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판사 3명, 잇따라 “PC 강제조사, 절차에 문제 있다”
"조사 주도하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 완장 찬 듯 행동한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주도하는 소위 ‘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부장판사)의 무리한 조사 행태에 대한 법관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검찰이 김명수 대법원장과 추가조사위원회의 ‘사법부 블랙리스트’ 조사가 위법한지에 대해 본격 수사를 착수한 상황에서, 법원 내부도 판사 블랙리스트를 놓고 내홍에 휩싸이는 모습이다.

●법원 집안싸움 난 사이…검찰 손으로 넘어간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김태규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51·28기)는 지난 2일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법관이 다른 법관의 컴퓨터를 강제로라도 꼭 열어볼 필요가 있었을지?”라는 글을 올렸다. 추가조사위가 블랙리스트가 들어 있다는 의혹을 받는 전·현직 행정처 판사 컴퓨터 4대의 하드디스크를 해당 판사 동의 없이 강제로 개봉한 과정을 조목조목 비판한 내용이다.

김 부장판사는 법관이 동의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PC 강제 개봉’을 감행한 추가조사위에 대해 “법원칙에 대해 엄격하고 신중해야 할 법원이 영장주의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에 위반된다는 의심과 구설에 오를 수 있는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추가조사위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김 부장판사는 “무언가 잘못됐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의 눈으로 사안을 본다면 같은 사안도 의혹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단순한 인사카드나 메모를 블랙리스트라고 확대 해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법원 내부에서 당사자 동의 없는 PC 개봉의 절차적 정당성·공정성 문제를 지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서경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52·21기)와 부장판사급인 이숙연 부산고법 판사(50·26기)가 이미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다.

서 판사는 “당사자 동의 없는 컴퓨터 강제 조사는 위법하다”는 글을 올렸다. 이 판사도 “판사들에 대한 뒷조사 파일의 작성 및 관리가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죄에 해당하려면 해당 파일에 기재된 법관들에 대한 불이익 조치 등이 있어야 한다”며 “불이익 조치의 존재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소명된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블랙리스트의 기본 요건인 ‘피해자’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는 사이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은 결국 검찰 손으로 넘어갔다.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부는 김명수 대법원장 지시로 시작된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가 위법한지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앞서 자유한국당 사법개혁추진단(단장 주광덕 의원)은 지난달 28일 김명수 대법원장과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조사위원회 위원 등 7명을 비밀침해, 직권남용, 직무유기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검찰은 ‘있는 그대로 수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블랙리스트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재조사 과정에서 위법한 게 없었는지 확인하다 보면 수사가 대법원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아직 어떤 식으로 수사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법원이 스스로 문제를 초래한 것이어서 법원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판사 블랙리스트’ 재조사, 좌파 성향의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주도

김명수 대법원장
김명수 대법원장

사법부 불화의 중심에는 재조사를 주도하는 좌파 성향의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과 이 연구회 1·2대 회장을 지낸 김명수 대법원장이 있다. 추가조사위 위원 6명 중 4명이 이 연구회 소속이다.

처음 의혹을 제기했던 이탄희 판사도 이 연구회 소속이다. 이 판사는 지난해 초 법원행정처 간부가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추진하던 ‘대법원장 권한 제한’ 관련 세미나를 축소하라는 압력을 넣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이 문제를 조사하던 법원 진상조사위에서 "행정처 컴퓨터에 비밀번호가 걸린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고 들었다"고 진술하며 새로 의혹이 불거졌다.

진상조사위는 작년 4월 이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연구회 회원들은 재조사를 강하게 요구했고,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를 받아들여 지난해 11월 재조사를 지시했다.

추가조사위원회는 내부에서 나오는 강력한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컴퓨터 저장장치의 보존 조치와 보안유지 과정이 법원행정처의 협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조사위는 “사법연수원의 협조를 받아 조사 장소 입구에 사회복무요원을 배치하고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보안유지 조치에 필요한 모든 물적 설비는 법원행정처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조사위의 강제 개봉과 조사 방식에 동의했음을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법관들 사이에선 “같은 연구회 출신인 김명수 대법원장이 버티고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며 “추가조사위가 완장 찬 듯 밀어 붙이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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