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인 저출산 흐름의 불똥이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전문의들에게로 옮아붙고 있다. 턱없이 낮은 진료비가 장기간 지속돼온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한 진료비 급감이 맞물리면서 붕괴 위기에 처한 소청과 전문의들이 소청과 간판을 내리겠다고 선언했다.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회관에서 열린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에서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을 비롯한 전문의들이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회관에서 열린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에서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을 비롯한 전문의들이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이하 의사회) 회장은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 4층 대회의실에서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을 열고 "아픈 아이들을 고쳐 주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살아왔지만, 오늘자로 대한민국에서 소청과라는 전문과는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임 회장은 기자회견 도중 "소청과 전문의들은 한없이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면서 울먹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임 회장은 “지난 5년간 소청과 의원 662개가 경영난으로 폐업했는데도 유일한 수입원인 진료비는 30년째 동결”이라며 “이 나라에서 소청과 전문의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처지에 내몰렸다”고 말했다.

의사회의 기자회견은 복지부가 지난달 내놓았던 소청과 의료기관 등에 대한 보상 강화와 소아응급 진료기능 강화 등이 담긴 소아의료체계 개선 대책 이행 상황 점검 결과 발표와 같은 날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됐다.

여론은 엇갈린다. “의사들이 엄살을 부린다”는 비판적 견해와 “저출산시대에 예견됐던 위기가 왔다”는 공감이 맞서는 모습이다.

펜앤드마이크의 취재를 종합해볼 경우, 소청과 폐과 위기는 실제 상황이라는 판단이 나온다.

① 팩트 1=소청과 전공의 지원율 80%에서 15,.9%로 추락

소아과를 기피하는 전공의가 늘면서 소청과 의료진 부족으로 입원 진료를 못하고 외래 진료만 하거나 아예 진료를 중단하는 종합병원이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의 대학병원 가운데는 전공의 없이 전문의만으로 소청과를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뉴시스의 지난달 보도에 따르면 건양대병원, 대전을지대병원, 충남대병원, 순천향대천안병원 등 4곳은 올해 상반기 소청과 전공의 지원자를 한 명도 받지 못했다. 내달 말 대전에 문을 여는 공공어린이재활병원도 소청과 전문의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도 소청과 진료를 잠정 중단하는 곳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12월 상급종합병원인 가천길병원은 의료진 부족으로 소청과 입원 진료를 잠정 중단했다. 지난 2020년부터 전공의를 한 명도 뽑지 못한 여파다. 이달 인천성모병원도 소청과 응급실 진료를 중단했다.

실제로 지난 연말 마감된 2023년도 전반기 전공의 모집 결과,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이 2019년 80%에서 15.9%로 추락했다. 소청과 전공의 모집정원이 있는 50개 대학병원 중 76%(38개)는 전공의를 단 한 명도 확보하지 못했다. 모집정원을 다 채운 곳은 서울대병원이 유일했다. 절반을 넘긴 곳도 순천향대서울병원, 아주대병원, 전남대병원, 울산대병원 등 4곳에 불과했다. 소청과 전공의 기피현상은 ‘붕괴 위기에 직면한 어린이 의료 체계’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청과 전공의와 전문의들의 업무 강도는 더 높아지고 있다. 50대 전문의가 일주일에 3번 당직을 서고 36시간 근무를 해야 하는 실정이다. 사명감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현재의 체계로는 소청과 의료인이 늘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현실성 있는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② 팩트 2=어린이 의료 체계 개선 하려면, 재정 지원이 필수적

정부는 16년 간 약 280조 원에 달하는 저출산 관련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출생아 수는 10년 전 절반 수준인 25만 명 이하를 밑돌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꼴찌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치(0.78명)를 찍었다. 그 사이 소청과 전공의 부족 문제는 심화됐다. 이대로가다가는 응급·중증 어린이 환자 진료는 조만간 대가 끊길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어린이 의료 체계를 개선하려면 획기적인 재정 지원을 통해 만성화된 낮은 진료비를 인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이 고된 만큼 충분히 보상해주면 전공의의 소청과 지원이 높아질 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소청과 진료비는 모든 진료과 중 가장 낮다. 게다가 국내 의료수가 체계상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고, 환자가 어린이여서 진찰 외에 추가적으로 할 수 있는 처치와 시술이 거의 없다. 진찰료로만 수익을 내는 셈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의원급 의료기관(동네 병·의원) 환자 1인당 평균 진료비는 1만7611원으로, 전체 15개 진료과 중 가장 낮다. 소청과 진료비는 30년 동안 묶여있었다는 것이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주장이다.

의사회 임 회장은 "지난 10년 간 소청과 의사들의 수입은 25%가 줄었고 그나마 지탱해주던 예방접종은 100% 국가사업으로 저가에 편입됐고, 국가예방접종사업은 시행비를 14년째 동결하거나 100원 단위로 올려서 예방접종은 아예 없어졌다"고 말했다. 따라서 건강보험 재정이 아닌 국가 재정을 투입해 적어도 대만수준(6만원 정도)로 올려야 한다는 것이 의사회의 주장이다.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회관에서 열린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에서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회관에서 열린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에서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실제로 일본은 정부 예산을 들여 소청과 의사들의 진료에 대한 보상을 현실화했다. 일본은 전문의가 소아·청소년과를 개원했을 때 3세 미만 환자를 진료하면 100%가 넘는 수가 가산을 인정한다. 6세 미만의 경우는 50%를 가산한다. 저출산으로 환자가 줄어들 수 있는 상황을 국가가 보상해준다는 의미이다.

정부의 대책, 구체적인 인력과 재정 지원 방안 대신 시설 확충에 치중...윤 대통령 재정투입 지시해

그러나 정부 대책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복지부는 29일 “1분기 이행 상황 점검 결과, 24시간 소아상담센터 시범사업과 소아진료 입원전담의 수가 개선 등 16개 주요과제가 차질 없이 이행되고 있었다”며 “소아 진료인력 확보를 위해 소아 입원진료에 적용되는 연령가산을 확대하고 입원전담전문의가 소아환자를 진료하면 관리료에 추가적인 소아가산을 적용하는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알렸다.

특히 “소아진료 같은 필수의료분야 의사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의료계와 협의체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며 “기피과목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당사자인 전공의와 함께 논의를 이어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저출생 등에 따른 소청과 위기가 계속되자 정부는 지난달 소청과 의료기관 등에 대한 보상 강화와 소아응급 진료기능 강화 등을 담은 소아의료체계 개선 대책을 내놓았다. 복지부는‘소아 의료 체계 개선 대책’을 통해 중증 소아 환자를 담당하는 어린이 공공진료센터와 24시간 소아 환자에 대응할 수 있는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각각 4곳씩 늘리겠다고 밝혔다. 또 24시간 소아전문상담센터 시범사업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소청과 의사 인력 공백이 문제의 핵심인데, 복지부는 ‘의료진 보상’ 대신 ‘엉뚱한 시설 확충’을 해결책으로 내세운 것이다. 의사회 임 회장은 특별히 24시간 소아전문상담센터 시범사업에 대해 비판했다. 아이들이 동일한 증상으로 내원해도 고려해야 할 수많은 다른 질환들이 있고, 의사 표현도 미숙하고, 면역력이 낮은 아이들은 병이 급격히 나빠져 대면 진료조차 오진의 가능성이 있는데, 24시간 소아전문상담센터에서 전화를 통해 증상을 상담하고 처치를 안내하는 것은 ‘정신 나간 발상’이라는 입장이다.

의사회는 정부의 이같은 개선 대책에 대해 ‘소청과 의료 인프라 구축과 지원율 제고에 필요한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 회장은 "정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복지부는 대통령의 뜻을 뒷받침하고 무너지고 있는 소아청소년 의료 인프라를 바로 세워야 하는데, 오히려 미흡하기 그지없는 정책들을 내놨다"며 "올해 레지던트 소청과 지원율이 더 떨어질, 빈 껍데기 정책들만 내놨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아이들의 건강을 챙기는 것은 국가의 최우선 책무다", "의사가 소아과를 기피하는 것은 정부 정책이 잘못된 탓이다", "건강보험 재정이 부족하면 정부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바꿔라"고 복지부에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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