의 '개방된 인도·태평양 정책'의 비전은 함께 공유한다고도 했다. 말그대로 '모순'의 말잔치를 벌인 셈이다.

이에 대해 대만에서는 '마크롱이 중국에서 한 발언으로 인해 우려가 야기됐다'며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의 분열로 인해 시진핑의 공격 개시 결정이 가속화될 수 있다'란 지적이 나오는 형편이다.

프랑스인들 혹은 유럽인들에게 일견 매력적일 수 있는 마크롱 대통령의 주장은 다른 나토·유럽연합 국가들, 더 나아가 미국의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이 보기에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갈 지(之)'자식 주장이란 비판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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