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포괄임금제 규제 해답 아냐
공동생산을 하며 아웃풋=인풋 논리 정립...'시간급' 탄생 (인풋베이스)
현행 한국 근로기준법은 1953년 일본 법 베낀 잇풋 베이스
현재 금융권 등 많은 일자리 근로시간 무의미 해져
선진국처럼 '근로시간 적용 제외 제도' 만들어야

남성일 객원 칼럼니스트
남성일 객원 칼럼니스트

주당 근로시간의 상한을 연장근로를 포함하여 52시간으로 제한한 법의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 법을 위반하는 경우 대표이사를 형사처벌하도록 되어 있고 관할 정부부처는 은근히 이를 내세우며 기업들을 겁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른바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기업들이 발칵 뒤집히자 정부는 서둘러 “아직까지 확정된 바는 없고 해당 지침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한발 물러섰다.

‘포괄임금제’란 당사자간 약정으로 연장·야간·휴일 근로 등을 미리 정한 후 매월 일정액의 제수당을 기본임금에 포함해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한 달 급여가 250만원이라면 기본임금은 200만원이고 초과근로수당을 50만원으로 고정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근로시간과 관계없이 고정된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는 것이다. 포괄임금제는 대법원의 판례의 의해 인정되어 왔으나 노동계는 포괄임금제로 인하여 과도한 초과근로가 이루어지고 근로자가 착취당한다면서 포괄임금제 폐지를 주장해왔다. 그리고 문재인정부도 공약으로 포괄임금제에 대한 규제를 약속했다.

법 조항만 따진다면 노동계의 주장은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초과근로시간이 늘어날수록 수당도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수당이 고정되어 지급된다면 근로자 입장에서는 초과근로시간이 늘어나도 수당은 일정하므로 손해보는 것이며 반대로 고용주는 초과근로시간을 늘려도 부담이 없어 늘리고자 하는 유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넌센스는 노동시장의 원리를 무시한 근로기준법의 획일성 때문에 빚어지는 것인데 이제 노동계의 주장만 받아들여 상황을 더 악화시키려 하고 있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과 임금의 관계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즉 우리는 일을 함에 있어 무엇을 기준으로 노동의 대가인 임금을 받는가 이다. 원시경제에서는 모든 노동의 대가는 ‘성과급’(output based pay)이었다. 즉 노동하여 각자 거둔 것에 비례하여 보상을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생산방식이 다수의 사람들이 같이 참여해서 만드는 공동생산으로 바뀌었다. 공동생산에서는 개별 근로자의 성과를 독립적으로 측정하기 곤란하므로 ‘성과(ouput)는 투입(input)에 비례한다’는 가정에 근거하여 투입을 기준으로 보상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투입을 대표하는 지표로서 가장 계산하기 쉬운 것이 시간이어서 ‘시간급(time based pay)이 보편화되었다. 예컨대 20시간을 투입한 경우보다 40시간을 투입한 경우 임금이 2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노동의 본질이 단순한 육체노동이 아니라 인적자본을 사용하는 인적 활동으로 넓어짐에 따라 시간을 따져 보상을 결정하는 방식은 합리성을 잃게 되고 투입시간과 관계없이 일의 성격과 일을 수행하는 사람의 능력을 헤아려 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이 늘어나게 되었다. 월급제 및 연봉제의 확산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현행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은 1953년 당시 일본의 노동기준법을 베껴서 만든 것으로 근로를 투입(input)기준으로만 측정하는 옛날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즉 모든 것을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따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주당 근로시간의 상한을 정하고 이를 초과하면 초과근로수당을 주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일자리는 근로시간이라는 것이 무의미 해진지 오래다. 금융관련직을 예로 들어보자. 은행영업시간이 끝났다고 해서, 또는 주식시장이 끝났다고 해서 금융종사자들의 일이 끝난게 아니다. 이들의 일은 퇴근 이후까지 계속된다.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어떤 이는 내일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 금융상품 가입을 권할까 생각한다. 어떤 이는 집에 들어가서도 해외 주식시장의 시세정보를 들여다보며 내일 일을 준비한다. 이들의 노동은 시간을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이런 유형의 근로형태가 점점 더 일반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4차산업혁명의 특징은 일하는 장소와 시간이 고정화되지 않고 더욱 유동화된다는 점이다. 즉 일하는 장소로서 직장과 집의 구분이 불분명해지고 일하는 시간 또한 온라인워크(online work)가 늘어나는데 어떻게 객관적으로 계산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현행 근로기준법으로 옭아매려 하고 있다. 주당 52시간을 넘겨 일하는 직장은 대표이사를 감옥에 집어넣겠다고 한다. 근로시간을 획정할 수 없는데 초과근로수당을 주라고 법이 강제하므로 궁여지책으로 일정한 금액을 초과근로수당으로 지정해놓고 주는 것이 포괄임금제라는 것인데 이를 폐지하거나 강력하게 규제하겠다고 한다. 주당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일을 해라 마라 하는 것도 넌센스이고 초과근로수당을 주라 마라 하는 것도 넌센스인데 그동안 이런 형편 때문에 법원에서도 인정한 것을 이제 바꾸겠다는 것은 넌센스 중의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웃지 못할 넌센스를 종식하는 길은 외국에서처럼 근로시간 적용제외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즉 특정한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근로시간 기준을 적용하지 않으며 따라서 초과근로수당 같은 것도 적용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면제제도(exempt)’라 하여 관리직이나 연구직이면서, 임금(wage)이 아닌 봉급(salary)을 받는 근로자로서, 연간 4만5천달러가 넘는 급여를 받는 사람을 초과근로수당을 받지 않는다. 유럽에서도 관리직, 엔지니어, 연구직 등은 연봉만 있을 뿐 초과근로수당은 없다.

포괄임금제는 폐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근로시간 적용제외 제도’를 만드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만일 이러한 선결작업 없이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거나 대폭 규제할 경우 기업현장에서는 새로운 규제로 인한 기본임금 설정 문제로 노사간 대혼란 및 대립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통상임금 논란에서 보았던 혼란 이상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남성일 객원 칼럼니스트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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