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부터 사흘간 중국을 방문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사흘간의 중국 방문에서 '유럽 독자노선'을 표명하자 끈금없이 한국의 좌파가 환호하며 그를 치켜세우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만의 안보를 한국의 안보와 '동일시'함으로써 한국을 미·중 갈등의 격랑으로 쓸데없이 끌어들인다는 자신들의 주장에 논거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좌파의 마크롱 '과대평가'는 프랑스와는 전혀 다른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안보환경 등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일차원적 시각에서 비롯됐단 지적이다. 또한 마크롱 대통령이 자신이 중국에서 한 말로 인해 서방에서 사실상 '왕따'가 돼 가고 있단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친야 성향 온라인 매체 민들레는 11일 "마크롱 '두렵다고 미국 추종 안돼···윤석열과 대조'란 제목의 분석 기사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두렵다고 우리가 미국 추종자일 뿐이라고 여겨선 안 된다" "유럽은 미국 의존도를 줄여 대만 관련 미·중 대립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등의 발언을 집중 조명하며 그를 미국 속국화에서 유럽을 구원할 '영웅' 쯤으로 추켜세웠다.

민들레는 그러면서 중국을 미국과 동등한 수준의 '세계 제2대 초강대국'이라 평가했다. 하지만 대영제국·미국·소련 정도만이 '초강대국(superpower)'의 반열에 올랐다는 게 역사학·국제정치학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최근 중국이 급격한 경제적·군사적 성장을 이루고 있긴 하지만,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초강대국이 됐다고는 여전히 말하기 힘든 상황이다.

민들레가 이렇게 중국을 띄워주는 이유는 윤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민들레는 "한마디로 유럽이 제 발등에 떨어진 우르라이나 위기를 해결할 능력도 없으면서 대만 위기까지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주제를 넘는다는 게 마크롱 생각"이라며 "이 대목에선 마크롱이 딱히 이해관계가 없는데도 대만 문제에 끼어들어 대중국 리스크만 키워가는 윤석열 정부에게 (하는) 쓴소리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라고 비꼬았다.

즉 '윤 대통령이 대만 문제에 쓸데없이 개입해 초강대국 중국의 심기를 건드려 한국·한반도의 안보를 자해하고 있다'는 게 만들레의 주장이다.

민들레가 이렇게 보는 근거는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한국판 인도·태평양 보고서와 지난 2월 박진 외교부 장관이 CNN과의 인터뷰 등에서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극히 중요'하며, 지역 전체의 안정과 번영에 필수적 요소"라고 언급한 것 등이다. 

하지만 박 장관의 발언은 대만·중국 중 어느 한쪽을 편든 것이 아니라, 원론적 입장을 표명한 것에 불과하다. 또 한국판 인도·태평양 보고서에서 "주요 해상 교통로인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 항행 및 상공비행의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며 "아울러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중요하다"라고 한 것 역시 한국이 할 수 있는 가장 원론적이고 기본적인 언급이란 지적이다. 

한국판 인도·태평양 보고서는 "남중국해는 우리나라 원유 수송의 약 64%와 천연가스 수송의 약 46%를 차지하는 핵심 해상 교통로"라 설명하고 있다. 즉 한국에게 있어 대만이 포함된 남중국해 수송로는 생명선과도 같다. 이 생명선을 지키기 위해서 이상의 원론적 입장마저 표명하지 못할 이유가 어딨느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국력이 강해진 중국은 이미 주변국을 외교적으로 업신여기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만일 이들이 대만을 통일하고 남중국해 수송로를 완전히 장악하면 얼마나 더 고압적으로 변할 것인지에 대해 민들레는 생각이나 하고 있냔 지적도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민들레가 문재인 전 대통령 시기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수용하기로 했던 것은 알고는 있느냐고 비판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개방성, 포용성, 투명성이라는 역내 협력 원칙에 따라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간 조화로운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었다.

당시 청와대는 이로 인해 중국과의 갈등이 불가피해질 수 있단 지적이 나오자 "어떤 지역구상과도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지만, 이로 인해 한국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을 무시하는 기회주의적·회색분자적 태도란 비판을 받았다. 또 외교에 있어 철학이 있냐는 지적까지 나왔었다. 미중 대립이 격화되지 않았던 시기이기에 가능했던 '안미경중(안보는 미국과 협력하고 경제는 중국과 협력한다)' 스탠스일 수 있었겠지만, 신냉전으로 바뀌어버린 현재는 블루팀과 레드팀 사이에서 박쥐 행세를 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중국과 지정학적으로 거리가 먼 프랑스는 샤를 드골 대통령 때부터 시작됐던 반미 전통에 힘입어, 또 '프랑코포니(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의 모임)'의 종주국이자 제국주의 식민 모국이라는 영광스러운 과거에 힘입어 제3의 길을 모색할 수 있을지 모른다. 또 프랑스는 5개 상임이사국 중 하나이기도 할 만큼 외교적 지위가 높은 강대국이다.

하지만 한국은 '프랑코포니'와 같은 독자적 세력권이 있지 않으며, 강대국도 아닌 지역 강국에 불과하다. 명실공히 강대국인 중국은 대만 다음의 목표로 한국을 상정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는 중국 수도 베이징으로 곧장 육로 진격할 수 있는 거점이며, 제1도련선 내에 있어 중국이 태평양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영향권 안으로 포함시켜야 할 외국이다. 민들레는 이러한 한국의 안보 현실을 전혀 현실적으로 보고 있지 못하단 지적이다.

민들레는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이 엄청나게 영향력을 발휘해 서방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EU 탈퇴국인 영국을 비롯해 독일 등 EU 국가들에서도 "마크롱 대통령이 시진핑 선전전에 사용됐을 뿐이다" "외교적 참사" "완전한 재앙" "망상"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나토 수장국으로서 유럽의 안보를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미국의 분노와 분개는 말할 것도 없다. 마코 루비오 미국 연방 상원의원은 10일(현지시각) 마크롱 대통령이 유럽 전체를 대변했다면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유럽이 대만 문제에 그런 입장을 취한다면) 우리는 중국이 제기하는 위협과 대만 문제에 집중하고,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당신네들이 알아서 해야 할 것"이라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즉 이빨빠진 호랑이인 옛 유럽 강대국들끼리 알아서 유럽 안보를 책임져보란 것이다.

프랑스의 괴상한 '청개구리' 정신은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았음이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확인된다. 이는 제국주의 시기부터 대영제국에 밀려 만년 2등을 했던 프랑스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일 수 있다. 또 프랑스는 세계가 냉전 시기로 접어들고부터는 자유진영에서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앵글로색슨 국가들로부터 소외를 당해 또 2등 지위에 머물렀다. 이러한 가운데 독자 노선을 외치지만 결국엔 미국의 뜻에 다를 수밖에 없던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도 마크롱 대통령이 제3의 길을 외쳤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그칠 확률이 높단 평가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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