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29일 오후 조태용(67) 주미대사를 새 국가안보실장에 전격 임명했다. 김성한 안보실장 사표를 수리한 직후이다. 차기 주미대사에는 조현동(63) 현 외교부 1차관이 내정됐다. 미 행정부에 아그레망(주재국 임명 동의)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인도ㆍ태평양 지역회의 개회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전날 조태용 주미대사를 새 국가안보실장에 전격 임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인도ㆍ태평양 지역회의 개회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전날 조태용 주미대사를 새 국가안보실장에 전격 임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 하루 만에 ‘안보실장 교체-새 안보실장 임명-주미대사 내정’을 일사천리로 진행

윤 대통령이 정부 부처 각료급 인선을 할 때 이처럼 신속하게 결정을 내린 적은 없다. 상당한 시간을 두고 적당한 인사를 물색하는 스타일이었다. 하루 만에 국가안보실장 사표를 받고, 후임 국가안보실장으로 주미대사를 임명하고, 후임 주미대사로 외교부 1차관을 내정하는 초 스피드 연쇄인사가 이뤄진 것은 역대 정권을 통틀어 봐도 이례적이다.

따라서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국가안보실에 대한 전면 인사는 상당 기간 물밑 작업을 준비해온 결과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조태용 신임 실장, ‘원팀’ 강조하며 외교안보라인 간 ‘원활한 소통’에 방점

조태용 신임 국가안보실장은 임명 다음날인 30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차대한 시기인데 안보실장이란 자리를 맡게 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조 실장은 "지난 11개월 동안 윤석열 정부의 국정 목표인 '글로벌 중추 국가' 건설을 위해서 주춧돌을 잘 놨다고 생각한다"며 "그 주춧돌 위에 좋은 내용으로 집을 지어 윤석열 정부의 국정 목표를 완성할 수 있도록 보답하는 게 임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안보실을 포함한 대통령실 전 구성원들이 ‘원팀’으로 노력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실장이 ‘원팀’을 역설한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다수 언론이 이번 인사의 배경으로 비서실과 안보실 그리고 외교부 등 간의 소통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로서는 적극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 대통령이 4월말 국빈(國賓) 방문을 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한미정상회담을 한달 남짓 앞둔 시점에서 방미 준비를 주도해온 국가안보실 수뇌부에 대해 거침없는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김일범 의전비서관, 이문희 외교비서관에 이어 김성한 전 실장까지 교체됐다.

김 전 실장은 29일 입장문을 발표해 “저로 인한 논란이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며 “미국 국빈 방문 준비도 잘 진행되고 있어 새로운 후임자가 오더라도 차질 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히면서 자진 사퇴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앞두고 외교·안보 사령탑이 교체된 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더욱이 김 전 실장은 윤 대통령의 대광초등학교 동창인 ‘50년 지기’일 뿐만 아니라 대선 당시 외교안보 브레인이었다. 조태용 실장이 “'글로벌 중추 국가' 건설을 위해서 주춧돌을 잘 놨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한 것은 김성한 전 실장의 역할을 높게 평가한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블랙핑크·레이디가가 공연에 대한 보고 누락, 주미 대사관이 7차례 전문 통해 알려

사실 김 전 실장의 경질을 둘러싼 잡음은 적지 않다. 우선 방미와 관련해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지난 1월 블랙핑크·레이디가가 등이 출연하는 특별 문화 프로그램을 제안했으나, 국가안보실은 3월초까지 확답하지 않은 채 윤 대통령에게 보고도 하지 않았던 게 뒤늦게 알려져 문제가 됐다는 후문이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주미 한국대사관은 미 행정부 측 요청을 받아 7차례나 답변을 요청하는 전문을 보냈지만 안보실에선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주미 대사관이 안보실에 의해 보고 누락됐던 ‘현안’을 대통령실에 알리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3월 초 미국을 방문한 외교 당국자를 통해 뒤늦게 이런 사실을 파악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27일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교체되면서 이 같은 이상징후가 포착되기 시작했다. 이미 사퇴한 김일범, 이문희 비서관뿐만 아니라 김성한 실장이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기류가 형성됐다. 김 전 실장은 미 백악관 고위 관계자와의 최종 조율 과정에서 블랙핑크 공연 제안을 듣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소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28일까지 김성한 실장의 교체 가능성을 부인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같은 ‘소통 단절’을 한미 정상 외교의 신뢰에 흠집을 낼 수 있는 사안이라고 판단, 대통령실의 외교안보 라인 쇄신을 단행했다는 분석이다.

한일정상회담의 강제 징용 해법과 한미정상회담 사전의제 조율에 대한 ‘소통 문제’가 불씨 된 듯

김 전 실장 등이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보안의식이 강해 소통이 부족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 해외 방문 전에 안보실이 주요 의제 및 일정에 대해 비서실과 잘 공유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비서실이 핵심 이슈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할 경우 대국민 국정 홍보 등도 차질을 빚을 위험성이 커진다. 홍보수석이나 대변인의 사전 대응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3월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마련한 강제 징용 제3자 배상해법에 대해서도 국민과의 소통과정이 부족해서 ‘대통령의 결단’이 갖는 의미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김성한 전 실장과 김태효 안보실 1차장 간의 불화설도 거론된다. 미측이 블랙핑크와 레이디가가 합동공연을 제안한 사실을 김 차장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현동 주미대사 내정자를 추천한 사람이 김 차장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즉 드러난 소통 부족은 한일정상회담 의제와 한미정상회담 관련 공연에 관한 것이다. 이 정도 사안으로 한미정상회담을 코 앞에 두고 실무총책을 교체한 데 대한 비판적 시각도 있다.

윤 대통령의 조기 대응은 건설적 결과 낳을 수도...한미정상회담 성공 위해선 조태용 신임 실장 역할 중요해

그러나 윤 대통령이 조기에 대통령실 내부의 문제를 파악해 적극적으로 대응한 게 오히려 건설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문제가 안으로 곪아들어가게 방치하는 것보다는 정면돌파식 해법이 결과적으로는 이득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조태용 신임 국가안보실장이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태용 신임 국가안보실장이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따라서 국가안보실의 새로운 수장이 된 조태용 실장이 비서실, 외교부 등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간의 한미정상회담을 성공시키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지적이다.

이 점에서 조 실장이 적임자라는 데 큰 이견이 없다. 대미·북핵 문제에 정통한 직업 외교관 이기 때문이다. 외교가에서 ‘온화하고 합리적인 리더십’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경기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고 외무고시 14회 출신이다. 외교부 북미국장, 북핵6자회담 수석대표, 주아일랜드·오스트레일리아 대사 등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 때 외교부 1차관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을 역임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됐고 지난 대선 때 윤석열 캠프에 합류해 김 전 실장, 박진 외교부 장관 등과 함께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 정책을 설계했다.

1983년 아웅산 폭탄 테러로 순직한 고(故) 이범석 외무부 장관의 사위이기도 한 조 실장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등 미국 내 인맥도 두텁다고 한다. 조현동 주미대사 내정자에 대한 아그레망이 한미정상회담 이전에 떨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조 실장은 대사 부재중인 주미대사관과 효율적으로 소통하면서 한미정상회담이 의미있는 성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막판 조율을 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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