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근찬 교수]김용선 前 LG인화원 원장-“한국은 ‘재벌 2세’의 사회”
[기고/문근찬 교수]김용선 前 LG인화원 원장-“한국은 ‘재벌 2세’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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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젊은이 전체가 '자신이 잘나서인 것처럼 믿는' 재벌 2세
문근찬 숭실사이버대 교수
문근찬 숭실사이버대 교수

아래 인용한 글은 고 김용선 前 LG 인화원 원장의 수상록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들’의 150~156쪽 내용이다. 김 원장은 내가 다니던 전 직장의 사장이셨는데, 나에게는 직장 상사라기보다는 인생의 멘토(mentor)로서 존경하고 따르던 분이다. 말년에 그분은 매달 한두 번씩 우리 인생 후배에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 주시는 것을 보람으로 생각하셨었다. 김 원장은 자기 생각을 누구에게 강요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냥 이런 점을 생각해 봤느냐는 식이라, 어쩌면 현대판 소크라테스 화법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으며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이분이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나 감을 못 잡는 청중이 많았었다. 물론 누구나 후배로서 그분 앞에서는 말귀를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거리며 경청하는 모양새를 잡긴 했지만, 언젠가 슬쩍 그분이 귀 뜸을 하길, 본인의 이야기를 누가 알아듣고, 누가 못 알아듣는지 그냥 알게 된다고 하셔서 웃은 적이 있다. 참고로 나는 말귀를 알아듣는 후배에 속했는지, 그분의 유고를 어떤 식으로 사용하든 좋은 목적을 위해 사용한다면 인용을 하든 어떻게 사용하든 마음대로 쓰라고 허락을 해 주셨었다.

김 원장의 수상록은 그분을 존경하던 우리들 후배 중의 한 사람이 헌정 출판을 했는데, 경험 부족으로 자비출판 형식이 되었기 때문에 시중에서 판매되지 않는다. 요즘 같이 어수선한 세월에 많은 깨우침을 주는 수상록이라 좀 더 많이 읽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일이다. 이 글은 오늘날 쟁점이 되고 있는 ‘재벌 2세의 갑질’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혜안을 주므로, 좀 긴 글이지만 일독을 권한다.

『 제목: 글로벌 관점에서 본 ‘재벌 2세’ – 두 사람의 대화

A(29세 석사학위 소유, 잘 나가는 회사에 근무 중)

B(일제 통치, 해방, 미 군정, 정부 수립을 목격하고, 6.25 전쟁, 4.19, 5.16 그리고 그 뒤의 모든 정치적 소용돌이와 산업화 과정을 경험하고 참여함) (김용선 원장 본인)

B: 내가 “오늘의 한국 사회는 재벌 2세 사회다”라고 말한다면 젊은이는 어떻게 생각하나?

A: 나이 많은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처음 듣습니다. 실례지만 ‘보수 꼴통’이신 줄로 알았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놀랐습니다. 정말 꼴불견입니다. 재벌들이 한국경제를 쥐고 흔드는 것도 참고 볼 수가 없는데, 돈 자랑만 아니라, 입사시험도 안 치고 들어와서는 금세 부장이다 상무다 고속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직무지시까지 하니, 우연히 부잣집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잘난 척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사태를 방치하는 것 자체가 사회정의에 어긋나며,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은 계급사회가 되어 국제경쟁력을 잃게 됩니다. 분명히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무슨 조처가 있어야 합니다.

B: 그렇지만 옛날과 달리, 한국기업도 세계적인 위치에 올랐기 때문에 자식이라고 자격 없는 사람을 중요한 자리에 앉혔다가는 기업이 망한다네. 그래서 자식이라 할지라도 필요한 수준의 교육훈련은 다 마치고 있다네.

A: 바로 그겁니다. 그런 높은 수준의 교육훈련은 돈 없는 집 아이들은 받을 수가 없으니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계급사회가 고정화되는 것입니다.

B: 젊은이들의 그런 감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네. 나 자신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으니까. 오늘은 좀 더 색다른 접근방법으로 이 문제를 생각해보기로 하지. 논의를 위해서 우선 재벌 2세의 정의(定義)가 필요한데, 이런 건 어떨까?

1. 자신의 능력, 노력과는 아무 관계 없이, 우연히 부잣집에 태어나,

2. 경제적으로 풍요를 누리며, 우아한 일상생활이 보장되고,

3. 돈이 많이 드는 선진적 교육을 받을 수 있어서 스스로 특권을 계속 유지·강화하면서,

4. 그것을 마치 자기 자신이 잘나서인 것처럼 믿고 행동한다.

5. 가끔, 작은 소리로 “우리 아버지 영어 발음은 좀 그래.” 하는 식으로 자신의 국제적·현대적 교양(?)을 은근히 자랑한다.

A: 학술적 정의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재미있군요. 계속하시지요.

B: 내 생각으로는 오늘날의 한국은 ‘재벌 2세 사회’가 틀림 없어.

A: 그렇습니다. 지금 그 재벌 2세들이 설쳐 대서 나라와 사회를 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B: 맞네, 그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네. 그런데 지금 내가 말하는 ‘재벌 2세’는 당신네가 말하는 ‘그들’이 아니라 당신네들 자신이야. 한국의 젊은이 전체가 ‘재벌 2세’라네.

A: 아니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그런 부잣집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학교도 아르바이트해가며 겨우 졸업했고, 회사 대주주와의 혈연관계도 전혀 없으니, 누구처럼 고속승진도 바랄 수 없습니다. 뭘 잘못 아신 것 같습니다.

B: 요즘 유행하는 말로 글로벌하게 보면 우리의 젊은 세대는 아니 어쩌면 한국사람 전부가 재벌 2세로 보인다는 뜻이야, ‘글로벌한 관점에서 본 ‘재벌 2세’.

A: 처음 듣는 말입니다. 도대체 글로벌 관점에서 본 재벌 2세’란 무엇입니까?

B: 우선, 젊은이 나이가 몇이지요. 군대는 다녀왔지요?

A: 대학원 마치고 군대 갔다 와서, 입사 3년째, 29세입니다.

B: 세계 각처에는 아직도 빈곤과 정치적 혼란에 시달리는 나라가 전체의 반을 넘는데, 그런 나라에서 태어나, 그 나라의 대학(원)을 나온, 당신과 같은 나이의 청년과 당신 자신을 비교해 본 일이 있나요? 그 청년(X)이 한국의 당신(Z)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해 보는 것이 어떨까? 내 추측으로는 틀림없이 다음과 같은 생각일 거야. “한국의 청년(Z)은 내 월급의 몇 배를 받고 있다. 취직하고 몇 년 지나면, 할부이기는 해도 자기 자동차도 한 대 살 것이고, 결혼하면 신혼여행은 하와이에 간다나. 내가 직접 만나 보았지만 Z는 우연히 한국에서 태어났을 뿐, 별로 대단치 않은 인물이다. 내(X)가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Z보다 훨씬 출세했을 거다. 지금, 객관적으로 보아서 Z의 능력이 나(X)보다 높다면, 그것은 Z가 우리나라 대학보다 훨씬 우수한 한국의 대학을 나왔기 때문이지 Z 자신이 나(X)보다 잘 나서가 아니다. 이 나라에서는 미국 유학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지만, 한국에서는 어중이떠중이가 다 미국유학을 간다고 한다. 이렇게 하다가는 X와 Z 개인 간의 격차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한국과의 격차는 계속 벌어질 뿐이다. 이런 상태를 방관만 할 것인가? 인도주의적 견지에서나 만민평등의 정신으로 보아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

6·25전쟁 때 이 땅에 많은 미군 병사가 왔었는데, 그중에는 훌륭한 사람도 몇몇 있었으며, 대부분은 보통이었으나, 형편없는 수준의 병사도 꽤 볼 수 있었지. 그러나 그렇게 질 낮은 사람도 당연히 미국 국민으로서의 대우를 받았으니 우리 한국 사람과는 비교가 안 됐지. 그때 생각했지. 내가 미국에 태어나, 미국학교를 다녔으면, 저 녀석보다는 훨씬 훌륭하게 되었을 것이 틀림없는데 하고, 하느님을 원망했지만, 우리와 그들과의 격차는 엄연한 현실이었고 해결책은 없었다네. 전시 하에서의 처우 차이는 식료품 지급에서의 불공평 정도가 아니야. 그들은 강력한 엔진이 달린 GMC - 그 당시 한국 사람들은 미군 트럭을 다 GMC라 불렀다. Ford고 Chrysler고 다 GMC였다. 후에 복사기면 모두 Xerox였던 것처럼 – 트럭을 타지만, 우리는 보통 걸어 다녀야 했고 어쩌다 얻어 타게 되어도 깡통을 펴서 만든 것 같은 보디에 언덕도 제대로 못 올라가는 엔진을 얹힌 빈약한 일제 Isuzu 화물자동차를 탔다네.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믿는 사람이 없겠지만, 50년대 초 미군이 일본에서 사다가 우리에게 준 일제 자동차는 그런 수준이었지. 빈약한 차를 타는 것이 ‘차별대우’라고 분개한다면 정말 ‘사치스러운’ 소리야. ‘대우’가 아니라 ‘생사’를 가름하는 중대한 일이라네. 그런 차로 산 언덕을 올라가다 적의 습격을 받았을 때, 철판이 두껍고 강력한 엔진이 달린 차를 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차를 탄 사람의 생존 확률은 물을 필요도 없겠지. 불공평, 불평의 수준이 아닌 ‘생사 분간’의 수준이라네.

한국 젊은이들이 ‘학교’를 다녀 ‘지식’은 많아진 것 같이 보이나, 예를 들어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단어만 해도 시험, 또는 자랑을 위한 지식일 뿐, 실생활에서 전혀 활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말에 놀라는 것이라네. 요사이 글로벌(global)이라는 말이 유행이어서, 외국 유학도 가고, 무역도 많이 하지만, 그것들을 자랑만 하고 있지, 사고는 완전히 한반도 안에 한정되어 있어서, ‘재벌 2세’라 하면 한국의 모모 특정 2세밖에 생각이 미치지 않는 거야. 글로벌이 되려면 먼저 사고의 범위와 그 방식이 세계화되어 있어야 한다네.

또 한가지 추가하면, 상상력의 부족, 아니 결여를 지적하고 싶다네. 이성보다 감성이 더 중요하며, 우리 문화의 특징은 ‘정’이라고 주장하는데,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무관심하고, 상상력도 호기심도 없는 사람들의 감성으로 무슨 대단한 예술이 탄생할 것인지?

가난한 사람을 돕는 봉사활동이 학점에 반영된다고 야단이지만 그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각도, 상상도 해 본 일이 없다면, 그 요란한 봉사란 어떤 의미와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고, 남들이 한다니까 유행에 안 떨어지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 내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답을 얻을 수가 없다네. 이성이고 감성이고 예술이고 이전에 우선 생각을 해야지. 지금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언행을 보면 자기가 생각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말을 복창하고 있는 완전한 ‘정신적 노예’로 밖에 안 보인다네.

내가 회사에 다닐 때 젊은 사람들에게 하던 말이 있네. “생각을 안 하려면 그 무거운 머리 – 사실은 대갈통이라고 말해 주었지 – 는 왜 달고 나오나. 내일부터는 집에 두고 와. 월급은 안 깎을게.”

그 정도 심한 모욕을 들으면 화가 나서 회사를 그만둘 것 같은데, 그때 사표를 낸 사람은 하나도 없다네. 그런 말이 큰 모욕이라는 사실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고, 스스로 생각해 내는 능력도 없으니 그런 것 아니겠나?

내친김에 한마디 더 하지. 나 같은 사람은 지난 몇십 년간의 우리나라 정권 담당자들이 전부 ‘재벌 2세’처럼 보인다네. 조상(전임자)들이 만들어 놓은 돈 많은 나라를 이어받아, 흥청망청, 복지다, 인권이다, 생색을 하면서 한쪽으로는 전임자를 비난하고 있으니, 이쯤 말하면 우리사회가 ‘재벌 2세 사회’라는 것이 납득이 되겠지. 그런데 지금의 재벌 2세는 은근히 부모의 무식을 흉보기는 해도 비난까지는 안 하는 것과 비교하면, 요새 정치한다는 사람들은 재벌 2세보다 못한 사람처럼 보인다네. 자기 머리로, 그리고 글로벌하게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야 해요. 』

이 글을 다시 읽으며 문득 깨달은 사실은, 우리 사회가 그토록 분노해 마지않는 ‘재벌2세의 갑질’이라는 것이 사실은 “우리 모두가 다 ‘재벌 2세’인데 어디라고 갑질이냐?”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는 모두가 재벌 2세인 사회가 된 것이다. 따라서 누가 누구에게 갑질하는 것인지도 헷갈린다.

문근찬 숭실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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