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매스터 자서전에 나온 리커창 발언,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뒤늦게 화제

허버트 레이몬드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군사안보보좌관의 저서 '배틀그라운드'. [사진=박준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백악관 군사안보보좌관을 역임했던 허버트 레이몬드 맥매스터(H.R. 맥매스터) 예비역 중장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지난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당시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의 발언을 소개했다. 리 총리는 중국이 최첨단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미국이 원자재를 공급해주는 역할을 맡으면 된다고 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맥매스터 중장은 지난 2020년 출간된 저서 『배틀그라운드』의 2부 '중국'에서 이러한 일화를 소개했다. 이 책은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지 2년이 지난 지난해 1월 한국에 정식 번역본이 출간된 상태다.

맥매스터 중장은 2부의 4장 '약점을 강점으로' 초반부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는(리 총리는) 이미 산업과 기술 기반을 다진 중국은 더이상 미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운을 뗐다"면서 "불공정 무역 및 경제 관행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일축하면서, 리 총리는 미래의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역할은 중국에 원자재와 농산물, 에너지 자원을 제공하는 것이라 했다"고 밝혔다.

리 총리는 또 "(미국의 역할은 중국이 만들어내는) 최첨단 산업 제품과 소비재 생산에 필요한 연료를 공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맥매스터 중장은 전했다. 

맥매스터 중장에 따르면 리 총리는 미중관계에 있어 중국을 의뭉스럽다고 보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관계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저런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즉 '최첨단 산업에 특화된 중국'과 '원자재와 농산물, 에너지 등 1차 산업물에 특화된 미국'이 무역을 하게 되면 국제분업구조가 확립돼 서로 갈등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맥매스터 중장은 "(이 말을 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참을 수 있을 만큼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리 총리의) 이야기를 가로막으며 감사의 인사를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렇게 끝은 났다"고 회상했다.

제딴에는 미국을 안심시키려는 리 총리의 말이 오히려 미국 측을 격앙시켰던 것으로 풀이된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이 참을 수 있을 만큼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란 구절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가 드러난다. 또 맥매스터 중장은 "매트 포틴저(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선임국장)과 나는 리 총리의 말이 중국 공산당이 1990년대 중국 개혁과 개방을 이끌었던 덩샤오핑의 통치에서 벗어났단 사실을 얼마나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지에 대해 서로 이야길 나눴다"고 밝히기도 했다.

'도광양회(힘을 감추고 때를 기다림)'를 기치로 내걸었던 덩샤오핑과는 달리 후진타오 때부턴 '유소작위(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한다)'를 내세웠는데, 스스로가 어느 정도 경쟁력이 생겼다고 생각한 중국의 자신감이 부지불식간에 리 총리의 말에서 묻어났단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당시 미국 방문단은 중국이 미국의 지위에 도전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을 수 있다.

맥매스터 중장은 이 책에서 "중국 지도자들은 인도 태평양 지역에 걸쳐 자신들의 국가 통제 경제 모형을 공격적으로 선전했고 중국의 위세를 전 세계에 과시했다" "이웃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일종의 상하관계를 기대하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냈다" "양제츠 전 외교부 부장이 '중국은 대국이며 다른 국가들은 소국'이라 했다"고 서술함으로써 당시 미국이 느낀 분노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재밌는 점은 중국이 2010년대 들어 산업 능력이 대폭 신장되며 '세계의 공장' 노릇을 맡긴 했지만, 최첨단 기술에 필요한 원천 기술과 학문의 심장은 여전히 미국이란 사실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때부터 시작됐던 '미중 패권 경쟁' 과정에서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완전히 말살시키고자 '반도체 원천 기술'에 대한 차단을 선언한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맥매스터 중장이 소개한 일화가 사실이라면, 리 총리는 자신들보다 '대국'인 미국 앞에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상태'로 외교적 결례를 범했을 뿐만 아니라 자국 과학 기술과 산업에 대한 지나칠 정도로 이른 자신감을 내보인 셈이다.

다만 일각에선 맥매스터 중장이 소개한 일화가 정말 사실이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리 총리는 평소 여타의 중국 공산당 정치인들과는 달리 자국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평가하는 인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그는 2020년 6월 11일 중국 국무원이 열었던 '중국 경제상황 관련 간담회'에선 "3억명의 중산층을 제외하고 11억명의 소득이 낮고, 6억명의 월소득은 1000위안(당시 약 17만원)이다"라 했다. 또 그해 12월 국가가확기술영도소조 회의에선 "중국의 과학기술 발전은 (규모는) 크지만 강하지 못한 문제, 기초연구 분야의 혁신이 취약한 문제, 일부 분야 기술의 돌파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문제 등이 존재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 일화와 관련해 좀더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폐쇄성이 강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중국 공산당 내부의 권력 투쟁에 리 총리의 발언이 결정적인 악재로 작용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중하자마자 자금성에서 중국의 환대를 받았는데,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의 눈길 한번에 주머니에 넣은 손을 빼는 등 '굴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즉 중국이 미국에 최대한 굽힌 것이다. 그런데 리 총리는 그런 분위기를 파악하지 않고 미국의 심기를 건드린 셈이 되므로, 공산당 내부 권력 투쟁에서 공격 빌미가 되지 않았겠냔 것이다. 그 후 리 총리가 중국의 한계를 역설하는 발언을 자주 한 것을 보면, 이 일화가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냔 해석도 흥미를 끌고 있다.

지난 2017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금성에서 자신을 힐끔 쳐다보자 주머니에 넣은 손을 바로 빼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리 총리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상무위원회에서 물러나는 등 '정치상의 은퇴'를 하게 된 이유도 미국 측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공산당 내부 권력 투쟁 패배의 결정적 원인 중 하나가 된 게 아니냔 지적이다. 

지난 2017년 11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방한에 함께 했던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가운데). [사진=연합뉴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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